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내 일’에 살다] ⑦ “당신은 어떤 전태일로 기억되고 싶나요?”
[전태일, ‘내 일’에 살다] ⑦ “당신은 어떤 전태일로 기억되고 싶나요?”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11.02 00:00
  • 수정 2020.10.29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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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는 전태일 양성소,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노동운동 활동가 양성과정
노동운동 활동가 안내강사 과정 수강생 2인 인터뷰

[전태일, ‘내 일’에 살다]는 <참여와혁신>이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준비한 기획입니다. 슬로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일'에 전태일이 살아있다는 뜻이며, 현재의 또 다른 전태일들이 만들어 갈 ‘내일’을 상상해보자는 것입니다. 50년 전 전태일이 한국사회에 던진 불꽃은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번졌습니다. 전태일이 뿌린 불꽃을 다시 모았습니다. 매주 월, 금 총 10회의 연재기사를 통해 오늘날의 전태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평등사회노동교육원
ⓒ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근로기준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태일은 바보회 회원들은 물론이고 주위의 여공들이나 새로 사귀게 되는 친구들에게 기회 있는 대로 근로기준법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대우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열심히 설명하였다.

-《전태일평전》 개정판 192쪽 중

50여 년 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알지 못하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에 대해 알렸다. 전태일이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불타오른 지 50년. 여전히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과 노동운동은 먼 존재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탄생한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은 노동운동 활동가 양성과정을 통해 2011년 이후 2,000여 명의 기초과정 수강자와 100여 명의 중급과정 수강자, 140여 명의 안내강사를 배출했다. 토론 중심으로 진행되는 노동운동 활동가 양성과정에서 수강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안내강사는 50여 년 전, 근로기준법을 알지 못하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뭔지 알려준 전태일과 같다.

20살 이후로 쭉 활동가로 일해 온 박예준 국장은 6년 전에 노동운동 활동가 기초과정을 수강했다. 3개월 동안 기초과정을, 6개월 동안 중급과정을 수강한 박예준 국장은 좀 더 전문적인 활동가 양성과정을 이수하고자 노동운동 활동가 안내강사 과정을 수강했다. 노동운동 활동가 양성과정을 통해 평등사회노동교육원과 인연을 맺고 지금은 비상근 활동가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미디어국장을 맡고 있다.

박예준 국장은 “안내강사는 가르치는 역할이 아니라 수강생과 함께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수강생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역할”이라며 “수강생 대부분이 전태일 정신으로 노동운동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고 수료 이후 현장에 돌아가 다른 노동자에게 전태일 정신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전태일 양성소’라는 의미다.

박예준 국장은 “전태일은 내 일의 시작이자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20살 이후로 노동운동 활동가의 삶을 살아온 그에게 일이란 노동운동이고, 노동운동의 시작인 전태일은 그의 일의 시작이자 그 자체이다. 박예준 국장은 “만물은 노동자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니 노동은 사실 세상의 전부 같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 박예준 국장에게 어떤 전태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우리가 모두 전태일이니까 지금 우리가 전태일을 기억하듯, 50년 후의 사람들도 저를 그렇게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전태일을 매일 떠올리지 않더라도 11월이나 어떤 계기가 되면 전태일을 꺼내는 건 그만큼 우리가 전태일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예준 국장처럼 이른 나이에 노동운동에 뛰어든 노동운동 활동가 안내강사 과정 수강생이 있지만, 정민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연구노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비정규지부 지부장처럼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든 수강생도 있다. 정민채 지부장은 40대에 노동조합을 처음 시작했다.

ⓒ 평등사회노동교육원
ⓒ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정민채 지부장은 “40대에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며 “이경진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이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역시 40대에 노동운동을 시작했다고 알려줘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노동운동 활동가 양성과정을 수강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민채 지부장은 노동운동 활동가 기초과정을 수강하고 8년 만에 노동운동 활동가 안내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정민채 지부장은 안내강사로서 두 기수의 수강생을 배출했고 지금도 대전에서 3번째 수강생과 함께 토론하고 있다.

정민채 지부장에게 전태일은 어떤 의미일까? 정민채 지부장은 “전태일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산화했다”며 “본받고 싶은 사람이자,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전태일은 암울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에 헌신했는데, 지금은 민주적인 시대임에도 노동운동을 하는 게 더 어려운 게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노동조합은 자판기 같다”며 “대부분 조합비만 내면 활동가나 집행부가 알아서 해줄 것으로 생각하는데, 활동가나 집행부의 힘은 조합원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전태일이다’는 구호가 더 와닿는다”고 말했다.

정민채 지부장은 어떤 전태일로 기억되고 싶을까? 정민채 지부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없앤 전태일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정민채 지부장은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과정에서 양산되는 자회사 역시 간접고용 형태”라며 “간접고용 형태 자체가 문제인데, 비정규직에서 벗어났다는 프레임에 갇힐 때 속상하다”고 말했다.

정민채 지부장은 현재 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시설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이다.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이후 오랜 시간의 협의와 투쟁 끝에 2021년 1월,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물론 내년 1월에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정민채 지부장은 “그래도 싸우는 중”이라며 ‘내가 전태일’이라는 생각으로 투쟁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는 50년 동안 전태일을 잊지 않았다. 또, 50년 후의 누군가를 우리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전태일로 기억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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