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내 일’에 살다] ② “녹색병원 설립이념과 전태일정신은 정확히 일치”
[전태일 ‘내 일’에 살다] ② “녹색병원 설립이념과 전태일정신은 정확히 일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0.12 00:00
  • 수정 2020.10.12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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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병원, 전태일 50주기 맞아 “전태일병원 되겠다”
전태일병원은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병원

[전태일, ‘내 일’에 살다]는 <참여와혁신>이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준비한 기획입니다. 슬로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일'에 전태일이 살아있다는 뜻이며, 현재의 또 다른 전태일들이 만들어 갈 ‘내일’을 상상해보자는 것입니다. 50년 전 전태일이 한국사회에 던진 불꽃은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번졌습니다. 전태일이 뿌린 불꽃을 다시 모았습니다. 매주 월, 금 총 10회의 연재기사를 통해 오늘날의 전태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녹색병원
ⓒ 녹색병원

“저희가 전태일 50주기 연재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러면 노동자를 찾아갔어야지, 왜 나한테 왔어.”

요즘 임상혁 서울 녹색병원 병원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말 그대로 '뻔질나게' 노동조합을 찾아다니고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녹색병원 발전 사업을 통해 노동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녹색병원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건강한 몸, 건강한 노동, 건강한 사회”라는 녹색병원의 설립이념을 더욱 잘 구현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임상혁 병원장은 ‘녹색병원이 전태일병원이 되겠습니다’는 말로 이 사업을 설명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
녹색병원의 탄생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의 결실로 설립된 병원이다. 원진레이온은 1966년 일본 동양레이온에서 사용하던 중고 설비를 들여와 설립된 인조 실크 제조회사다.

일본에서는 1929년 최초로 레이온 노동자 중독 사례가 보고된 이후 레이온 설비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레이온 공정의 위험성에 무지했다. 원진레이온이 폐업하는 1993년 6월 8일까지 해당 설비는 그대로 사용됐다.

수십 년 동안 원진레이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팔다리 마비와 언어장애, 기억력 감퇴, 콩팥기능 장애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모두 아황산탄소 중독에 의한 증상이었다.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아황산탄소, 황화수소 등이 그대로 원진레이온 노동자에게 노출됐던 것이다.

‘문송면 수은 중독 사건’은 1988년 한국에서 최초로 ‘일하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 사건이다. 이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직업병 인정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1993년 11월 28일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설립되면서 마무리됐다.

원진재단은 설립 이후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1999년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복지관을 개원했다. 2003년 9월 20일에는 종합병원급인 서울 녹색병원을 설립했다. 임상혁 병원장은 “원진재단에는 서울 녹색병원, 구리의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종합복지관 등 4개 기관이 있고, 4개 기관이 독립해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녹색병원

녹색병원은 설립부터 노동자를 위한 병원을 지향했다. 노동운동가들 사이에서 녹색병원이 ‘단식투쟁을 마치고 찾아가는 병원’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그 역사성을 드러내는 한 가지 예다. 임상혁 병원장은 녹색병원만의 특색을 이렇게 말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 많이 있죠. 예를 들면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시절이 생각이 나네요. 그 때 한상균 위원장은 감옥에 가 있던 상태였어요. 당시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단식을 마치고 입원해 있는데 경찰들이 체포하려고 병원에 들어왔었어요. 온 직원들이 몸으로 막아냈죠. 그런 모습이 다른 병원과 차이라면 차이겠죠.”

10월 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임상혁 서울 녹색병원 병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10월 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임상혁 서울 녹색병원 병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또한 임상혁 병원장은 인권치유센터와 노동자환경건강연구소를 녹색병원만의 특징으로 꼽았다. 인권치유센터는 사회적 단식, 고공농성, 공권력 피해 환자, 성폭력, 아동폭력 등 인권 침해와 폭력을 겪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기관이다. 노동자환경건강연구소는 작업환경 개선과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연구한다.

임상혁 병원장은 “우리 병원이 서울대학교병원이나 아산병원처럼 의료수준을 구비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그런 병원들이 할 수 없는 걸 해보자고 하고 있다”면서, “노동자 재활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 병원의 가장 좋은 곳에 재활환자치료실이 있다. 재활노동자가 직업적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러한 녹색병원의 활동은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를 위해서 임상혁 병원장은 노동자들의 힘뿐만 아니라 사회전체가 노동자의 건강을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인 관심을 많이 만들어내야죠. 구의역 김군이나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은 우리 사회 전체가 슬퍼한 사건이거든요. 예를 들면 옛날에는 마트나 편의점, 하다못해 커피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앉지 못하고 계속 서 있어야 했어요. 그때는 의자 자체가 없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잘 쉰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의자는 다 있어요. 이게 노동자들의 힘만으로 올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사회적인 운동을 통해 변화를 만든 거죠. 녹색병원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함께 사회적인 실천으로 나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녹색병원과 전태일정신은 정확히 일치한다”

지난해 6월 임상혁 병원장이 서울 녹색병원에 새로 부임한 이후 첫 사업으로 발전위원회를 조직했다. 기존 녹색병원의 활동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발전위원회를 통해 기부금을 모아 ▲의료사각지대 노동자를 돕는 전태일병원 ▲지역사회 취약계층을 돕는 지역거점병원 ▲인권단체 네트워크인 인권치유119 조직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을 지원하는 친환경병원 등의 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에게 의료지원을 하는 사업에는 전태일의 이름을 붙였다. 임상혁 병원장은 전태일정신과 녹색병원의 설립 취지가 일치한다고 이야기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있어요. 그게 저는 배려와 연대라고 생각해요.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배려하고 연대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이라고 봐요. 그래서 전태일 열사처럼 본인의 버스비를 거둬서 시다들에게 줄 풀빵을 사는, 정말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 그런 모습을 전태일 열사의 정신, 배려와 연대라고 생각하죠. 전태일 열사를 저는 꼭 노동운동가만으로는 보지 않아요. 전체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큰 등불. 그렇게 생각해요.”

코로나19가 한국에 확산되기 이전, 임상혁 병원장은 발전계획을 3년 동안 순차적으로 추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초 계획은 많이 흩트러진 상태다. 코로나19로 위기의 노동자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임상혁 병원장은 “코로나19로 너무도 많은 노동자들이 위기에 처했다. 공연예술 노동자나 프리랜서들은 자기를 지켜줄 노동조합도 없고, 노동자성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너무 힘든 상황”이라면서,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생기는 건강의 불평등을 우리가 좀 더 빨리 찾아 나가보자고 했다”고 밝혔다.

현재 녹색병원은 올 가을 두 달 동안 요양보호사, 공연예술노동자 등 많은 사각지대 노동자들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업무협약에 따라 사각지대 노동자가 녹색병원에서 치료받은 경우도 벌써 104명에 달한다.

하지만 당초 목표한 발전기금 50억 원, 후원회원 1만 명 모집은 진전이 더딘 상태다. 임상혁 병원장은 “목표치가 50억 원 모금, 1만 명 조직이었는데 쉽지 않다”면서, “우리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다. 기업별 노조로 쭉 이어온 배경도 있고 자기 주머니를 열어서 도와준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이야기해서 넓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상혁 병원장이 당초 계획한 녹색병원 발전 3개년 계획의 마지막에는 ‘녹색병원과 같은 병원을 하나 더 만들어 보자'는 것도 있다. 우리는 전태일이라는 이름 뒤에 ‘열사’라는 호칭을 붙여 부르지만, 우리 모두 전태일과 같이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전태일은 다르지 않다. ‘노동자가 건강한 세상을 위한 병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전태일이 되는 또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녹색병원 후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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