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시민단체⑨] 내놔라 공공임대!
[참여와 시민단체⑨] 내놔라 공공임대!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11.28 16:30
  • 수정 2022.11.29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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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주거’
[인터뷰]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을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 학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둘러싼 국회의 공방이 거세다. 반지하 폭우 참사 이후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던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729억 원(전년 대비 –28.2%)을 삭감하는 예산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야당과 정의당은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소위에서 이를 전액 원상 복구하는 증액안을 의결했고, 여당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체회의에 불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24일 야당과 정의당은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복구된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처리했다. 하지만 향후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일단 예결위 등 국회 안에서의 절차가 남아있다. 정부의 입장도 변수다. 국회는 예산을 삭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지만, 증액에는 기재부 등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들이 예산 복구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쪽방·고시원·반지하·홈리스·청년·세입자 등이 모인 시민단체들은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부터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에 반대하며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저소득 취약계층뿐 아니라 아동, 청년, 신혼부부, 중장년, 노인에 걸친 모든 세대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에 필요한 핵심적인 자원”이기에 국회와 정부에 공공임대주택·주거복지 예산을 대폭 확충할 것을 요구하는 농성이다. 농성장을 지키던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5조 7천 억 예산 삭감
주거복지 근간 흔드는 일

-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8월 초 수해로 인한 반지하 참사가 있었다. 올 봄에는 영등포 고시원 화재로 두 분이 돌아가시기도 했다. 주거취약계층의 잇따른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무엇보다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절실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반지하 참사 이후 국토부도 쪽방을 비롯한 주거 취약계층과 관련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불과 사건 3주 만에 그런 예산안을 발표했다.

처음에는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겠다고 했던 약속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주택 예산이 이 정도로 대폭 삭감된 적이 없었다. 주거복지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판단을 했다. 그냥 ‘문제가 있다’고 기자회견 하고 집회를 하는 정도로 대응할 수준 이상의 심각한 문제라고 느꼈다. 우리의 의지와 요구를 보여주기 위해 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 해당 예산안이 통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 전망하나?

주거복지의 핵심은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주거비 지원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되, 빠르게 대량으로 공급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주거비 지원 제도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산안이 통과되면 당장 공공임대주택 공급 물량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예산의 문제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줄이는 대신 분양주택이나 주택구입자금대출 관련 예산을 증액한 것이다. 한정된 주거복지 자원 중 취약계층에게 써야 될 돈을 빼서 상대적으로 주택 구매가 가능한 계층에게 집중하는 방식이다.

당사자들의 애정으로
지켜지는 농성장

- 농성은 어떤가?

농성장 차리기도 힘들었다. 경찰이 제지를 해서 뺏기기도 하고 농성단 사람들도 넘어지고 다쳤다. 그러다 보니 다들 농성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농성은 단체별로 하루씩 돌아가며 하고 있다. 아침 9시 30분에 오면 점심에 1인 시위를 하고, 퇴근 시간대에 1인 시위를 하고, 그 다음날 아침 출근 시간에 1인 시위를 하고 교대한다. 농성장을 방문하는 분들과 ‘내놔라 공공임대 챌린지’를 하기도 한다.

농성단 차원에서는 국토위 예결소위 위원들과 예결특위 위원들이 한 56명 정도 되는데 면담요청서를 다 보냈다. 대통령의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 대응한 ‘정부 예산안 싫어 대회’를 하기도 했다. 농성장을 베이스로 한 문화제도 하고 있다.

- ‘정부 예산안 싫어 대회’나 ‘내놔라 공공임대 챌린지’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농성단에 결합도 하지만, 쪽방 주민들이나 홈리스 등 당사자 조직이나 당사자들이 농성단에 많다. 당사자들과 우리의 요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의 네이밍이나 행동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산안 싫어 대회도 정부가 시정연설을 하는데 우리 그거 싫다는 것이다. 내놔라 공공임대 챌린지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내놓으라고 할 때 손을 내미는 것을 표현했다.

우리가 내놔라 공공임대 챌린지를 하니까 ‘이제 저것들이 집도 달라고 한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거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한국에서 낯선 탓이다. 주거권은 주장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된 지 오래됐다. 한국에선 집이라는 게 상품화돼 있다 보니 집을 개인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문제로만 인식을 한다. 주거권은 집을 빼앗긴 철거민의 구호가 아닌, 정부를 상대로 ‘내놓으라’고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다.

- 권리로서의 주거를 조금 더 설명해 달라.

인간이면 인간답게 살 권리처럼, 주거권은 사람이면 사람다운 집에 살 권리다. 한국은 2년 혹은 4년마다 재계약을 통해 이사를 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건 기본값이 아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사는 집은 집다운 집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내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의 집이어야 한다. 책무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몫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일

- 농성단 조직에 빈곤사회연대가 적극적이었다고 들었다. 어떤 단체인가?

출범은 2004년에 했지만, 시작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옥란이라고 하는 뇌병변 1급 장애인, 여성이자 아이의 엄마, 기초생활 수급자이자 노점상 상인이 있었다. 이 분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점상을 하는데, 그 소득이 기초생활수급비에서 깎였다. 당시 기초생활수급비는 26만 원이었다. ‘이걸로는 못 살겠다’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최옥란의 농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최옥란의 싸움을 이어가고 빈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몫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표현을 쓴다. 몫이라는 건 권리이기도 하다. 당사자들이 권리의 주체로 자신의 몫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조직하는 게 빈곤사회연대의 중요한 지향점인 것 같다.

- ‘몫 없는 사람들’과 어떤 활동을 해 왔나.

이 운동은 최옥란의 투쟁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하는 활동들을 많이 했다. 몇 년 전부터는 기초생활 부양의무가 기준폐지를 위한 농성을 해왔다. 뉴타운 재개발에 맞선 철거민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활동도 한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노점상분들의 소득감소와 사회적 배제 문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빈곤과 관련해 또 중요한 게 주거 문제다. 빈곤사회연대는 주거 취약계층의 문제에 주목해 쪽방이나 고시원, 여관, 여인숙에 살고 계신 당사자들과 이것저것 기획하는 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LH 사장 공모 시기에는 주거취약계층 당사자가 직접 LH 사장에 출마한다는 선언을 하는 사업도 했다.

용산역 뒤편엔 축구장 70개가 들어가는 넓은 국공유지가 있다. 철도공사가 소유하는 땅인데, 10년째 허허벌판이다. 그 넓은 땅을 개발해 다시 기업에게 팔겠다는 게 사실상 정부의 계획이다. 지난해 그곳을 잠깐 점거했다. 시민들에게 ‘여기 이렇게 넓은 공공의 땅, 우리의 땅이 있어요’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라고 할 때마다 서울시는 공공이 가진 땅이 없어서 민간에서 하도록 공공은 지원해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서울 시내 공공택지가 부족한 건 워낙 많이 팔아먹었기 때문이고, 이렇게 넓은 땅도 10년 넘게 방치해 놓은 것이다.

올해 1월부터는 인권과 해설이 있는 용산 다크투어라는 걸 하고 있다. 1월은 용산참사가 있었던 달이다. 용산역에서 출발해서 홈리스 텐트촌, 정비창, 용산 참사 현장까지 한 바퀴 돌며 투어 참여자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일회적인 행사로 기획을 했는데 120명이 신청을 해 주셨다. 또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도 있어서 계속 하고 있다. 처음엔 추운데 두 시간을 돌아다니는 거라 한 20명까지만 신청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하.

‘성과’는 빈곤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

- 활동을 하며 변화를 느낀 순간이 있나?

지난번 LH 사장 출마를 제안했을 때 우리가 막 등을 떠밀어야 후보를 간신히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들 ‘내가 나가겠다’는 식의 분위기였다. 그만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고 권리로서 요구하는 것들이 성장해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낼 때 복지 제도에서 탈락하거나 찍힐까봐 두려워하는 게 사실 있다. 활동들이 점점 쌓이면서 빈곤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게 빈곤사회연대의 성과인 것 같다.

- 더 해보고 싶은 활동은 어떤 건가?

내놔라 공공임대 투쟁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예산을 회복하거나 확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의 처절한 농성의 성과가 미미하게 종료될 수도 있다.

예상한 일이다. 물론 농성의 1차 목적은 예산 삭감을 저지하는 것이지만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주택 소유에 대한 욕구가 높다. 집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집을 구매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게 맞냐는 거다.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어야 하고, 핵심은 공공임대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각인시키는 게 우리가 계속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나’의 주거권을
이야기하는 것부터

-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의 활동 기간은 긴 편인가?

그런 편이다. 빈곤사회연대 활동의 동력은 그래도 재밌게 한다는 것 아닐까 싶다. 운동이라는 게 단기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고 있나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그건 운동을 관성화하거나 지쳐 나가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은 우리끼리 이야기도 많이 하고, 뭐든 소소하지만 재밌어 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용산 참사 때 시민들이 현장에 찾아오셨던 게 기억이 난다. ‘아직도 이렇게 폭력적인 철거가 있는지 몰랐다. 어떻게 철거민들과 연대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들을 하셨다. 사실 ‘내’가 철거민이 될 확률은 많지 않다. 주거권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려면 나의 주거권을 이야기하는 데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부수고 짓고를 반복하는 개발의 역사는 주택을 투기적 상품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나의 주거권을 침해한다. 사람들과 나의 주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들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요청 드리고 싶다.

참여와혁신은 11월호에 소개한 ‘이주민센터 친구’에 지난 11월 17일 후원금 3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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