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① 의료 공무원 노동자의 긴 출장
[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① 의료 공무원 노동자의 긴 출장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8.31 00:00
  • 수정 2020.09.15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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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공동기획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 공무원 노동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지부

코로나19가 2020년을 휩쓸었다. 이 ‘팬데믹’의 한가운데 보건의료 노동자와 공무원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묵묵히 견디고 있다. <참여와혁신>은 특히 제일선의 의료진에 비해 한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해온 공무원 노동자를 주목했다. 방역 업무부터 시작해 자가격리자들을 지원하고, 확진자 동선을 파악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도 공무원 노동자들이었다. <참여와혁신>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공무원 노동자들의 일터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자 연재기사를 진행한다. 다양한 직무에 있는 공무원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는다. “코로나19가 일터를 어떻게 바꾸었나요?”

 

“정말 힘들었는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약이었네요”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 공무원 노동자들

“비닐로 된 방호복을 입고 청도와 대구에서 업무를 했습니다.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할 때마다 계속 고개를 숙이는데 그 움직임이 좀 큽니다. 고글에 땀이 찹니다. 병동에 들어간 지 20-30분이면 고글 안 땀이 물이 되어 찰랑찰랑 거립니다. 근데 그걸 만질 수가 없습니다. 감염이 되잖습니까. 그런 상태에서 환자를 두 세 시간 봅니다. 마스크도 다 젖습니다. 같이 참여했던 간호사들 역시 장갑을 끼니까 혈관을 만지는 것도 힘들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치를 하다 보면 공포감까지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 공무원 노동자들은 두 번의 긴 출장을 다녀왔다. 청도 대남병원과 대구 제2미주병원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치료를 위해서다. 이철호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 국가공무원노동조합(이하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부지부장이 회상한 당시 상황이다.

2월 19일 저녁, 보건복지부에서 긴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청도 대남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했는데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고, 그 병동 내 감염이 더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팀을 꾸려 청도로 향했다. 출장을 무사히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전승권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부장, 이철호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부지부장, 남윤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났다.

 

지난 2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청도 대남병원에 도착했을 때의 전경. ⓒ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계의 ‘응급실’로

청도 대남병원에 간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 공무원 노동자들은 베이스캠프를 꾸려 진료를 시작했다.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대남병원 전체 환자 중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코로나19 양성이었다. 대남병원은 한국의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온 병원이기도 하며, 밀폐된 공간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양성 환자가 대남병원 전체 환자의 98%인 108명을 넘어가자 정부는 ‘코호트 격리’를 적용시켰다. 코호트 격리는 특정 질병에 함께 노출된 사람을 동일 집단으로 묶어 격리하는 기법이다. 양성 환자를 선별해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이송하려 했던 계획은 어그러졌다. 2016년 개소한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감염병 환자를 위한 병동 수용 인원은 26명 정도였다.

이철호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부지부장은 대남병원의 열악한 환경을 강조하며, 국립정신건강센터의 목적을 다시금 새겼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남병원의 복도와 병실은 구분이 안 돼 있었고, 환자들은 바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치료를 할 수가 없어 정신과병동에서 아래 4층 종합병원으로 내렸는데 그 역시도 치료적 환경으로는 열악했다”며 “국가 재난 상황에서 정신적 문제가 있는데 감염계 환자가 있다면 앞으로도 우리가 응급실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남병원 환자들이 지냈던 국립정신건강센터 병동.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대남병원에서의 업무 수행을 마치고 3월 6일 완치되지 못한 환자들을 서울로 이송했다. 119와 경찰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대남병원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러나 대남병원 환자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30명 가까이 남았던 시점인 3월 말, 대구 제2미주병원에서도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 마산에 음압시설을 갖춘 결핵 전문 병원이 있어 환자들을 옮겨 치료했다.

남윤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실 제일 큰 걱정은 우리 직원들 안전이었다. 준비가 안 된 병동에 들어갔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의료진들의 병원 내 감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다”고 안도했다.

왼쪽: 전승권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부장, 오른쪽 : 이철호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부지부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공무원 노동조합이요? 어렵죠···
작은 물줄기가 큰 강물이 되듯, 우리는 우리 목소리를 그렇게 내야죠“

“나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현장에 있는 의료 공무원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환경에서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청도에 있을 때는 밤마다 ‘직원들을 위한 마음치료세션’이 열렸다.

9년 전 시작한 노동조합에는 현재 80명 정도의 조합원이 소속돼 있다. 공노총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지부는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애썼다. 의료진들이 잘 시설이 없어서 빈 병실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통과 같은 3교대, 8시간 노동이었지만 방호복을 입고 손에 진물이 나도 장갑을 두 개씩 꼈다.

전승권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부장은 “감염지역으로 파견된 직원들의 2차 감염 시 다른 병원으로 옮겨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또 2주 파견 후 자가격리를 실시하는 것을 센터장에게 건의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이해를 시켜야 한다. 작은 물줄기가 큰 강물이 되듯,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지금의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사실 위로를 해 줄 수는 없다. 다 같이 고생하는데 말로 위로를 해 봤자··· 공무원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힘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철호 공노총 국공노 국립정신건강센터 부지부장도 “당시 일·가정 양립은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투입돼야 하는 건 맞는데, 그것에 대한 합당한 환경적인 요건들을 같이 해줘야 한다”며 “식사, 잠자리, 물품에 대한 문제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 희생만 강요할 게 아니라 제도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코드 그레이, 코드 그레이, 환자 병동에 도착했습니다.”

병원에 음성이 울려 퍼지자 남윤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8월 25일 (취재 당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도착하는 날이었다. 수도권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른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의 3·4·5층 버튼은 막혀 있었다. 병원에 잔잔히 울리는 ‘코드 그레이’ 사인은 그들의 노동이 다시 시작되는 신호이기도 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경.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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