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개혁의 뉘앙스는 공공기능의 민영화 또는 축소”
[커버스토리②] “개혁의 뉘앙스는 공공기능의 민영화 또는 축소”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5.10 12:10
  • 수정 2022.05.1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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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로 비효율적 기관 운영, 기관 발전 저해된다”
“수많은 개혁 추진했으나 정착 안 돼... 추가 개혁 필요 없어”

반복되는 공공기관 개혁론,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 설문조사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공공부문은 개혁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돼왔다. 공공기관은 방만한 경영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곳이 됐고, 노동자들에게도 철밥통, 귀족 노동자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새 정부 연례행사인 ‘공공기관 때리기’가 한참인 요즘, 공공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에는 351개 공공기관이 있다. 그 중 노동조합이 조직된 기관은 283개다. 283개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를 대상으로 ‘공공노동자가 말하는 공공부문 ‘개혁’은?’이라는 제목의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는 4월 19일부터 4월 29일까지 진행했으며, 노동조합 전·현직 대표자·간부 140명이 응답했다. 한 기관당 하나의 응답만 취합했음을 밝힌다(공동위원장 사업장 제외).

커버스토리② 필요 없는 공공기관 개혁이 반복된다?!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제작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공공기관은 역대 정부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 어쨌든 개혁은 꾸준히 진행됐던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의 첫 질문은 ‘공공기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였다. 꾸준히 개혁 대상이 됐던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기자회견이나 취재현장에서 만나 공공기관 개혁을 물어보면 부정적인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노동 현장을 관찰하면서 체감했던 것을 수치화된 설문조사 결과로 살펴봤다. 또한 주관식 답변으로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개혁’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봤다.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두 가지 시선

공공기관 개혁이란 무엇인가? 2008년 지방행정연구 제22권 제1호에 게재된 ‘공공기관 개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공기관 개혁은 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해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공공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확보하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공공기관 효율화와 공공기관 본연 역할인 공공서비스 제공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두 가지가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을지, 지금까지의 공공기관 개혁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행해져 왔는지는 미지수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한 공공기관 대표자는 주관식 응답에 “공공기관의 변화와 혁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개혁의 뉘앙스는 공공기능의 민영화 혹은 축소, 압력 등의 부정적 뉘앙스로 이해하기 쉽다”고 썼다.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개혁에 비판적인 노동자들

이번 설문조사의 첫 번째 질문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공공기관은 개혁의 대상이 돼 왔습니다. 답변자는 공공기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였다. 공공기관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정책 차원에서 진행돼 왔다. 정부가 생각하는 개혁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현장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결국 개혁을 수행하는 이들도, 개혁의 결과를 최전선에서 체감하는 이들도 현장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응답은 현장 노동자를 대표하는 각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대표자들이 해줬다.

공공기관 필요성에 ‘예’라고 응답한 비율은 38.6%(54명)이다. 61.4%(86명)는 공공기관 개혁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총 응답자는 140명이다. 5명 중 2명은 개혁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공공기관 필요성에 긍정하는 수치가 높은 것일까? 2018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공공기관의 혁신방향과 실천방안’에는 ‘공공기관 혁신에 관한 인식조사 결과’가 나온다. 해당 인식조사는 공공기관 종사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따로 진행됐다. 그중 공공기관 종사자의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2%가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1,070명 응답 표본 중 유효 표본 963명에서 694명이 혁신의 필요성에 긍정한 것이다. 해당 조사와 비교해봤을 때 〈참여와혁신〉이 진행한 이번 설문조사의 결과 38.6%는 높은 수치는 아니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노동조합 대표자를 설문 대상으로 했으니 역대 정부가 해왔던 공공기관 개혁을 반추하며 좀 더 비판적인 반응을 했을 경우가 있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대표자를 대상으로 설문했음에도 절반은 아니지만 40% 가까이 개혁의 필요성에 긍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관식 답변을 살펴보면 두 가지 해석 중 전자에 좀 더 힘이 실린다. 공공기관 개혁 필요성에 ‘예’라고 한 응답자들의 주관식 답변을 카테고리화해 빈도를 살펴본 결과, ▲발전을 위한 개혁* ▲공공성 강화를 위한 개혁 등에 응답한 빈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그간의 공공기관 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것들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정부에서 추진하는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두 카테고리에 포함된 대표적인 주관식 답변은 아래와 같다.
* 발전을 위한 개혁에는 ‘낙하산 인사’ 문제, ‘정부의 과도한 통제’ 문제,‘정부, 기재부, 주무부처와 소통이 안 되는’ 문제 등을 풀기 위함이라는 주관식 답변을 포괄하는 표현임

[발전을 위한 개혁]
“업무 관련성 부적격자의 낙하산 인사로 비효율적인 기관 운영, 기관 발전에 저해가 된다” (응답자 16)
“기재부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 소통도 전혀 되지 않고 공공부문에 있는 기관에 맞지 않는 경영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응답자 52)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공공부문 정책(공공성보다 효율성, 경제성을 강조하는), 여야 가리지 않는 낙하산 인사 등의 이유로 개혁은 필요함” (응답자 68)
“기재부 통제와 지배로 민주적 운영 불가, 정상적 노사교섭 불가, 경영평가 성과주의로 본연의 업무 부실화” (응답자 139)

[공공성 강화]
“현재 공공기관 운영은 정권 입맛에 맞게 수시로 바뀜. 국민에 대한 공공서비스 정립이 반드시 필요. 공공성, 사회적 역할과 기능 개편으로 대폭 혁신해야 함” (응답자 40)
“공공기관은 공공의 이익과 국가의 책무역할이 있음에도 시장논리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함” (응답자 107)

한편 공공기관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 응답자들의 주관답변에는 높은 빈도는 아니지만 내부개혁을 향한 목소리도 있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이든 공공이든 모든 부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개혁이 필요하다” (응답자 8)
“공무원 조직과 같이 폐쇄적이다” (응답자 61)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퇴보할 수밖에 없으므로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혁은 늘 필요함” (응답자 81)

이제까지 공공기관 개혁은 정치적,
공공서비스 제공 역할 못해

그렇다면 공공기관 개혁 필요성에 대해 ‘아니오’라고 응답한 이들의 답변에서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이들의 주관식 응답을 통해서는 노동조합과 현장 노동자들이 공공기관 개혁을 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지 좀 더 세부적으로 알 수 있다.

이들의 주관식 응답을 카테고리화하면 ▲공공기관 개혁은 정치적 흥정물 ▲공공서비스 안정적 제공 위해 개혁 남발은 안 됨(공공성 강화 포함) ▲개혁을 빙자한 노동조건 악화 등으로 나뉘고, 해당 카테고리의 주관식 응답 빈도가 높았다. 각 카테고리를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주관식 답변은 아래와 같다.

[공공기관 개혁은 정치적 흥정물]
“개혁은 필요하나 지금 개혁은 개혁을 핑계로 정치권 표몰이에 불과, 진정 필요한 개혁이 아니다” (응답자 43)
“공공기관 개혁은 진정성보다는 정권의 지지도 상향이라는 정치적 목적 강함. 정권 교체기마다 알짜 공기업의 부채를 늘려 정책사업을 강요해놓고 정작 정책이 실패하면 그 책임은 공공기관 임직원에게 돌려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음” (응답자 53)

[공공서비스 안정적 제공 위해 개혁 남발은 안 됨]
“공공기관은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개혁의 대상보다 안정적인 서비스 질 향상이 필요한 기관이다. 물론 서비스 질 차원의 개혁은 기관 자체적으로 자정능력을 갖출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동의하지만 외부의 결정에 의해 자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응답자 2)
“정해진 법령에 따른 공공기관의 설립 가치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목적인데 그간 신정부의 방침에 따라 공공기관의 설립목적과 목표가 흔들려 왔다. 이를 바로 잡자면 개혁이 아닌 각 기관의 설립취지에 맞는 경영에 충실한 것이 타당하다” (응답자 116)

[개혁을 빙자한 노동조건 악화]
“노동조건 개악만 개혁이라 표현” (응답자 72)
“그동안 과거 정부(이명박, 박근혜)에서 공공기관 선진화, 정상화라는 명분하에 사실상 노동조건만 후퇴시키고, 노동조합활동 및 단협만 후퇴시킨 부정적 사례다” (응답자 120)

공공기관 개혁 카드,
역대 정부 정치적 지지 확보용

공공기관 개혁에 노동조합 혹은 현장 노동자들의 비판적인 반응에도 역대 정부는 왜 공공기관 개혁 카드를 ‘반복적으로’ 꺼낼까.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 주관식 설문을 통해 들어봤다. 응답자의 주관식 답변 중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이야기가 ‘정치적 지지 확보’이다. 앞서 확인했던 ‘공공기관 개혁을 정치적 흥정물’로 삼는다는 답변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아래는 대표적인 주관식 답변 응답이다.

[정치적 지지 확보]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용, 정권유지용” (응답자 12)
“임기 초반 국정 운영의 우호여론 조성용” (응답자 22)
“전 정권 정책을 부정하고 폄하하기 위한 꼼수 및 현 정권은 정의롭다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공공기관에 대한 부정적 여론 형성 후 개혁대상으로 삼는 일이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고 있음” (응답자 53)

색다른 응답도 있었다. “자본 혹은 기업 중심 발전을 위해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공공부문의 노동조건을 우선 후퇴시키고, 이런 사회 분위기를 민간 노동계로 전파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생각됨”(응답자 49) 노동계에서 반대하는 임금피크제, 직무급제 등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기 위해 공공부문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뉘앙스의 주관식 응답들의 빈도도 꽤 높았다. ‘정책 실험을 하기 쉬운 곳’이라는 응답들이었는데, 어떤 정책 실험을 지칭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함께 묶지는 않았다. 다만 유추해보면 응답자50의 응답과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은 공공기관 개혁,
공공기관 노동자 냉소주의만 낳아

공공기관 개혁, ‘개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달랐다. 역대 정부마다 ‘정상화’, ‘선진화’, ‘사회적 가치 실현’ 등 다양한 슬로건으로 개혁을 실시했지만 공공기관 노동조합과 현장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개혁은 달랐다. 그랬기 때문에 공공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봤고, 정작 제대로 된 발전을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내비췄다. 공공기관 설립 목적에 맞게 사회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러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다른 생각에도 공공기관 개혁 카드가 역대 정부마다 나왔던 것은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이 다분했다.

그래서인지 공공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묻는 설문에 대한 응답자 61의 주관식 답변은 냉소적이다. “수많은 개혁을 추진했지만 정착되지 않은 모습이다. 추가 개혁은 필요치 않다” 역대 정부마다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됐던 공공기관 개혁, 그 개혁 중에서도 일정 부분 변화를 위해 괜찮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정착되기도 전에 다른 개혁이 추진됐다는 뉘앙스가 묻어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개혁에 비판의 목소리를 보낸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공공기관이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고 있을까. 이어지는 기사에서 바라는 변화의 모습을 설문조사 응답을 통해 분석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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