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시민단체]④ ‘움직이는 소나무’들의 녹색교통
[참여와 시민단체]④ ‘움직이는 소나무’들의 녹색교통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7.18 11:36
  • 수정 2022.07.18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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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움직이는 소나무’···이들을 위한 교통 만들어야”
[인터뷰] 김광일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시민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을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학교 시민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④ 녹색교통운동

김광일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참여와혁신 DB

시간을 거슬러 1980년대. 우리나라 도로에 자동차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많아지자 좁은 도로는 꽉 막혔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 차들이 골목길에 줄지어 잠을 잤다. 인도에 한쪽 바퀴를 올리는 개구리 주차가 횡행했다. 당시 교통사고 사망자는 한 해에 1만 명 정도였다. 한 해가 365일이니 하루에 수십 명이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셈이다. 교통이 ‘사회 문제’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전조였다.

정부는 다급했다. 혼잡을 없애려면 자동차가 도로에 나온 만큼 도로와 주차공간을 공급해야 했다. 없는 도로를 만들고, 있는 도로는 더 넓히고, 자동차 소통에 방해가 되는 횡단보도는 없애고, 육교와 지하도를 만들었다.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 하게끔 길을 재구성한 것이다.

1993년 출범한 녹색교통운동은 ‘길’의 존재 이유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고 말해왔다. 길은 사람이 다니는 통로다. 보행자에게 권리를 주고, 차량의 이용을 자제시키고,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늘리는 게 교통 문제를 해결할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소통 위주의 교통 정책을 고집했다. 도로의 공급은 더 많은 자동차의 공급을 낳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자동차는 올해 2,500만 대를 넘었다. 인구 2.06명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광일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 위주의 정책을 계속하는 게 단기간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장기간 지속가능할 것이냐. 무한정 도로를 늘리고 주차를 다 하도록 해줄 것이냐. 시민들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 인터뷰는 6월 20일 성미산 마을극장 건물에 있는 녹색교통운동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사람을 위한
환경을 위한 교통

김광일 사무처장은 녹색교통을 “사람을 위한 교통, 환경을 위한 교통”이라 말했다. “녹색교통운동은 사람을 중심으로 교통을 바라보면서, 친환경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사람들이 만든 단체예요. 그러려면 교통의 주체인 사람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여건을 만들고, 친환경적이어야 해요. 이게 녹색교통운동의 핵심 주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출범 당시 녹색교통운동 활동가들은 종로 탑골공원에서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까지 ‘보행권’을 요구하면서 걸었다. 보행권. 걷는 것에도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녹색교통운동이 보행자에게 초점을 맞춰 만들어낸 단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교통권이라는 말을 쓴다.

녹색교통운동의 플래카드에는 ‘보행자 우선 통행 보장’, ‘장애인과 어린이 보행권 보장’, ‘난폭·과속 운전 방지법’, ‘교통 유아기금 조성’, ‘교통안전 예산 확충’ 등의 내용이 담겼다. “요구를 보면 아시겠지만 녹색교통운동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와 같이 교통에서 소외돼 왔던 사람들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 왔어요. 그래서 자동차 소통에서 교통안전이나 보행자 통행 중심으로의 정책 변화를 요구한 거예요.”

플랜카드 문구 중 정책화된 것이 꽤 있다. ‘어린이 보행권 보장’은 지금의 어린이 보호구역이 됐고, ‘교통 유아기금 조성’은 정부가 교통사고 피해 가정에 대한 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김광일 사무처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정책도 많이 바뀌었다”면서도, “여전히 교통 정책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도 정부는 도로를 다시 만들고, 공항도 지어요. 그런데 그렇게는 교통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동차가 줄어든 적이 없거든요. 교통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주 근본, 기존의 원칙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길은 사람을 위한 거예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통행하기 불편한 사람들을 위주로 정책이 만들어져야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움직이는 소나무인
시민이 녹색교통 만든다

녹색교통운동의 사업은 크게 정책제안과 캠페인, 교통사고 피해가정 지원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모든 차량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이 기준을 녹색교통운동이 만들었다. 5등급에 가까워질수록 더 비환경적인 차다. 녹색교통운동은 어떤 차에게 어떤 등급을 줄 것인지, 어떤 차량이 운행 제한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해 정책을 실현할 기반을 마련했다.

정책 아이디어를 시민에게서 얻기도 한다. 지금 서울시 버스 정류장에 가면 내가 탈 버스가 얼마나 혼잡한지 알 수 있다. 전광판에 ‘여유’, ‘혼잡’ 등 차내 혼잡도가 표시되기 때문이다. 이는 녹색교통운동이 ‘버스 서비스 개선 시민 공모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한 점을 묻고, 현실화한 것이다. 공모전은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서울시와 함께 진행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정책 아이디어를 시민들이 제안해 줄 때가 많아요. 버스 혼잡도를 알고 싶다는 건 정말 여러 사람들이 제안했던 아이디어였어요. 내가 저 버스 탈 건데, 앉아 가는지 서서 가는지 알고 싶다. 또 손잡이 높이가 좀 달랐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이 실제 서울시에서 실현됐죠.”

ⓒ 녹색교통운동 

녹색교통수단이라고 불리는 보행, 자전거, 대중교통을 시민들이 자주 이용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하는 사업도 녹색교통운동이 주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2019년까지는 ‘자전거 마일리지’라는 사업을 했었다. 한 개인이 자전거를 이용해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였는지 누적해서 볼 수 있게끔 만든 프로그램이다. 김광일 사무처장도 녹색교통운동에 입사해 “자전거가 얼마나 훌륭한 교통수단인지”를 제대로 알았다. ‘자전거 마일리지’의 대상을 자전거뿐 아니라 다른 녹색교통수단으로 확대한 사업이 ‘움직이는 소나무’다. “움직이는 소나무는 보행, 자전거, 대중교통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람을 말해요. 시민들이 모두 움직이는 소나무가 되어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만들자는 취지로 붙인 거죠. SNS에서 녹색교통수단을 이용한 것을 인증해주시는 시민들이 많아요. 기존에는 그냥 운동 삼아 걷고, 의미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분들도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본인의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시는 것 같아요.”

교통사고 피해가정 지원 사업은 녹색교통운동이 창립 때부터 해왔던 일이다. 매년 1만 명 이상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교통사고 피해 가정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가족이 교통사고 피해자가 되면 남은 구성원들의 삶은 순식간에 바뀐다. “아이들은 고아가 되고, 보호자는 한 명이 돼요. 그러면 경제적으로 바로 문제가 생겨요. 보상이라는 게 바로 이뤄지지 않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몰라요. 그런데 아이들은 또 학교를 가야 하죠.”

녹색교통운동은 1993년 10월 ‘교통사고 가정 어린이 돕기 실천본부 발대식’을 가지고 바로 모금운동에 돌입했다. 지금은 미취학·초·중·고등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하고, 도서와 교복도 지원한다. 문화체험 활동과 심리치료 지원도 하고 있다. 2007년 정부가 정책으로 교통사고 피해가정 지원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을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가 안 했더라면
아무도 안 했을 수 있다

녹색교통운동 사무실에 붙여진 화물연대본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김광일 사무처장과 만난 날은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운수 노동자는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우리 창립 선언문에 담긴 말이에요. 운수 노동자의 문제는 곧바로 시민들에게 영향을 줘요. 공공교통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운수 노동자들이 큰 고통을 겪고, 각종 사고와 환경오염에 대한 피해에도 노출돼요. 운수 노동자가 적절한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휴식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면 시민의 안전도 위협받아요. 운수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야 우리가 생각하는 교통 문제들도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와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관점이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게 활동하고 싶어요.”

교통공학을 전공한 김광일 사무처장은 2009년 녹색교통운동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녹색교통운동은 교통 정책의 대안을 먼저 제시해왔던 것 같다”고 느낀다. “만약 녹색교통운동에서 사람 중심으로 교통 정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90년대부터 안 했더라면, 아무도 안 했을 수 있어요. 또 지금보다 사람 중심의 교통 정책이 실현되는 속도가 더뎠을 수도 있어요.”

정부는 정책의 방향을 쉬이 바꾸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민의 역할은 무엇보다 주요하다. 교통환경연구소였던 녹색교통운동이 시민단체로 모습을 바꾼 배경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자전거를 타며, 보행하는 시민은 모두 ‘움직이는 소나무’들이다. 김광일 사무처장은 “시민과 같이 활동해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문제를 만들지만, 시민은 소나무를 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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