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③ 확진자 0명 ··· 순창구림우체국에 무슨 일이 있었나
[코로나19에 맞선 공무원들] ③ 확진자 0명 ··· 순창구림우체국에 무슨 일이 있었나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9.09 00:00
  • 수정 2020.09.07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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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공동기획

코로나19가 2020년을 휩쓸었다. 이 ‘팬데믹’의 한가운데 보건의료 노동자와 공무원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묵묵히 견디고 있다. <참여와혁신>은 특히 제일선의 의료진에 비해 한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해온 공무원 노동자를 주목했다. 방역 업무부터 시작해 자가격리자들을 지원하고, 확진자 동선을 파악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도 공무원 노동자들이었다. <참여와혁신>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공무원 노동자들의 일터와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자 연재기사를 진행한다. 다양한 직무에 있는 공무원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는다. “코로나19가 일터를 어떻게 바꾸었나요?”

박지혜 주무관이 우체국 업무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공적마스크 판매 6개월, 든든한 마을 우체국
순창구림우체국 공무원 노동자들

전북 순창군, 초행의 이 낯선 곳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고추장이 유명한 고장이라는 정도였다. 서울에서 가는 길은 남원까지 KTX로 이동했다가 다시 시외버스로 순창까지, 그리고 버스로 구림면까지 갈 계획이었지만 정처 없이 배차를 기다리다 결국은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순창 구림면에서 처음 마주친 풍경은 넓은 밭, 그리고 낯선 이를 향해 짖는 강아지였다. 주민 수 2,500여 명. 두릅과 블루베리가 자라는 순창 구림면의 최대 ‘번화가’는 마을입구다. 50미터 정도 되는 2차선 도로 안에 농협 하나로마트, 중식당, 작은 학교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 초입에 우체국 하나가 있다. 순창구림우체국이다. 평소에는 주로 농산물을 배송하는 역할을 맡아 수행해왔지만 올해 2월 말부터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공적마스크 판매 업무가 더해졌다. 공적마스크 판매가 종료되는 8월 31일, 순창구림우체국을 찾아 그간의 여정을 들었다. 권오태 순창구림우체국장, 박지혜 주무관을 만났다. 순창구림우체국 공무원 노동자는 이 둘이 전부다.

왼쪽 : 박지혜 주무관, 오른쪽 : 권오태 순창구림우체국장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어머님! 우체국 들어올 때 마스크 쓰셔야죠.”

“아이고 그게 오다가 날아가부렀당께. 바람이 씨게도 안 부는디.. 마스크 하나 줘요.”

순창구림우체국은 지난 2월 28일부터 공적마스크 판매를 시작했다. 정부가 보건용 마스크의 공적판매를 2월 26일 결정함에 따른 것이었다. 판매처 중 하나로 지정된 우체국은 코로나19 특별관리지역이었던 대구와 청도의 마스크 판매를 우선 실시하고, 읍·면지역 우체국으로 확대했다. 1인 5매, 개당 800원씩에 마스크를 팔았다.

마스크를 판매하던 초기에는 판매시간에 맞춰 번호표를 교부했다. ‘공적마스크 5부제’를 실시하기 전인 3월 11일까지는 그야말로 ‘혼선’의 연속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적마스크 판매 방법에 대한 순창구림우체국에 묻고, 우체국은 정부의 지침을 설명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당시 상황은 순창구림우체국 공무원 노동자에게는 꽤 낯설고도 힘든 일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길게 줄을 서고, 오전 8시 전부터 나와 기다렸다. 새벽차를 타고 우체국에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침은 계속 바뀌고, 오시는 분들도 많이 어려워했습니다. 초반에는 우체국이 정말 시끄러웠습니다. 마스크 판매에 대한 어르신들의 고견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웃음). 이미 줄은 길게 서 있고 판매량은 정해졌고, 우리도 물량을 무한정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날씨가 그래도 아침, 저녁은 제법 쌀쌀했습니다. 저희 공무원들이 무한정 일찍 와서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이 좁은 데서 바닥에 쭉 앉아 있었습니다. 의자도 없었습니다. 공적마스크는 다 같이 나눠 가지려고 하는 건데도··· 그런 부분이 참 힘들었습니다.”

권오태 순창구림우체국장은 우체국을 다니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창구에 있던 적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순창 구림면에는 약국이 없어 우체국과 농협에서만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약국 시설이 갖춰진 순창 시내를 제외한 구림, 쌍치, 복흥 등 읍·면 지역은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팔았다.

다행스럽게도 순창 구림면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아직까지 없다. 우체국 공무원 노동자들이 특히 신경 썼던 일도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순창구림우체국이 문을 닫게 된다면 주민들의 마스크 수급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 눈에 선했다. 순창의 이웃인 광주우편집중국은 코로나19로 인해 폐쇄된 적도 있었다. 우체국 공무원 노동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매일 아침 방역을 하고 우정사업본부로부터 마스크를 지급받았다.

두 우체국 공무원 노동자가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작은 우체국이지만 자부심을 느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나서야죠“

박지혜 주무관은 7월 1일자로 순창구림우체국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순창구림우체국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일하게 된 첫 직장이다. 박지혜 주무관은 이번 공적마스크 판매를 보며 우체국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코로나19에 더욱 취약할 수 있습니다. 우체국은 어디에나 있는 친숙한 국가기관 중 하나입니다. 우체국은 시골에서도 기존의 창구를 이용하면서 다방면으로 방역 체계에 대해 도와드릴 수 있다는 점이 큰 의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번 일은 국가적인 경험이 쌓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이 재난도 언젠간 끝이 있을 것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우체국 공적마스크 판매 백서>를 통해 판매 과정과 방법, 우체국 공무원 노동자들의 애환 등을 자료로 기록했다. 우정사업본부는 마스크를 전국의 마을 우체국으로 조달하기 위해 대전우편집중국에 현장 임시사무실을 세우고, 마스크 제조업체와 협업했다. 3월 11일에는 약국이 활용하고 있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중복구매확인시스템’을 도입해 마스크의 구매이력 등록을 실시했다. 공평한 마스크 판매를 위해서였다.

‘공적마스크 5부제’ 이후 우체국의 마스크 판매는 차츰 안정되는 양상을 보였다. 마스크 공급이 원활해지자 정부는 6월 1일 공적마스크 구매 요일제를 폐지했다. 7월 10일에는 우체국의 공적마스크 판매를 종료했으나, 약국과 농협이 없는 92개 읍·면 우체국에는 8월 말까지 계속해서 공적마스크를 판매하도록 했다. 순창구림우체국도 92개 우체국에 포함됐다. 그렇게 8월 31일, 공적마스크 판매가 우체국에서 완전히 끝나는 날 권오태 순창구림우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시골에도 마스크를 판매할 수 있는 기관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걸 우리가 맡아서 한 것뿐입니다. 마스크도 중요하지만 사는 행위에서도 나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매일 뉴스를 보며 지역 주민들은 코로나19가 우리 마을에 올까 많이 걱정했습니다. 저희는 비록 작은 우체국이지만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런 사태가 또 안 오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 때 우체국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우리는 업무가 하나 추가되는 거지만, 효용이 크다고 하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전국 우체국 중 677곳이 폐국 수순을 밟는다고 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있고, 우체국은 지역에서 점조직으로 공적인 영역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적마스크 판매처럼 말입니다.”

우체국 공무원 노동자들은 지역 사회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구하고 주민들에게 판매했다. 마스크라는 매개체를 통해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듣는 창구로 역할하기도 했다. 오늘날엔 누구나 마스크를 구할 수 있다. 그런 오늘이 오기까지 수많은 우체국 공무원 노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순창구림우체국 전경.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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