[커버스토리⑦] 공공기관은 ‘시민의 벗’, 바로미터는 공공성·노동권
[커버스토리⑦] 공공기관은 ‘시민의 벗’, 바로미터는 공공성·노동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5.12 10:54
  • 수정 2022.05.12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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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공공서비스 제공이 공공기관의 역할
중앙·지역·의제별 노정교섭 있어야··· 걸림돌은 기재부

반복되는 공공기관 개혁론,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 설문조사

설문조사를 통해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엔 상급단체인 공공부문 산별노조·연맹의 진단과 계획을 들어봤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류기섭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박홍배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현정희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나순자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커버스토리⑦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인터뷰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대통령 당선자가 정해지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공공운수노조에서 취재요청서가 하나 왔다. 일시 3월 10일 오전 10시, 장소는 당선자가 나온 당사 앞이었다. 기자회견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공공운수노조에는 학교, 의료, 사회복지, 철도, 화물, 에너지 분야 등에서 일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다. 이 노동자들이 거리에 자주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공부문 정책과 노동조건을 논의할 노정교섭은 공공운수노조에도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운수노조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는 게 현정희 위원장의 생각이다. 공공운수노조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형식적으로만 협의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할 준비도, 투쟁할 준비도 돼 있던 공공운수노조는 대부분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운수노조는 불평등한 한국 사회의 대안은 공공성 확대와 노동권 강화라고 말해왔다. 그간 정부는 공공부문이 해왔던 영역을 민간에 맡기는 방식으로 공공성을 약화시켰고, 모든 시민에게 차별 없는 공공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과와 수익 중심으로 공공기관이 운영되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더 나빠졌다. 현정희 위원장은 지난 4월 26일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공공기관이 국민에게 기본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부라면 당연히 노정교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수익 중심 평가로
공공기관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었던 구조”

- 공공운수노조는 그간 공공성 강화와 노동권 확대가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키워드가 나오게 된 배경이 있을 듯하다.

공공성과 노동권은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공공부문이 제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그걸 노조의 과제로 생각한다. 정부가 공공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

우리의 과제를 슬로건으로 담아보자는 고민 속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이라는 문구가 나왔다. 슬로건을 각종 집회와 선전에 활용하고, 이 두 가지가 담긴 법·제도·예산을 관철해내려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슬로건을 실제 교섭과 투쟁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공공운수노조가 생각하는 공공부문의 역할은 무엇이며, 공공기관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우리나라의 공공부문은 공무원 조직과 공공기관들로 구성돼 있다. 지방정부의 출자·출연 기관까지 포함하면 1,500개 이상 공공기관들이 국민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일이 사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의 전부다.

변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현실을 말하고 싶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의 많은 부분을 공공기관이 하도록 법은 제정돼 있는데, 실제로 사회공공성을 담보해내는 기본 서비스는 잘하지 못하는 구조다. 공공병원은 국민의 건강과 질병 치료를, 공공철도는 안전한 이송을, 국민연금공단은 연금을 잘 관리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공공기관들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공공기관장으로 낙하산처럼 내려보냈다.

또 대부분의 정권은 시장주의를 선호해왔기 때문에 얼마나 이익을 더 봤는지를 공공기관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이렇게 낙하산으로 내려온 기관장과 수익 중심의 공공기관 평가 기준에 의해서 공공기관이 운영돼 왔기 때문에 법 취지에 맞는 운영을 잘할 수 없었다.

- 그럼 공공기관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공공기관을 만든 취지대로 운영하도록 하면 된다. 모든 시민이 지역과 경제력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공공서비스를 다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공공기관의 제 역할이다. 통신, 교통, 의료, 돌봄, 에너지 분야 공공기관이 제대로 공공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미 민영화된 곳들은 재공영화해야 한다.

공공기관 운영에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실제로 공공서비스를 제공받고 재정을 책임져주는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공공기관을 바꾸려면 정부 정책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와 노동자들이 이야기해야 하므로 노정교섭이 필요하다.

“노정교섭 가장 큰 걸림돌은 기재부
기재부 해체 투쟁 계속 가져갈 것”

- 공공운수노조가 생각하는 노정교섭의 상은 무엇인가?

노정교섭에는 크게 세 가지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국무총리실과 노정교섭이다. 공공기관은 관할 부처가 하나지만 실은 여러 개의 부처와 연관이 있다. 국립대병원 같은 경우에도 관할 부처가 교육부지만, 복지부, 과기부와도 관련이 있다. 총리실은 총체적으로 정부 부처를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국무총리가 교섭대표가 돼야 한다.

두 번째는 지방정부와 노정교섭이다. 지방정부 출자·출연 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상대로 교섭을 해야 한다. 교육, 의료, 요양, 택시, 버스 등은 지방정부의 정책과 관련이 깊다. 의제별로도 노정교섭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탈탄소 정책을 쓰려면 석탄화력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하는데, 그 안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최소 8,000명이다. 이 의제만 가지고 시급하게 노정교섭을 해야 한다.

- 그런데 노정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이다. 정부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책만 펼치고 싶어 하기에 국민이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크게 보지 않았다. 그러니 공공성 확대를 요구하는 우리 공공운수노조와 교섭을 하기 싫어한다. 못 들은 척하고, 형식적으로만 협의하려 했다. 공공기관이 국민에게 기본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부라면 당연히 노정교섭을 할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기재부라고 생각한다. 기재부는 예산권, 재정권, 공공기관을 다 통제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는 경영평가를 통해 점수를 매기고 성과급으로 통제를 한다. 그렇게 시민의 벗이었던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자부심을 뺏어버리고 임금 노예로 만든다. 임금, 인력, 각종 노동조건, 정책까지도 다 기재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다시피하고, 공공기관의 장들도 다 기재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기재부 권력 해체를 가장 앞장서서 요구하고 있다. 올해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쟁 중 하나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거대 양당 보수화가
시장주의적 개혁 방향성 만들었다”

- 이전 정부를 통틀어 바람직했다고 느끼는 공공부문 개혁이 있나?

열심히 찾아봤는데 정말 어려웠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방향은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회사로 방향을 튼 것에 대해서는 잘 잡았던 방향을 완전히 망쳤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자회사를 큰 용역회사라고 생각한다. 또 자회사로 갈 때 노동자들을 많이 떨구고 갔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고용이 완전히 보장되지도 않았다. 공정이라는 이유로 아주 공정하지 못하게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모든 정권이 적어도 상시업무에 대해서는 다 정규직으로 바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는 신성장동력이라고 본다.

또 하나 애써 찾아보면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한 것이다. 돌봄에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이 개입하게 되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요양보호사 1명이 10명을 돌보게 만드는 게 시장화고 민영화다. 돌봄이 아닌 방치고 수용인 것이다. 그런데 돌봄의 공공성 강화도 용두사미가 됐다. 원래 공공운수노조가 요구했던 것은 사회서비스 공단이다. 지방정부마다 사회서비스 공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최소한의 돌봄과 보육, 요양을 책임져야 한다.

- 정부가 시장주의적 개혁을 방향성으로 삼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상급 구조로 보면 노선 문제일 수 있다. 윤석열 당선자 같은 경우는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강조했다. 결국 시장원리에 따라 민간자본 중심 경제를 진행하고 국가는 민간의 경제 활동에 방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것 같다. 다른 정당도 경향성은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좌우인 것처럼 보도되고 오인되지만 실제로 경제정책을 보면 차이가 거의 없다.

어떤 대통령도 임기 동안 경제가 안 좋아졌다거나 국가 재정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적자 축소의 영역과 성장률을 올릴 수치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공공부문이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국가 재정이 안 좋아지면 공공부문 적자부터 몰아세우고, 공공부문에 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수치상 효과가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 새 정부 노정관계 전망은 어떤가.

어느 정부보다 갈등이 커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시장화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새 정부는 공공성과 노동권을 말하는 우리 노조와는 방향이 많이 다르다. 그런데 새 정부도 정부를 운영하다 보면 기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시장 권력이 원하는 대로 하면 국가가 있을 필요가 없다.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와 노정교섭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노정교섭은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정부와 대화로 풀어나갈 준비도, 대화를 거부했을 때 상응하는 투쟁 준비도 하고 있다. 새 정부가 대정부교섭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힘을 모을 것이다. 올해 5월 7일 대정부 집회, 7월 2일 공공운수노조 2차 총궐기, 하반기 총파업 총력 투쟁이 예정돼 있다.

“한국 공공성 점수 ‘30점’
시민·사회단체들과 공공성 투쟁 함께할 것”

- 한국 사회에 공공성 점수를 준다면.

30점 이상은 어렵다. 과락이다. 우리나라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과 공공요양시설이 3분의 1이 안 된다는 의미에서다. 3분의 1이 됐다면 33점을 줬을 거고, 과락은 면했을 거다. 그나마 고민했던 이유는 건강보험과 요양서비스 부문에서 정부가 조금은 공공성을 가져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민영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에너지, 철도 등의 분야에 민간 자본이 더 들어오고, 정부가 정책을 선회하지 않으면 5년 뒤에는 10점도 못 줄 것이다.

공공성 투쟁은 우리 혼자만 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요구는 시민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나가고,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하는 투쟁을 기획해나갈 계획이다. 공공기관은 시민의 벗이 돼야 한다. 바로미터가 되는 건 공공성과 노동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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