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시민단체⑧] 이주민을 위한 법률가와 활동가의 콜라보
[참여와 시민단체⑧] 이주민을 위한 법률가와 활동가의 콜라보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11.09 14:55
  • 수정 2022.11.10 0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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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다문화 사회, 선주민/이주민 가로지은 선을 지운다
[인터뷰] 이주민센터 친구 조재령 활동가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을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 학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⑧] 이주민센터 친구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에는 ‘이주민센터 친구(이하 친구)’의 사무실이 있다. 친구는 “가리지 않는다.” 이주민 인권과 관련한 활동이라면 거의 무엇이든 한다. 2012년에 센터를 설립한 윤영환 대표가 변호사인 만큼 주된 업무는 법률 지원이다. 노동, 가사, 민형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상담과 소송을 맡는다. 여기에 선주민과 이주민 대상 인권 교육, 한국어 강의, 문화 교류, 정책 제안, 연대와 같은 활동을 일상적으로 전개한다.

친구를 찾는 사람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위치가 대림동이라서 중국과 관련한 분이 대부분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친구의 홍보팀장인 조재령 활동가의 말이다. 미국, 중국, 프랑스, 호주, 나이지리아, 인도, 러시아 등.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이라면 누구든지 친구의 문을 두드렸다. 여러 가지 목적과 이유로 한국을 찾는 이주민이 늘어가는 추세다. 비영리 사단법인인 친구는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주민은 계속 많아지는데, 모순된 인식이 문제예요. 한국이 저출산 시대에 진입했고 이주민 없이는 제조업, 건설업, 농·어촌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아요. 그런데도 이주민과 관련한 문제를 풀어가자고 하면 편견과 비난이 이어져요.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 눈앞엔 보이지 않았으면 싶으니 차별이 생기죠.”

통계청 4월 발표에 따르면 2030년 우리나라의 이주배경인구는 약 23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이주배경인구는 귀화자, 이민자 2세, 외국인을 합한 수다. 이들이 전체 인구의 5%를 넘은 국가를 OECD에선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앞으로 8년, 한국이 다문화 국가로 진입하기까지 남은 시간이다.

“같이 살아야 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제도를 바꿔가야 할 시기예요. 준비하지 않으면 많은 부작용과 어려움에 부딪히리란 걸 정치와 언론, 또 여러 사람이 빨리 깨닫는 게 중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신생아부터 성인까지
생애 주기에 따른 이주인권 활동

- 다른 단체와 구분되는 ‘친구’만의 특징이 있다면?

생애 주기에 따라 다양한 일을 한다고 표현을 할 수 있겠다. 먼저 이주 아동을 위한 대표적인 활동으로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개선 운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한국 정부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다.

우리나라는 난민이나 이주민 아동의 출생신고를 못 하도록 한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자일지라도 여러 이유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투명 인간처럼 살아야 한다. 교육, 의료, 복지 등 다양한 행정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이 오래된 문제를 바꾸기 위해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여러 법조인·활동가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주배경 청소년·청년을 위한 ‘투소프카’가 있다. 한국어 교육과 학습지도, 문화교류, 진학·취업 등 진로상담을 한다.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해 사업을 하고 있다. 좀 더 나이가 많은 성인에겐 당연히 노동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임금 체불, 직장 내 폭력, 출입국 문제까지 수많은 현안이 꼬여 있다. 결혼에 관한 문제도 있다. 주로 이주 여성들이 한국인 배우자나 자녀와 관련한 복합적인 문제를 겪는다. 이들을 위한 상담과 법률 지원이 주된 업무다.

-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법률 지원 외에도 교육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교육은 대상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이주민과 선주민이다. 이주민 중에도 이주인권 활동가로 일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이 더 전문적인 역량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인데, 법률 통·번역 교육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법원, 경찰서에서 한국어만 잘한다고 통역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법규를 알아야 통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매년 30~50명 정도 양성한다.

규모로 보자면 선주민(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더 크다.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로스쿨 학생 등 예비 법조인에게도 이주인권 교육을 한다. 관공서에도 교육을 많이 간다. 구청, 경찰서, 구치소 등 공무원이 대상이다. 이주민과 연관된 업무를 할 때 실수나 오해를 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다. 활동가를 위한 전문 교육과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교육도 있다.

-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할 만한 여력이 되나?

가장 작은 범주로는 상근 변호사 2명, 활동가 2명, 비상근 변호사 2명이 친구의 구성원인데, 사실 다들 고생이 많다. 여기 공간을 보시면 보통 사무실하고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초창기에 카페를 했기 때문이다. 대표님이 법률 지원도 하면서 이곳이 이주민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길 바랐다. 작게 공연도 하곤 했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 쉽지 않아서 카페는 정리했다. 결국 돈과 사람이니까. 그런데 대표님이 아직 그 꿈을 가지고 있다. 하하하.

기자와 인터뷰 중인 조재령 활동가(오른쪽)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기자와 인터뷰 중인 조재령 활동가(오른쪽)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주인권 ‘핫 이슈’인 이민청,
정부의 설립 취지와 방향성이 중요”

- 이주민과 관련해 현재 가장 주목하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가.

‘이민청’이 이주인권 단체나 활동가 사이에서 굉장히 핫한 이슈다. 올해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할 때부터 이민청을 만들 거라고 했다. 다문화가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니, 출입국관리 대상을 넘어 이민정책을 종합적으로 다룰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화두를 던졌다. 원칙적으로 맞는 이야기고 필요한 단계이긴 하다.

다만 법무부 산하에 이민청을 만드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주민·외국인 정책은 소위 ‘합법체류’, ‘불법체류’ 같은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지와 교육 등 다양한 측면이 있다. 범위가 아주 넓다. 즉 이주민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바라볼 것이냐의 부분이다.

단지 이주민이 많아지기 때문에 법무부 위주의 관리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라면 문제다. 법무부는 이민청 설립에 뒤이어 미등록 이주민 합동단속을 발표했다. 사실 최근 상당 기간 이른바 법무부에서 이야기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합동단속’을 완화해왔다. 노동시장 문제 때문이다. 농촌은 이주민이 없으면 안 되는 실정이고, 가구단지나 여러 제조 공장도 안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강력하게 단속을 못 했는데 갑자기 합동단속을 하겠다고 하니 관련 단체와 활동가들은 이민청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 다른 현안 중 알리고자 하는 게 있나.

다른 이주인권 단체들과 함께 미등록 이주민 ‘사면’과 ‘합법화’를 얘기하고 있다. 2003년에 한 번 사면을 시행하고 20년간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사면, 합법화는 없었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실제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체류 상태로 계속 놔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싶다. 윤석열 정부는 인구절벽의 해결책으로 이민자를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미 한국 사회에서 오래간 살아온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을 하자는 거다.

10월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의 반인권적 합동단속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친구의 이예지 상근변호사 ⓒ 이주민센터  친구

후원과 재정은 비영리단체의 ‘숙제’

- 친구가 10여 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이주민과 관련한 고질적인 문제를 꼽자면?

차별적인 복지제도다. 일례로 서울시에서 최근 임산부에게 교통비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주민은 사업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주인권단체들이 여러 번 항의했더니 다문화 가정으로 사업 대상을 넓힌다고 추가로 밝혔다. 그 말은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이어야만 포함해주겠다는 얘기다. 나머지 이주민 임산부는 빠진 거다. 복지 정책에서 이주민을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복지에서 선주민과 이주민을 구분하는 건 원칙적으로는 잘못됐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약 15년 전에 프랑스에서 3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아기를 낳았는데 임신 축하금부터 월세 지원금까지 출산 전 과정에서 프랑스 국민들이 받는 모든 지원금을 받았다. 다문화 가정도 아닌 외국인인데 차별 없는 복지가 제공됐다. 심지어 미등록 이주민도 똑같이 받는 것으로 안다. 설령 나중에 추방될지언정 추방되기 전까진 신청하면 다 적용받는다. 그게 프랑스의 복지 정책인데, 의식에 기반 한 사회적 공감대가 없으면 그런 제도도 만들어질 수 없다. 이주민과 선주민을 나누는 오래된 인식이 차별적 복지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만든 거라고 본다.

- 다양한 이주민을 만났을 텐데, 공통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체류 자격, 그러니까 비자 문제다. 비자와 관련된 규정들이 다양하고 너무나 복잡하다. 복잡할 뿐 아니라 이주민이 정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해주는 소통의 통로도 부족하다. 당사자인 이주민이 알기 어려운 지금의 비자 체계는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다.

또 출입국 행정의 경직성이다. 간혹 일이 많아서 불친절할 수도 있지만,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현장의 경직성을 얘기한다. 이주민들이 그런 얘기도 한다. 출입국사무소에 번호표를 여러 개 뽑아 두고, 불친절한 상담원이 걸리면 번호표를 버리고 다른 상담원을 기다린다고. 야단맞고 험한 말 듣고 싶지 않아서다. 한 유학생은 임신으로 비자 갱신을 하려고 갔는데 ‘한국에 공부하러 왔는데 왜 임신을 했느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더라. 너무나 반인권적인 망언이다.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겠으나, 출입국사무소조차 이주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것은 큰 문제다.

- 친구 운영에 있어 성과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0여 년간 한자리에서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대표적인 여러 이주인권 단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특히 법률뿐 아니라 교육·문화·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며 생기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풍부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법률 지원도 좀 더 현실감 있게 이뤄지는 것 같다. 말하자면 전문가 영역과 활동가 영역이 결합하는 하나의 모범 사례가 아닐까 한다.

아쉬운 점은 무엇보다 운영 자금이다. 비영리단체기 때문에 후원과 재정 문제가 늘 숙제다. 후원을 통해 여러 고정비·관리비·운영비 충당은 물론이고, 할 수 있는 사업도 정해진다. 또 돈은 좋은 사람과 오랫동안 같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연결된다.

또 우리 단체가 조금 알려지다 보니까 자원봉사활동을 희망하는 분들이 꽤 많다. 오시는 건 정말 고맙지만 사실 자원활동을 충분히 받쳐주고 받아들일 여력이 안 된다. 자원활동을 희망하는 한 분 한 분이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다. 체계적으로 일을 나눠서 충분히 보람과 성과를 가지면 좋을 텐데, 때로는 사양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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