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⑧] “공공적 역할 수행을 평가 기준으로 확립해야”
[커버스토리⑧] “공공적 역할 수행을 평가 기준으로 확립해야”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5.12 11:27
  • 수정 2022.05.12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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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기관 경쟁력 떨어뜨리는 총정원제·총액인건비제···
“정부가 바람직한 공공의료기관의 상을 구상하고 있는지 의문”

반복되는 공공기관 개혁론,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 설문조사

설문조사를 통해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엔 상급단체인 공공부문 산별노조·연맹의 진단과 계획을 들어봤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류기섭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박홍배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현정희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나순자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커버스토리⑧ 나순자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인터뷰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코로나19로 드러난 보건의료 현장의 한계는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체 의료기관의 10%밖에 안 되는 공공의료기관은 코로나 환자의 80%를 감당해야 했다. 이로 인해 공공의료 시스템에 여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우리사회에 퍼졌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도 다른 공공기관처럼 총정원제, 총액인건비제, 수익성 중심 경영평가 등에 묶여 코로나 이후를 모색할 여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에게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관해 이야기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28일 진행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론?
“기관 통제하고 관리 위한 수단”

- 새 정부마다 공공기관 개혁론이 등장할 때마다 공공의료기관도 영향을 받나?

공공의료기관 중 보훈병원, 근로복지공단병원은 준정부기관이다. 국립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 한국원자력의학원 등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준정부기관이든 기타공공기관이든 공공병원은 정부 정책에 모두 영향을 받고 있다.

정부의 경영 효율화 관련 지침은 어느 정부에서도 바뀐 적이 없는 듯하다. 공공의료기관도 정부 예산편성지침, 총액예산제, 총정원제, 경영평가 등의 적용을 받아왔다. 이런 제도들은 개혁이라는 말로 포장됐지만, 실제로 공공의료기관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방만경영 개선, 퇴직금누진제 폐지, 신규 입사자 임금 10% 축소, 임금피크제 도입, 성과연봉제 도입,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정부가 공공기관에 추진한 정책들은 공공의료기관에서도 예외 없이 추진됐다.

-  ‘공공’의 영역에 속함으로써 겪는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뭔가?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은 주로 경영 정상화, 인력구조조정 등에 초점이 맞춰진다. 공공의료기관은 수익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경영평가에선 이런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고 수익성을 우선적으로 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병원은 두 가지로 돈을 번다. 하나는 진료량 늘리기다. 그럼 국가유공자를 치료하는 보훈병원 같은 곳에서도 과잉진료가 발생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내부 인력 줄이기다. 사람이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의 업무는 인력집약 업무이고, 인건비가 전체 운영비의 40~50% 정도 차지한다. 인력 축소로 인해 보건의료노동자는 높은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한다. 수익 창출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면 환자와 노동자 모두 피해를 받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은 산업재해 환자들의 치료부터 재활까지 도우면서, 공공병원으로서 지역사회에 의료 안전망을 제공해왔다. 그런데 돈을 못 버니까 종합병원 기능을 없애고 재활병원 기능만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가 많이 줄어들고 있고, 병원 자체가 점차 도태되고 있다. 최근 지부와 간담회를 했을 때 병원의 존폐까지 걱정될 정도로 경영상 위기를 겪고 있었다.

총정원제·총액인건비
공공병원 경쟁력 떨어뜨려

- 보건의료노조는 총정원제로 인한 어려움도 말해왔는데.

공공의료기관은 총정원제에 인력이 묶여 있다. 환자 중증도가 높은 경우 간호등급제(간호관리료 차등제)에서 1등급을 확보해서, 서비스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총정원제 때문에 쉽지 않다. 1등급을 받으려면 병상당 간호사 수를 더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보훈병원은 환자 중증도가 서울 상급종합병원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총정원제에 묶여 1등급으로 못 가고 있다. 그러니까 노동강도가 얼마나 세겠나?

- 총액인건비제도 총정원제와 묶어서 이야기 나온다.

총액인건비는 정부가 인건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알아서 쓰라는 거다. 최근 보훈병원 의사들이 15%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의사들은 임금 등 메리트가 적어서 공공의료기관에 잘 안 가려고 한다. 보훈병원은 다른 공공의료기관에 비해서도 의사 임금이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의사 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총액인건비 때문에 의사들의 임금을 인상해주려면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해야 한다. 특히 지방의료원의 경우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병원장의 주요 역할이 의사 구하기라는 말도 나온다.

물론 간호사 구하기도 어렵다. 보훈병원 같은 몇몇 공공병원에서는 호봉승급분이 임금인상률에 포함된다. 그런데 지난해 공무원 임금인상률이 0.9%로 호봉승급분보다 낮았다. 그래서 이들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 사이에선 ‘우린 호봉승급도 하지 말라는 거냐’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왔다. 반면 지난해 민간 사립대병원은 호봉승급분을 제외하고 평균 3%대로 임금을 인상했다. 이런 상황이라 공공의료기관에선 신규간호사를 뽑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인력이 부족한데다 임금까지 적은데 누가 공공의료기관에 가겠나? 보건의료노조 산하 공공의료기관 지부에서도 ‘일 잘하고 좋은 친구들이 남아 있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 그럼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어떤 이유로 일터에 남아 있을 수 있나?

기본적으로 의료기관의 업무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업무다. 공공의료기관 노동자들은 24시간 교대근무노동, 생명을 다루는 업무로 인한 고도의 긴장노동, 각종 의료장비와 의약품을 취급하는 위험노동, 아픈 환자와 가족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노동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 사회 취약계층에게 차별 없이 촘촘한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회복한 환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그나마 이런 자부심으로 병원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최근 지역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내 곁에 든든한 모두의 공공의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4월 26일부터 5월 17일까지 <공공의료․의료인력 확충!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전국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공의료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또한 지난해 보건의료노조가 산별총파업을 내걸고 9.2 노정합의를 통해 공공의료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노정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올해 전국 캠페인 대장정은 이 합의를 지역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서 기획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의료 확대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의 바람을 일으키는 게 목표다. 지역운동의 주체를 세워내고, 지방선거 출마 후보들이 핵심공약으로 채택하고,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방정부의 정책과제에 이 내용들이 포함되도록 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이번 캠페인 대장정을 통해 9.2 노정합의 이행이 전국 방방곡곡 공론화돼 최소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 공공의료 확충과 거기에 따른 적정 인력을 확충하는 것, 이것이 지방정부의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되기를 바라고 있다.

“바람직한 공공의료기관 상 구상하는지 의문”

- 정부가 구상하는 공공의료기관의 바람직한 상과 노조가 그리는 상 사이엔 차이가 있다고 보나?

정부가 바람직한 공공의료기관의 상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상이 없으니까 공공의료기관을 민간의료기관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의료기관 중에 몇 개 기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큰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나마 홍준표 전 의원이 경남도지사일 때 만성적인 적자를 핑계로 진주의료원을 폐원하면서 ‘착한 적자’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공공의료기관은 과잉진료가 아니라 표준진료를 해야 하고, 돈 안 되는 산부인과, 소아과를 유지해야 하는 등 공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겠나?

돈 걱정하지 않고 공공적 역할을 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적정 인력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수익성 중심이 아닌, 공공적 역할 수행을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이 노동조합이 그리는 공공의료기관의 상이다.

- 공공의료기관의 ‘공공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첫째로는 공공의료기관은 국가적 재난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재난 시기에 잘 보여줬다.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10%밖에 안 되는데, 코로나 환자의 80%를 치료했다.

두 번째로는 지역에서 표준진료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산은 주변 지역에 비해 의료비가 상대적으로 낮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일산병원이 있어서다. 일산병원은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표준진료를 제공한다. 병원에 의료수가를 지급하는 건강보험공단이 자기네 병원에까지 수가를 필요 이상으로 지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병원들도 과잉진료를 하기 어려워진 거다. 이렇게 공공의료기관은 표준진료지침을 마련해 지역 진료 문화를 선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의료기관은 돈이 안 되지만 국민에게는 꼭 필요한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취약계층 치료 등 필수의료를 맡는다. 공공의료기관은 우리사회에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적 역할 수행을 평가 기준으로 확립해야”

- 공공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수행하는 걸 가로막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법적으로는 공공의료기관마다 설립목적에 따른 고유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독립채산제를 기반으로 공공의료기관들이 수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즉 기획재정부가 수익 중심의 평가, 수익 중심의 운영을 강요하고 있는 거다. 이러다 보니 공공의료기관이 고유의 목적을 수행할 역량을 축적할 수도 없다. 고유의 목적을 수행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기관장이 소신을 갖고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정착되지 못한다.

- 어떻게 해야 하나?

공공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 재정립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앞서 강조했듯 수익성 중심의 의료기관 평가를 공공적 역할 중심의 평가로 바꿔야 한다. 기관장도 공공적 마인드가 있고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선임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의료기관 산별교섭은 물론 노사정이 함께 심도 깊은 대화와 협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가 수익성 위주의 잣대만 들이대거나 공공의료기관 노사 당사자를 배제한 채 일방통행식 지침만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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