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시민단체]① “꼭 같이 열 맞춰 걷지 않아도 괜찮아요”
[참여와시민단체]① “꼭 같이 열 맞춰 걷지 않아도 괜찮아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4.08 00:00
  • 수정 2022.04.12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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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민주주의 더하는 열군이 말하는 참여
​​​​​​​[인터뷰]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사무처장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4월호부터 매달 하나의 시민단체를 소개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노동 문제를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여’는 작업장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①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3월 25일 러시아 대사관 인근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를’ 금요촛불집회 현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3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근처 정동제일교회 앞에서는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기원하는 금요촛불집회가 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시민들은 옹기종기 우산을 나누어 쓰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들은 왜 머나먼 타국의 소식에 함께 가슴 아파했을까. 젖어오는 운동화와 바지 밑단에도 아랑곳 않고 그 촛불을 밝혔을까.

금요촛불집회를 주최한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에 연대하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이하 열군) 박석진 사무처장은 이따금씩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자발성”에 놀란다. “조직할 수도 없는 이 거대한 힘”이 우리사회를 느리지만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그는 믿는다. 여기서 그는 ‘활동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박석진 사무처장에게 ‘참여’에 대해 물어봤다. *인터뷰는 3월 29일 서울시 성북구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 지난달 마지막 금요촛불집회에 참석했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어찌 보면 먼 나라의 일인데 다들 진심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우크라이나 평화집회에서 열군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묻어나왔을 것 같아요.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에 연대하는 단체가 30곳 이상이에요. 단체들마다 관점이 다를 텐데, 열군은 우크라이나 문제가 우리의 경험에 기초해 있다고 봐요. 시간대가 다르기는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은 70년여 전 한국전쟁과 유사해요. 미국 중심의 서방 세력과 러시아의 대립 양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담겨 있어요.

또한 민간인 학살 양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죠. 열군은 2019년부터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와 관련해 특별 사업을 해왔어요. 한국전쟁은 전쟁기념관이 대표하듯이 군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편으로 무기들을 전시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봤어요. 전쟁 피해자 관점에서 전쟁을 기억해 볼 순 없냐는 거죠. 특히 한국전쟁은 민간인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고 더 많이 죽어갔던 전쟁이기도 해요.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문제를 단지 먼 나라의 안타까운 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열군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사실 저는 1991년에 양심선언을 했던 전경이에요. 군사정권 시기에 전투경찰이 시위대를 격렬하게 진압했는데,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사회적인 인식이 군 복무를 계기로 형성된 측면이 있어요.

1987년 민주화 대투쟁에 여러 의미가 담겨있지만, 저는 군사독재 정부와 투쟁이라는 지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이 명시되기도 했죠. 열군이 창립된 건 2014년 4월이에요. 2012년 대선의 부정 정황이 2013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군 사이버 사령부에서 인터넷 댓글 부대를 만들고 특정 후보를 지원했죠.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거예요. 그러면서 군대라는 조직을 비판하고 개혁하는 단체가 우리사회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열군의 창립선언문은 “군대를 인권과 민주적 제도가 보장되는 곳으로 나아가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는 군대로 바꿔낼 것”이라는 말로 끝나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명확한 상명하복 질서를 따라야 하는 군대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냐는 의문이 들어요.

국제 정치 내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군대의 물리력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군대라는 조직을 부정할 수 없다면, 군대 그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과 더불어 군대를 우리의 민주주의를 잘 지키고 고양시키는 조직으로 만들어내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사실 한국의 역사적인 경험 속에 군대는 정반대 기능을 했어요. 군대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거나 멈추거나 탄압하거나 존재로서 기능해왔던 게 사실이죠. 지금은 그런 부정적 영향을 단절시키는 상황까지 만들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요소를 더할 수 있는 곳으로 군대를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한국사회에 군대가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이따금씩 <참여와혁신>이 주로 취재하는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그런 지점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에도 우리사회의 군사주의는 없어지지 않았어요. 권인숙 씨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시민사회계 내부에서도 성별 분업이 있어요. 다른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민사회단체가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데 개중에는 오히려 일반 회사만도 못한 곳도 있죠.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초적이거나 권위적인 성향이 부정할 수 없이 나와요. 이 문제는 정말 계속 인식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열군에서는 나이나 직급이나 관계없이 언어를 평등하게 써보는 걸 실천해보고 있어요. 같이 활동하는 분이랑 저랑 나이가 적지 않게 차이 나는데 그냥 같이 존댓말을 써요. 같이 반말하는 건 그 친구가 불편해하더라고요. 물론 작은 실천이고, 언어가 평등해진다고 관계가 평등해지는 건 아니지만, 이를 통해서 최소한 단초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사회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민주적이지 않은 단체가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인권을 얘기하면 설득력을 잃겠죠. 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상을 그 내부의 활동이나 생활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시민들한테도 신뢰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사무처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사무처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지난 활동을 되돌아 봤을 때 시민들의 자발성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저는 87년을 겪지 않았어요. 고등학생 때이기도 했고 아직 사회적인 인식이 있을 때가 아니었죠. 제 운동에 있어서 인상 깊었던 시간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였어요. 그때 참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명박산성에 올라가고, 밤새도록 줄서서 얘기하고. 새벽에 경찰들이랑 대치하고 도망가고. 저도 그 자리를 못 떠나겠더라고요. 희한한 경험이었죠. 누가 조직하지 않았는데. 사실 그런 집회는 조직도 안 돼요. 그냥 사람들이 나오는 거예요.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느끼니까 나오는 거죠.

제주 해군기지의 싸움도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제주 지역에 있는 100여 개의 단체와 육지에 있는 단체들이 연대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른 한편으로 강정 기지에는 개인들도 많았죠. 제주도에 놀러 왔다가 경찰들 몰려 있는 거 구경하다가 머무른 사람. 신문 보고 온 사람. 제주 해군기지가 해변을 파괴한다고 해서 온 사람. 공부모임 하다가 ‘나 한번 가볼래’ 그래서 온 사람. 굉장히 천차만별이었어요. 그런데 거기 와 있는 개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싸웠어요. 스크럼 짜는 사람도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요.

독특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2008년의 경험과 제주에서의 경험이 섞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런 베이스 없이 개인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자발성과 창의성이 뛰어나요. 상상치도 못했던 행동들을 해서 투쟁에 활력을 주기도 했어요. 반면에 조직적인 단체의 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은 별로 없었어요. 여담이지만 단체 활동은 조직 활동이잖아요? 조직 활동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기자회견 발언 준비하는 일이 재미있지는 않죠. 그렇지만 전문성과 지속성이 있어요.

단체가 가진 전문성과 지속성이라는 장점과 개인이 가진 자발성과 창의성이라는 장점을 어떻게 잘 접목할 수 있을까. 잘 버무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회원들을 2년 넘게 못 만나고 있기는 한데, 소성리나 이런 곳에 연대투쟁 가면 ‘그냥 하고 싶은 거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해요. 꼭 같이 열 맞춰서 걷지 않아도 괜찮고요. 걷고 싶으면 걷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요. 제가 운동을 하면서 계속 가져가려는 한 가지 고민이에요.

- 다른 한편으로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보수성향의 집회를 어떻게 볼 것인지 고민스러워요. 이러한 집회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태극기 집회를 보면서도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박근혜 탄핵 이후부터 지난한 투쟁으로 정권 바꿔낸 거죠. 제 입장에서 볼 때 그분들이 다소 편향됐다고 보지만, 그것도 우리의 한 부분이라고 봐요. 일각에서는 돈을 줘서 나왔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든 그분들도 자발적으로 나온 거죠. 계속 고민 중인 영역이에요.

다만 너무 많은 빌미를 줬다고 봐요. 단적으로 조국 사태가 그렇죠. 가족이 저지른 잘못을 ‘나는 몰랐다’고 이야기하면, 반대로 ‘최순실이 그랬다. 나는 몰랐다’고 말해도 할 말 없는 거잖아요? 소위 말하는 공정성에 큰 흠결을 가지게 된 거죠.

- 활동가로 사는 것에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열군을 계속하게 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1991년 양심선언 이후에 30년이 넘었는데, 사실 그동안 운동만 한 건 아니에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 10년 정도 운동에서 떠나 있었어요. 요즘에는 여건이 나아진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먹고사는 게 아직까지 쉽지 않아요. 장사도 했다가 망하고, 버스나 택시 운전도 하고 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했는데, 나 자신만 생각하면서 사는 게 괜찮을까. 그런 고민이 계속 들었어요.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던 건데 나이 들어서 보니까 소중했던 경험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시민단체를 다시 시작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전혀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쉽지 않은데 계속하게 하는 경험이 하나 있는 거죠.

- 마지막으로 올해 열군의 활동 계획이 궁금해요.

올해는 현장으로 많이 가볼 생각이에요. 소성리 같은 곳을 주기적으로 갔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간 못 찾아갔거든요. 정치권력이 바뀌면 싸우는 민중들한테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잖아요? 필요한 곳에 작은 힘이지만 찾아가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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