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시민단체]⑥ “공영장례, 사회 보장 제도로 정착해야”
[참여와 시민단체]⑥ “공영장례, 사회 보장 제도로 정착해야”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2.09.19 14:38
  • 수정 2022.09.20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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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
[인터뷰]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 김민석 팀장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시민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을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학교 시민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⑥ 나눔과나눔

8월 22일 서울시 마포구 나눔과나눔 사무실에서 만난 (좌)김민석 팀장과 (우)박진옥 상임이사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8월 22일 서울시 마포구 나눔과나눔 사무실에서 만난 (좌)김민석 팀장과 (우)박진옥 상임이사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연고자가 없는 자, 무연고자의 죽음에 주목한 단체가 있다.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장례 지원을 계기로 출범한 ‘나눔과나눔’이다. 나눔과나눔은 돈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는 기초 생활 수급자들, 연고자가 없거나 법적인 제한 등으로 무연고 사망자가 된 사람들의 장례 지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눔과나눔은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 보장을 위해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지원을 한다. 무연고 사망자여도 애도 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 구성원 누구나 고인을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사무실에서 박진옥 상임이사, 김민석 팀장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연고자가 있어도
무연고 사망자는 될 수 있다

먼저 무연고 사망의 정의부터 짚었다. 현재 장사 등의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한 경우를 말한다. 나눔과나눔은 이 중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가 약 70% 이상에 달한다고 밝혔다.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주된 배경은 경제적 문제였다. 평균 장례 비용이 높고,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 그에 따른 병원비도 연고자에게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장례비용은 약 1,380만 원이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최소 10년에서 30년 가까이 연락 안 하고 지내던 고인의 가족이 연락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고인의 병원비 300~500만 원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며 “거기다 장례비까지 더하면 비용을 부담할 엄두가 안 나는 것”이라고 전했다.

법적인 문제도 있다. 장사법에 따르면 사망자의 연고자 중 가족은 배우자·자녀·부모·형제자매 등으로 한정한다. 조카나 이모·삼촌 등은 연고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김민석 팀장은 연고자 범위가 너무 좁다고 지적했다. “가족 관계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법은 법률혼과 혈연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법 제도 범위 안에 없는 사람은 장례를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어요.” 김민석 팀장은 고인의 연고자가 △장례 비용 등을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 △법률적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무연고 사망자는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되게 어려워요. 가족이 있어도 시장에서 요구하는 비용을 부담할 수 없으면 장례를 못 하고, 비혼이나 1인 가구 등으로 살면 법률상 자격을 갖춘 연고자를 찾기 어려워지니까요. 그래서 무연고를 노숙인 등만의 문제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갑자기 자기 얘기로 인식하기 시작해요. 무연고 사망자 여부는 삶을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장례를 치를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거든요.”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공영장례 지원 상담센터
제도로 안착해야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문제를 접한 나눔과나눔은 공영장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영장례란 연고자 등이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식 등을 포함한 장례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지원하는 제도를 뜻한다.

2017년 나눔과나눔은 서울시에 공영장례 조례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의회 의원 면담, 서명운동 등 여러 활동을 전개했고, 2018년 조례가 제정됐다. 이후 나눔과나눔은 서울시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상담센터를 맡고 있다. 이들은 고인의 부고를 알려 연고자, 자원봉사자 등이 장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가족이나 지인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등 장례 관련 상담을 진행한다.

나눔과나눔은 공영장례 지원 상담센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는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보장하려면 고인의 부고를 알리고, 또 장례 참여자가 이를 문의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시 외 몇몇 광역지방자치단체나 기초단체에도 공영장례 조례가 있다. 그러나 현재 나눔과나눔이 운영하는 형태의 공영장례 지원 상담센터가 마련돼 있지 않아 장례 지원의 어려움이 있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상담센터가 없으면 구청 등에 문의할 수는 있겠지만, 담당자와 통화가 잘 안 되거나 그러면 장례식이 있는지조차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컨트롤 타워(공영장례 지원 상담센터)가 없는 일부 지자체 경우 각 장례식장이 알아서 공영 장례를 해요. 그러면 다른 상가집 발인을 할 때 위패를 올려놓고 사진만 찍는다든지 형식적으로 진행하기도 해요. 또 가족이 인수하지 않아서 무연고가 됐는데 언제 화장했는지 따로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공영장례라는 건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애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실제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거죠.”

또 나눔과나눔은 상담센터를 통해 장례 비용과 관련된 상담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팀장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연고자들이 장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시신 위임 서류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중간 단계에서 어떻게 장례 비용을 지원받아 줄일 수 있는지 등을 이들에게 상담을 통해 알려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예산 지원 없이 후원금으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김민석 팀장은 궁극적으로 서울시가 상담센터를 제도로 안착시켜 나눔과나눔이 필요 없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 나눔과나눔 지부를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어요. 그런데 나눔과나눔은 자기 소멸적 단체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몸집을 늘리는 것은 시민과 한 약속과 맞지 않죠. (상담센터가 제도화되면) 저희는 앞으로 약 20년 뒤 문을 닫을 예정이라서요.”

‘내 뜻대로 장례’ 보장,
가족 대신 장례 활성화도 필요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를 치리는 일도 중요하다. 생전에 자신의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을 미리 정하는 등 자신의 죽음 이후의 일을 결정할 권리 즉, 사후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과나눔은 이를 두고 ‘내 뜻대로 장례’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자신의 장례에 관한 사항은 유언이나 공증을 통해 남겨도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 이와 관련해 나눔과나눔은 이 의제를 사회적 화두로 만들고 관련 법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족이 아닌 사람도 장례를 할 수 있도록 즉, 가족 대신 장례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나눔과나눔은 전했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사실혼 관계 배우자나 교회 등 신앙생활을 같이 하던 지인, 최근에는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 등까지 고인의 장례를 치러 주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요즘에는 혈연보다 오래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법과 제도를 넘어선 동행의 관계에 주목했어요. 이 동행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가족의 역할들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이 장례를 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눔과나눔이 지향하는 모습인 거죠.”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공영장례, 죽은 사람만을 위한 제도 아니다

“국립의료원 등에 가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있죠. 그런데 무료로 장례를 해 주는 곳은 없어요. 되게 웃긴 거죠. 치료는 해주는데 죽으면 그냥 시장에 맡겨지는 거예요.”

나눔과나눔은 장례를 사회 보장 제도로 끌어와야 한다고 했다. 돈이 없는 사람도 장례를 할 수 있도록 공영장례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제도로 정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장례의 공공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질병·실업·산재·노령이 기본적인 사회 위험이었어요. 그래서 이에 맞게 4대 보험이 생긴 거죠. 그리고 최근에는 장기요양보험이 생겼고, 치매·보육 등 돌봄의 문제도 국가가 담보하겠다고 해요. 가족이 맡았던 돌봄 영역을 사회가 책임지는 거죠. 그런데 유일하게 죽음, 장례만큼은 여전히 시장에 내맡겨져 있어요. 상조 회사나 장례식장 등의 인프라는 이미 넘쳐요. 그 시장을 최대한 활용해서 장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보장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박진옥 상임이사는 “공영장례의 보편적인 사회 보장 제도화를 촉구”하며 “공영장례가 무연고 사망자만을 위한 제도로만 남는다면 낙인 효과가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장례 지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 빈곤을 증명해야 하고, 해당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장례를 치른 이들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서울시는 조례를 통해 가족해체·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무연고자·저소득층의 장례를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끝으로 박진옥 상임이사는 공영장례가 꼭 죽은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영 장례는 내가 죽어도 사회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이자 사회적 연대예요. 쪽방에 혼자 사시는 분이 돌아가셨을 때 자신의 시신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독거 어르신 또는 비혼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설령 아무도 없이 혼자 죽어도 사회가 그냥 나를 갖다 버리는 게 아니라, 나를 잘 마무리해서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보장한다는 사회적 약속인 거예요. 이걸 많은 분들이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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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은 8월호에 소개한 ‘느린학습자시민회’에 지난 9월 7일 후원금 3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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