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창구단일화 10년, 살아남은 노동조합들②] “일벌백계 사례가 될 수는 없었어요”
[교섭창구단일화 10년, 살아남은 노동조합들②] “일벌백계 사례가 될 수는 없었어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10.12 18:46
  • 수정 2021.10.12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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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지회 10년 만에 ‘자력으로’ 교섭대표노조 지위 획득

올해 시행 10년을 맞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법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노동조합 활동을 억압하는 수단을 회사에게 선물했다. 노동조합의 ‘교섭할 권리’를 효과적으로 박탈한 것이다. 수많은 노동조합들이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아래서 ‘깨져’ 왔다. 그러나 강한 놈이 사는 게 아니라 끈질긴 놈이 살아남는다. 격언처럼 전해져 오는 이 말을 몸소 증명해낸 노동조합이 있다. 교섭창구단일화 10년,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교섭권을 되찾은 노동조합들을 만났다. 

[인터뷰] 조장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조장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 삼성그룹노동조합대표단 의장도 겸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지난 6월 10일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노조 설립 10년 만이다. 법원에서 삼성의 노조파괴 범죄를 최초로 인정한 게 2019년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노조파괴 범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게 2020년 5월임을 고려할 때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조장희 부지회장은 “법으로 다 이겼어도 노동조합을 운영하고 활동하는 데는 큰 변화가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삼성지회가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라는 ‘악법’을 뚫고 자력으로 교섭대표노조가 되고자 한 이유였다. 삼성그룹노동조합대표단 의장을 맡고 있기도 한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과 함께 지난 10년의 과정을 되짚어 봤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노사협의회에서 활동한 것으로 안다. 노사협의회에서 활동한 계기는 무엇인가?

1998년 IMF 당시 무자비하게 해고가 이뤄졌다. 잠깐 면담하고 오면 사직서를 쓰는 상황이었다. 이건희 자서전인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니 에버랜드뿐만 아니라 전 계열사에 걸쳐서 단 1~2달 만에 몇 조의 인건비를 아낄 정도의 인력 감원이 있었더라. 그런 일을 보면서 회사야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왜 노동자 쪽에서 대변하는 사람이 왜 안 나올까 의문이 들었다. 둘러보니 노사협의회가 있었다. 당시는 굉장히 나이브하게 ‘내가 가서 이걸 하면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판단이었다.

노사협의회를 하면서 느낀 점이 노동조합 설립 계기일 것 같다.

노사협의회에 출마하면서 당선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부서장이 대놓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내정이 돼 있던 거다. 후보가 5명까지 늘어났다가 일대일이 됐다가 어렵게 당선됐다. 그 분위기에서 나를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뽑아준 고마움 때문에 열심히 했다.

노조파괴 문건을 보면 계열사에서 MJ라는 인력을 분류한다. ‘문제’의 약자다. 문건에 나온 표현을 쓰면 MJ사원들을 ‘심성관리’를 하라고 한다. 어프로치해서 마사지해서 다시 충성사원으로 전환시키라는 거다, 그게 안 통하면 퇴직을 유도한다. 그런 분들이 나에게 모였다. 노사협의회 구조상 내가 풀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그때는 그걸 몰랐기 때문에 같이 항의하고 싸웠다. 그러면서 노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현재 노동악법이라고 불리는 '복수노조 제도' 시행을 당시에는 기다렸다고 들었다.

삼성에서는 한 번도 노동조합 설립에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왜 못 만들었나를 찾아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령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하러 오면 노조가 설립이 돼있다는 이유로 막았던 거다. 결국은 복수노조 허용이 돼야 했다.

나름대로 2008년부터 차곡차곡 준비했다. 그러다가 2011년 7월에 복수노조 허용되고 날을 잡았다. 사실 막막했다. 상시적으로 우리를 리드하거나 설립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든 주동자가 해고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해고를 확신하고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8월 26일 ‘어용노조’라고 재판부에서 판결된 에버랜드노동조합이 2011년 6월 23일 삼성지회보다 먼저 설립됐다.

결과적으로 보안을 유지했지만 회사는 다 알고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도 급했다고 본다. 노조가 생기고 나서 해고하면 부당노동행위 시비가 걸리니 노조 설립 전에 해고하려고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6월 29일 MBC 기자한테 에버랜드노동조합이 설립된 거 같다고 들었다. 알고 보니 6월 23일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29일 단협을 체결했더라. 일주일 만에 9장짜리 단협을 체결한 거다. 교섭대표노조를 다투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만들었던 거다. 결과적으로 그때부터 교섭무력화 전략에 그대로 피해를 입었다.

2013년 1월 14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힘든 시기였다. ‘고소고발 폭탄’이라고 표현하는데 근거 없는 고소고발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2012년에서 2013년 가는 와중에서 순식간에 20건 넘는 소송이 쌓이게 됐다. 일상이 경찰 조사, 검찰 조사, 재판 준비, 재판,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이렇게 바뀌었다. 회사는 길게 보고 갔고, 우리는 어떻게든 조직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상급단체를 쉽사리 찾지 못했다. 민주노총에서 가맹조직에 이야기해봤는데 다들 부담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받았는데 유지하지 못할까봐 부담스러웠던 거다. 그렇게 보낸 기간이 1년 8개월이 넘었다. 화가 나기도 했다. 사실 삼성이 알면 쪽팔린 거지 않나. 삼성전자에서 해고됐던 박종태 동지와 연대를 했었는데 소통하다가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닿게 됐다. 그 당시에 말들이 많았다. ‘서비스 직종인데 왜 금속에 가입을 하느냐.’ ‘주방장들이고 칼 들고 있으니까 금속노조다.’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당시 삼성 내부 문건을 보면 되게 많이 겁을 먹은 게 보인다. 금속노조 가입한다. 큰일 났다. 그러는데 삼성도 금속노조를 잘 몰랐다. 금속노조가 힘이 없다는 게 아니라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지금은 금속노조 간부에게 ‘문건 봐라 삼성이 너네에 기대하고 있었다. 겁내고 있었다. 왜 그런데 기대에 왜 부응을 못하냐.’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2013년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폭로했다.

2013년 말부터 지노위, 중노위에서 기각됐던 사건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성 노사 전략 문건으로 탄압의 실체와 전모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과는 노동부와 검찰의 부실 수사였다. 압수수색을 해야 연결고리나 실체를 밝힐 수 있었을 텐데 의지 자체가 없었다. 결국 애버랜드 직원 2명만 벌금으로 끝났다.

끈질기게 항고하고 재수사를 요청했다. 2017년 문재인 정권 들어오고 나서 노동부에 TF형식의 기구가 생겼다.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볼 것이라 예상했는데 결국 재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2018년에 이명박 수사 관련 압수수색 하다가 삼성 노조 파괴 문건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증거가 많아서 부실수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8년 동안 검찰이 수사했고, 2019년~2020년 판결이 났다. 이후 이재용의 사과까지 이어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는 어떻게 봤나.

이재용 자신이 위기에 몰린 타이밍이었다. 내가 교도대를 나왔는데, 1년 좀 안 되게 복역한 사람이 가장 교도소를 무서워한다. 노동조합 파괴에 대한 사과를 오래 전부터 요구했다. 사내메일로 이재용에게 조합원이 가입할 때마다 부당노동행위하지 말라고 공문을 계속 보냈다. 조합원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나 삼성지회 피해조합원에게 와서 사과해야지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과하는 셈이었다.

조장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런 과정을 뒤돌아 볼 때, 모진 탄압에도 노동조합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회사가 잘해줘서 삼성노동자는 노동조합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하고 말고는 노동자가 결정할 일이다, 삼성의 오만함과 잘못된 조직문화는 우리가 노동조합을 유지하고 지켜야 입증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삼성 입장에서도 노동조합은 안 된다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 절박했을 것이다. 나와 주변 동료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가장 큰 게 일벌백계의 사례로 남으면 안 된다는 거였다. 삼성지회가 없어졌다고 해서 삼성에서 다시 노동조합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됐으면 다음 사람들이 너무도 어렵겠다는 생각이었다.

삼성지회가 제기한 모든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교섭권을 획득하지 못했는데.

허탈한 게 법으로 다 이겼어도 노동조합을 운영하고 활동하는 데는 큰 변화가 없었다. 소송에서 이기기도 어려운데 이긴 후에 노동조합 활동이 보장되지 못하는 건 뭐가 문제인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조항을 폐기하려고 투쟁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도 알 것 같다. 교섭 무력화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파괴 전반에 걸쳐서 활용하는 거지 않나. 결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크게 조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자력으로 교섭대표노조가 돼보자고 판단했다. 2015년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면서 리조트, 패션, 건설, 상사 4개 사업부문으로 늘어났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가입 대상 늘어난 거다. 에버랜드 안에서 조합원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2021년 1월부터 4개 사업 부분을 대상으로 조직화를 시작했다. 노조를 하자는 사내 메일로 뿌려 30명 넘게 가입했다. 만약 이번에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않았더라도 2019년부터 이미 어용노동조합 설립 무효소송 진행 중이었다.

교섭대표노조 확정 과정에서 잡음이 있기도 했다.

10년 만에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됐는데, 어용노조에서 조합원의 실체를 못 믿겠다고 이의제기했다. 우리 입장에서 구속될 놈들이 그런 말을 하니까 가관아라고 생각했다. 팀워크가 잘 구축돼있어서 순식간에 정리를 했지 신생 노조였다면 오래 걸렸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에 걱정했던 게 교섭단위 분리였다. 어용노조에서 교섭단위 분리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삼성물산 각 사업부문이 왜 너희랑 교섭을 하냐고 문제제기 할 수도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회사가 순순히 참여했다. 다만 언제 그랬냐는 듯, 스탠스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폐기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 달라.

처음에는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당연한 건데, 거기에 옵션처럼 추가한 창구단일화 조항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묻지 않을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노동조합이 100개 생기면 100번 교섭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는데 말이 안 된다. 창구단일화 조항 때문에 수백 개의 노동조합이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교섭대표노조가 됐지만, 이렇게 안 풀리고 법이 발목이 붙잡히는 노동조합이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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