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시민단체]② “단숨에 바뀌진 않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간다”
[참여와 시민단체]② “단숨에 바뀌진 않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간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5.19 10:26
  • 수정 2022.05.19 1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단체들의 연합체 한국여성단체연합···“단 한 명도 놓고 가지 않는다”
[인터뷰]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시민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 문제를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학교 시민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② 한국여성단체연합

ⓒ 한국여성단체연합
ⓒ 한국여성단체연합

1980년대 초 여성단체들은 공공연히 숨겨진 범죄, 가정폭력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 이후 △1984년 ‘청량리경찰서 여대생 추행사건 대책협의회 공동활동’ △1985년 ‘여성 25세 조기정년제 폐지운동’, ‘여성노동자 생존권 대책위원회 활동’ △1986년 ‘공권력에 의한 성고문사건 대책활동’ 등 공동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상설적 여성운동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87년 2월 여성단체들의 연합체, 한국여성단체연합(공동대표 김민문정·김윤자·양이현경)이 탄생한 배경이다.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운동의 연대를 이뤄나가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에는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주로 법·제도 개선 운동 진행
애드보커시 운동도 주요 축

올해 35주년을 맞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주로 법·제도 제·개정 운동을 해왔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까진 주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며 “2018년부터는 미투운동을 통해 드러난 젠더폭력 분야의 법·제도 개선 활동을 했다. 최근엔 ‘엔(n)번방 사건’ 관련해 성폭력처벌법 관련 세부 조항을 바꾸는 운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애드보커시(advocacy·대변) 운동도 활동의 주요한 축이다. 올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철회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양이현경 공동대표는 “최근 집중하는 활동은 여성가족부 폐지 관련한 활동”이라며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는 부처는 여전히 필요하다. 성차별은 심화되고 있다. 여러 지표로 나타나는 성별 임금격차,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노동, 젠더폭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가족부는 역할이 남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운동 과정에서 연대의 폭도 넓혀왔다. 양이현경 공동대표는 “비례대표제 확대 등 정치개혁 연대, 연금개혁 연대, 평화·종전 캠페인 등 주로 시민단체들과 연대를 해왔다”며 “최근 한국사회에서 여성운동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도 여성운동에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여성운동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넓어졌음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고민

여느 시민단체처럼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재정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이현경 공동대표는 “지부와 회원단체의 회비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 개인 모금, 후원의 밤 행사 등을 통해 재정을 확충한다”며 “이번에 개인 후원자를 모집하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시민의 참여와 관련해서도 고민이 있다. 양이현경 공동대표는 “시민단체 활동 형태가 나라마다 다르다. 어떤 외국 단체들은 회원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면서 “우리나라 시민단체에선 활동가라는 전문 직업을 갖고 운동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의 참여가 부족하다고 단편적으로 평가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집회나 행사에 사람들이 많이 안 왔을 때 고민은 있다”며 “그때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이 사회 참여를 할 시간이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퇴근해서 저녁 7시, 8시에 시민단체 모임을 가는 것은 누구나 어려운 상황이다. 우스갯소리로 시민단체 활동에 시민이 많이 참여하게 하려면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돌볼 아이까지 있으면 정말 못한다”고 전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 한국여성단체연합

“단 한 명의 시민도 놓고 가지 않는다”

여러 고민과 한계에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하나의 지향을 향해 운동해 나갈 예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단 한 명의 시민도 놓고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양이현경 공동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약자나 소수자를 지우는 방식으로 득표 전략을 세운 윤석열 대통령은 그 구체적인 방식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최근엔 그 대상이 여성에서 장애인으로 넘어갔다”며 “이런 식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비가시화하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날까 봐 우려된다. 정체성으로 인해서 어떤 시민이든 배제되거나 차별되지 않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이를 위해 여성단체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단 한 명도 놓고 가지 않는다’는 정신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

양이현경 공동대표도 성차별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학에서부터 여성운동을 해왔다. 그는 “대학 시절 주변에 친구 어머니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어떤 친구는 낙태를 두세 번씩 했다. 주변에 데이트 폭력을 당하거나 성폭력을 당한 사례도 여럿이었다”며 “당시 너무 힘들었다. 대학에서 관련 모임 등을 하면서 성차별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그때부터 성차별 관련 여러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양이현경 공동대표가 활동가의 삶을 택하고 여성운동을 이어가는 동력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그랬듯 작은 변화의 과정을 목격해온 데서 나온다. 그는 “이명박 정권 때도 여성가족부가 없어질 뻔했다. 최근 우리 단체가 내는 성명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여성운동은 30년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세상은 단숨에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변화의 과정을 보인다. 조금씩 나아진다. 지난 30년을 통으로 놓고 보면 지금이 훨씬 나아졌다. 내가 사람들과 활동하면서 무언가 바뀌는 과정 자체에서 운동의 의미를 찾는다”고 이야기했다.

양이현경 공동대표는 “예를 들어 90년대 초반만 해도 여자는 직장에 다녀도 결혼하면 거의 무조건 퇴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기업의 관행은 나아졌다”며 “여전히 다른 방식의 성차별이 계속 생겨나지만,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하는 거다”라고 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하기 :  후원하기(http://women21.or.kr/donate)

참여와혁신은 4월호에 소개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에 지난 4월 22일 후원금 3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