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⑥ 목구멍이 동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⑥ 목구멍이 동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10.15 09:41
  • 수정 2020.10.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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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공동기획

코로나19가 2020년을 휩쓸었다. 이 ‘팬데믹’의 한가운데 보건의료 노동자와 공무원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묵묵히 견디고 있다. <참여와혁신>은 특히 최일선 의료진에 비해 한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해온 공무원 노동자를 주목했다. 방역 업무부터 시작해 자가격리자들을 지원하고, 확진자 동선을 파악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도 공무원 노동자들이었다. <참여와혁신>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공무원 노동자들의 일터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자 연재기사를 진행한다. 다양한 직무에 있는 공무원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는다. “코로나19가 일터를 어떻게 바꾸었나요?”

경산시보건소에서 검체채취팀과 박미정 경산시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이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10월 7일, 출동과 기존 업무 소화 등을 이유로 검체채취팀 일부만 사진 촬영에 응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경산시보건소에서 검체채취팀과 박미정 경산시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이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10월 7일, 출동과 기존 업무 소화 등을 이유로 검체채취팀 일부만 사진 촬영에 응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초반에는 무섭다는 감정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빴어요”
경산시보건소 검체채취팀 공무원 노동자

코로나19 확산으로
운전실력 급상승

경북 경산시보건소에는 23명의 공무원과 기간제 노동자가 함께 손발을 맞추는 검체채취팀이 있다. 검체채취팀은 코로나19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나 해외입국자 등 격리가 필요한 대상자의 거주지에 방문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는 일을 한다. 자가격리자는 선별진료소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가격리자는 아니지만, 거동이 불편한 대상자의 경우에도 검체채취팀이 출동해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한다.

23명의 검체채취팀 노동자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검체채취는 의료인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산시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직 공무원의 다수가 검체채취팀으로 차출됐다. 인원은 계속 변동됐지만, 대구와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올해 봄에는 검체채취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만 30명 가까이 됐다. 현재 검체채취팀은 통합건강증진사업, 심뇌혈관질환관리 사업, 영양플러스 사업, 치매안심센터 등 경산시보건소가 수행하던 기존 사업을 병행하면서 검체채취 업무를 수행한다.

경산시보건소 검체채취팀이 검체채취대상자의 집을 방문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 경산시보건소
경산시보건소 검체채취팀이 검체채취대상자의 집을 방문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 경산시보건소

검사 대상자가 직접 찾아와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선별진료소의 운영방식과는 달리, 검체채취팀은 직접 검사 대상자의 거주지에 찾아간다. 레벨D 보호복과 의료폐기물통, 채취한 검체를 담을 아이스박스 등 짐 한 꾸러미를 들고 출동하기 위해서 차량 운행은 필수다. 두 가구를 방문한 뒤 나오는 의료폐기물만 담아도 꽉 차는 의료폐기물통과 아이스박스, 각종 물품을 관용차에 가득 싣고 꾸불꾸불한 시골길을 운전해야 할 때면 검체채취팀의 초보운전자들은 고역을 겪는다. 그래도 운전이 서툰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정윤영 주무관은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에는 하루에 운전만 3~4시간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도원 주무관은 “처음 차출됐을 때는 운전이 정말 서툴러서 힘들었다”면서도 “코로나19를 겪으며 운전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웃었다.

특히 이도원 주무관은 검체채취팀에 온 지 2주 정도 됐을 무렵, 컴컴한 시골길을 운전하다가 길에서 죽은 노루를 발견한 적도 있다고 했다. 운전이 서툰 이도원 주무관과 동료는 죽은 노루를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 핸들을 확 꺾었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다니는 차가 없어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10분 정도 길 한 가운데에서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고 이도원 주무관은 설명했다.

검체채취하며 겪은 에피소드만 해도 여러 개,
시신 코로나19 검사하기도

검체채취를 위해 출동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묻자 검체채취팀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엄진경 주무관은 “분명히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내려서 반대편으로 가는 걸 보고 검체채취대상자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숨어서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윤영 주무관은“아파트 복도에서 보호복으로 갈아입는 편인데, 현관문에 달린 카메라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여러 경험을 통해 “방역업체에서 소독을 위해 나왔다”고 거짓말하거나, 다른 층에 내려서 계단을 이용해 대상자의 집을 방문하는 방법 등을 강구해냈다. 레벨D 보호복을 입은 이들의 방문으로 검체채취대상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그래도 낫지만, 단독주택에 사는 검체채취대상자의 집을 못 찾을 때는 난감하다고 한다. 이도원 주무관은 유독 검체채취대상자의 집만 보이지 않아 경차 한 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길에서 전진과 후진을 40분간 반복하면서 검체채취대상자의 집을 찾기도 했다고 전했다.

검체채취를 마치고 나가는 검체채취팀을 향해 소금을 뿌리거나 코로나19 바이러스 취급을 하며 소독약을 뿌리고 문고리를 닦는 모습을 볼 때는 처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레벨D 보호복과 장갑, 마스크 등은 검체채취를 마치고 검체채취대상자 집을 나서자마자 벗어서 의료폐기물통에 담아야 하는데, 집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소금이나 소독약을 뿌리거나 문고리를 닦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가끔은 고생이 많다면서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권유하는 검체채취대상자도 있다고 한다. 감염의 위험으로 곤란하다고 답하면 “우리는 괜찮다. 입 닿는 곳만 소독하고 먹는 것도 안 되냐”고 되묻기도 한다. 이도원 주무관은 “혼자 사는 할머니의 검체를 채취하러 간 적이 있는데, 할머니가 ‘늙은이를 찾아와서 고맙다’며 5만 원을 차비로 쓰라고 쥐여준 적이 있다”며 “받을 수 없어서 돌려드렸는데 차 안으로 돈을 던지면서 ‘고마워서 그러니 제발 가져가라’고 하셔서 말리느라 고생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신천지에서 비롯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시기에는 “신천지인 것을 부모님이 알면 안 되니 아파트 복도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하면 안 되냐”고 애원하는 검체채취대상자가 있었다. 자신이 신천지 신도인 것을 비밀로 해달라는 요구도 많았다. 또는 “신천지 신도가 아니라 단지 지인 모임에 간 건데 내가 왜 검사 대상자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부 중의 한 명은 신천지 신도이고 다른 한 명은 일반 교회 신도여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것을 목격한 경험도 있다.

유치원에서 경산시보건소에 보낸 편지. ⓒ 경산시보건소
유치원에서 경산시보건소에 보낸 편지. ⓒ 경산시보건소

한 번은 어느 유치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아이 200여 명의 검체채취를 위해 검체채취팀이 출동했다.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의 검체를 채취하는 일은 심적으로 고됐다. 며칠이 지난 후, 200여 명의 어린이는 경산시보건소로 편지를 보냈다. “힘들게 긴 옷 입고 저희들을 검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 음성이에요”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편지로 아이들의 무탈함에 대한 안도와 따뜻함을 느꼈다고 검체채취팀 노동자들은 설명했다.

힘들었어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시신의 코로나19 검사를 하며 충격을 받은 경험도 있다. 사망원인을 밝혀야 함은 물론, 여러 사람의 안전을 위해 시신의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출동한 4월의 어느 봄날을 이미영 주무관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이미영 주무관은 ‘관내에 시신이 발견됐으니 코로나19 검체채취를 위해 출동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파리한 회색빛 안색으로 누워 있던 젊은 시신을 구급대, 경찰관, 과학수사대 등의 관계자가 둘러싸고 있었다고 설명한 이미영 주무관은 “사망자가 자살인지 타살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검체채취를 마친 후 예쁜 벚꽃이 흐드러진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이미영 주무관은 갑자기 울컥, 서러운 감정이 올라왔다고 했다.

“아직도 당시 망자의 사인은 모르지만, 검체채취를 마치고 나오는데 벚꽃이 정말 예쁘게 흩날리는 거예요. 그때가 4월이었는데 이렇게 예쁜 풍경을 보지도 못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젊은이가 안쓰럽고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서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동안은 비슷한 장소를 보기만 해도 회색빛 안색으로 누워 있던 시신이 생각나 두려움이 컸어요.”

마주한 많은 상황, 제대로 된 트라우마 치료 없이
사명감 하나로 버텨내는 중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19 검사는 낙인과 같다.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나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자 각 지방자치단체는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의 공개 수위를 조절하기도 했다. 자연히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검체채취대상자의 집에 방문하는 검체채취팀이 반가울 리 없다.

책상 가득 검체채취대상자의 인적사항이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검체채취대상자는 “몇 시에 도착 예정이냐”고 물어도 “오늘 중에 간다”는 대답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였다. 검체채취를 위해 출동하는 중간에도 검체채취대상자가 추가되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오늘 방문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함께 검체채취 업무를 담당하는 경산시보건소 공무원노동자들의 마음에도 상처가 하나둘 새겨졌다.

검체채취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없다는 생각에 커피 한 잔 마음 놓고 마시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주변인 역시 함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엄진경 주무관의 경우, 어린아이가 있어 집에서도 가족들과 동선을 분리해 생활했다. 긴급돌봄을 맡기고 싶어도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활용할 수 없었고 아이의 어린이집에서는 “어머님 (코로나19로부터) 괜찮으시죠?”라는 전화를 받는 등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조금 잠잠해지자, 정신적으로 나약해짐을 느꼈다고 이미영 주무관은 말했다. 바쁜 시기가 지나고 숨 쉴 여유를 찾자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다. 이도원 주무관은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시기에는 몰랐는데, 남성분 혼자 있는 거주지를 갈 때 무섭다”며 “2인 1조로 출동하지만, 무서울 때는 최대한 문 가까이에서 검체를 채취하고 빠르게 빠져나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힘들고 상처를 받아도 검체채취 업무를 중단할 수는 없으니 그냥 참고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이미영 주무관은 “검체채취를 위해 대상자가 입을 벌리면 그 목구멍이 동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심리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검체채취라는 일 자체가 두려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에서 경산시보건소에 보낸 편지. ⓒ 경산시보건소
유치원에서 경산시보건소에 보낸 편지. ⓒ 경산시보건소

그런데도 트라우마 치료가 제공된 적은 없다. 지치고 상처받은 검체채취팀 공무원 노동자들의 마음은 화장실에 숨어 눈물을 훔치는 방식으로 다스린다. “고맙다. 고생한다”는 응원의 한 마디로 마음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바르기도 한다. 경산시보건소 검체채취팀 공무원 노동자들은 “경산시민의 안전을 위해 ‘우리가 뚫리면 안 된다’는 사명감 하나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공무원 노동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보를 감추거나 늦게 공개하는 일은 전혀 없기 때문에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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