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하청 천막농성, 왜 400일 넘겼나?
포스코 하청 천막농성, 왜 400일 넘겼나?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6.03 17:16
  • 수정 2023.06.05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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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사 ‘노조 무시’에 대항할 ‘노동3권’은 무력
“하청노조가 법 지켜서 이룰 수 있는 것 없어”
[인터뷰] 박옥경 광양지역기계금속운수산업노조 위원장

‘포스코 하청노조의 천막농성’이 악화일로 노정관계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하청노조의 농성을 지원하던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그나마 노정 대화의 불씨를 끄지 않았던 한국노총마저 정부에 등을 돌렸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장면’과 ‘고조되는 노정 갈등’은 우리 사회 화두가 됐지만, 정작 2017년부터 생존권을 걸고 싸워온 포스코 하청사 ‘포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나올 틈은 여전히 좁다. 지난달 초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앞 1인 시위 현장에서부터 최근 전화 인터뷰까지 약 한 달간 <참여와혁신>이 들은 박옥경 광양기계지역금속운수산업노조(옛 성암산업노조) 위원장의 목소리를 모아 전한다.

노조에서는 최근 회사의 탄압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을 시도한 조합원도 있었다. 이런 조합원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박옥경 위원장은 긴 투쟁 속에 “명분은 중요하지 않다. 조합원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해주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포운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원자재 등 운송 업무를 한다. 

*옛 성암산업 노동자들은 2017년 원청 포스코의 분사매각 시도에 반발하며 2018년 분사 없는 매각을 포스코와 합의했다. 그런데 2020년 3월 포스코는 성암산업의 작업권을 쪼개 다른 하청업체들에 매각하기로 했다. 노조의 반발에 포스코는 분사 없는 매각을 약속했지만, 성암산업이 작업권을 반납하겠다며 2020년 6월 말부로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2020년 7월 경사노위가 중재하면서 ‘경사노위-쪼개진 작업권을 받은 6개 하청업체 대표-광양지역기계금속운수산업노조-금속노련-포스코’가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이후 성암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한 포운이 사회적 합의문에 명시된 성암산업 시절 인사제도 승계, 임금교섭 등에 소홀히 하면서 노조와 갈등이 다시 빚어졌다.

지난 5월 9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앞에서 박옥경 위원장이 1인 시위를 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 5월 9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앞에서 박옥경 위원장이 1인 시위를 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사회적 합의 이행 안 돼
현장 불만 커져

- 포운 노사 갈등의 시작은? 

5개 회사로 쪼개졌던 조합원들이 2020년 8월 1일(1차)부터  2021년 8월 1일(2차)까지 포운에 다 모였다. 사회적 합의대로 고용승계는 완료됐다. 

그런데 임금과 직결되는 승급체계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졌다. 옛 성암산업에선 노사 합의에 따라 근속이 쌓이면서 고숙련 차량에 탑승할수록 승급(직무급)이 올랐다. 

포운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2차 복귀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승급체계를 바꾼 것이다. 승급을 1~10단계로 나눈다면 2차 복귀자들은 대부분 중간 단계였는데, 회사는 중간 단계가 당장은 비었단 이유로 2020년 이후 포운 새입사자들의 승급을 바로 올렸다. 경력을 쌓으며 2차 복귀 이후 승급을 기대해 온 조합원들의 반발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또 저숙련자가 고숙련 일을 하다 보니 안전사고도 발생했다. 현장의 룰이 뒤흔들린 거다. 이는 사회적 합의 위반이다. 협약서에 따르면 “각 회사는 ‘붙임’ 근로조건이 유지되도록 한다”고 적혀 있는데, 이 붙임 근로조건에 승급에 관한 내용이 있다. 

- 연차 문제도 나왔는데.

포운은 우리 조합원들이 들어오기 약 일주일 전에 취업규칙을 바꿔 자유로운 연차휴가 사용을 제한했다. 바뀐 취업규칙에 따라 연차를 쓰려면 7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24시간 고로가 돌아가는 제철소에서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일터 밖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연차를 써야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주변 하청사들도 이런 식으로 연차를 제한하는 일이 없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니 조합원들의 회사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나중에 보니 회사는 연차 사용이 쟁의행위의 한 방법으로 활용될 것을 우려한 거였더라. 

- 이런 문제를 단체교섭에서 제기한 건가? 

그렇다. 2021년 8월 포운에 임금협약 협상을 요청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니 승급체계와 연차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회사는 교섭주기 등 교섭의 룰을 정하는 협상부터 해태하더라. 회사는 일방적으로 교섭위원 수를 줄이라고 공문을 통해 통보하고 노조와 조율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광주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를 통해 10월 15일 단체교섭 상견례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협상이 풀리지 않았다. 단체교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11월 노동위원회는 쟁의조정중지 결정을 내렸고, 노조는 조합원 83%의 찬성으로 쟁의권을 확보했다. 

포운, 노조 인정 안 해
“깨지지 않는 벽 느껴져”

- 노사가 계속 평행선 달리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앞서 말한 사례만 봐도 포운은 실질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이 있다. 박원수 포운 사장은 포스코 감사 그룹장 출신이다. 노조 대표자를 대화 파트너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청사 직원 수준으로 생각한다. 처음에 노조가 연차 문제로 이야기하니 박원수 사장이 한마디 하더라.  ‘뭘 그리 말들이 많아.’ 이 말로 현장이 난리가 났다.

교섭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협상장에서 이 정도까지 이야길 했으면 하나라도 우리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럼 저 보고 무릎을 꿇으란 소립니까?’라고 하더라. 이 말에 다 녹아 있다. 우린 같이 합의하자는 거지 굴복해 달란 뜻이 아니었다. 한 번은 교섭 중에 사장이 팔짱을 끼고 있어서 그건 좀 그렇지 않느냐, 팔짱 좀 풀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당신들도) 끼세요~’라고 하더라. 화가 나서 그럼 우린 누워서 할까요? 했더니, ‘누우세요~’ 그러더라. 막가파다. 이러니 협상이 개판 오 분 전이 되는 거다. 니들은 아무리 떠들어봐라. 나는 아무것도 안 들어준다는 식이다. 노조 입장에선 회사가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깨지지 않는 벽이 느껴진다. 

- 협상 중에 노조가 추가로 제시한 안은 없었나? 

중간에 사장을 찾아가서 연차 문제를 해결해 주면 임금 수정안을 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린 임금 요구안으로 13% 인상을 제시했다. 노조는 2019년에 임금협상을 못 했다. 2020년에 성암산업이 폐업했기 때문이다. 이후 임금협상 타결이 한 차례도 되지 않았다. 현재 2018년 임금을 받고 있다. 그래서 주변 하청사들 평균 임금 인상률을 합해서 13%를 요구한 거다. 내가 노조 협상위원들을 설득해서라도 수정안을 제시해 보겠다고 했는데, 거부당했다. 결국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우리 사업장 연차 문제가 제기되니까 그제야 회사가 관련 제도 수정 공문을 노조에 보냈다. 노조가 협상장에서 수정안을 제시해야지, 공문으로 통보하는 게 어디있느냐고 항의했더니 협상장에선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 연차 문제는 여태 안 풀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옥경 성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br>
2020년 투쟁 당시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옥경 위원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하청노조 단체행동 무력화···
“사회적 이슈 만드는 것뿐”

- 포운 사장의 노조에 대한 인식도 일차적인 문제다. 사장이 그래도 되는 하청노동자들의 구조적인 위치도 있지 않나? 

400일 넘는 천막농성은 조합원들의 고통, 인내, 눈물로 쌓인 기간이다. 하청노동자들은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원청과 하청은 우리를 장기간 방치하면서 고립시킬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최대로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파업인데, 우리가 파업해도 포스코의 조업에 전혀 지장이 되지 않는다. 대체인력이 바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태업해서 포스코에서 냉연, 열연 라인이 선 적이 있다. 보통 하청사에서 라인을 세우면 포스코는 난리가 난다. 그런데 포운 사장은 끄떡없더라. 포스코가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없다. 

노조의 단체행동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시끄러울 뿐이다. 우린 강성노조가 아닌데  할 수 있는 건 천막농성, 삭발 등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도 중재안을 내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천막농성에 합류했지만, 이런 현실을 명확히 보게됐다. 김준영 사무처장이 고공농성에 들어간 것도 답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태업에 대한 임금삭감···
노사 막다른 골목으로

- 앞서 말했듯 태업 등 2021년 12월 노조가 쟁의행위에 돌입했는데. 

협상을 이어가도 사측의 태도와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단체행동을 고려하게 됐다. 교섭위원들과 노조간부들은 파업까지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맺은 지 1년도 안 됐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래도 조합원들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연장근로 거부, 태업을 했다. 

그랬더니 2022년 4월에 쟁의행위를 한 만큼 임금을 삭감한다는 가정통신문을 회사가 각 가정에 보냈다. 조합원들에게 타격을 더 심하게 주려고 한 달이 아닌 삼 개월 치 임금을 합쳐 한 번에 삭감하더라. 조합원들은 80~280만 원까지 줄어든 월급을 받게 됐다. 각 가정에선 ‘그만 좀 싸워라’, ‘노조 탈퇴해라’ 난리가 났다. 막다른 골목으로 간 거다. 

그런데 이미 포운에 들어오기 전에 긴 투쟁을 해서 조합원들은 지친 상태였다. 더는 투쟁 수위를 높일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단체행동을 철회하고 나와 부위원장이 삭발하고 천막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회사는 나를 포함해 노조 간부, 조합원 13명을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이런 패턴이 전형적인 노조 탄압 매뉴얼이라고 하더라. 

“사회적 합의, 그대로만 지켜도 
갈등 대부분 정리돼”

- 그래도 교섭은 이어가고 있다. 교섭장에서 노조의 원칙은 뭔가? 

사회적 합의안, 문서에 적힌 것만 그대로 지키라는 거다. 그것만 지켜도 연차, 승급체계 등은 다 정리된다. 임금밖에 안 남는다. 반면 회사는 사회적 합의는 단체협약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노사가 계속 어긋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협약서는 단체협약이 맞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지난 4월 ‘(해당 사회적) 협약서는 단체협약으로서 실질적, 형식적 요건을 모두 갖췄기에 단체협약에 해당한다’는 의견서를 내놓은 바 있다. 또 회사의 2020년 10월 7일자 공문에도 회사는 협약서를 단체협약으로 봤다. 고용노동부 여수지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와 여수지청이 단체협약이 아니라고 말을 바꾸더라. 상황이 점점 어려워졌다. 

- 어떻게 풀어야 하나?

원청 포스코가 전향적으로 나와야 한다. 포스코는 사회적 합의 당사자다. 원청사로서 포운 노사 갈등에 대한 관리·감독 책무가 있다. 또 포운 사장이 사회적 합의 정신에 입각했으면 한다. 사회적 합의 정말 어렵게 했다. 국회 앞에서 전 조합원이 단식, 노숙투쟁하면서 만들어 낸 숭고한 결과물이라고 본다. 사측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더라도 이 사회적 합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성암산업노동조합 조합원.&nbsp;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20년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옛 성암산업노동조합 조합원 ⓒ 참여와혁신 포토DB

조합원 자살 시도까지···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 회사의 탄압으로 인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조합원이 있다고 들었다. 

너무 놀랐다. 유서까지 썼더라. 유서 내용을 보면 ‘나는 왜 이렇게 탄압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사회적 합의도 하고 약속을 받아서 왔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당해야 하는 건가. 사회적 합의를 관리해 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관심 없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이런 억울함이 묻어나더라. 나는 이 조합원의 우울증에 대해 산재 신청을 하고 싶다. 내가 4선 위원장인데, 임기 동안 절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단 다짐을 늘 해왔다. 조합원들에게도 계속 이야기했다. 절대 자해할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는 개인의 불행을 딛고 다수의 행복을 추구해선 안 된다. 노조는 웃으면서 가정에 돌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거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노조는 2017년부터 싸워왔다. 모두 지친 것은 사실이다. 법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라고 해놓고, 법대로 투쟁했더니 답이 없었다. 하청노조가 법을 지켜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 근본적으로는 하청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제도적 안전망이 없기에 사회적 합의는 큰 힘을 가진 문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에선 휴지 조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약 여기서 손을 놓으면 조합원들의 마음에 쌓인 억울함과 울분은 어떻게 하나. 

노조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마지막엔 하나의 가치 추구로 수렴하는 것 같다. ‘인간 존중’이다. 결국 우리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외치게 된다. 나는 시나브로라는 말을 좋아한다. 혁명은 없다. 노사관계가 단숨에 확 뒤집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포운 사장에게 개인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나는 노조 대표자이기 때문에 언제든 대화할 것이다. 명분은 중요하지 않다. 조합원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랬을 때 회사와 합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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