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산 자의 몫” 고 양회동 건설노동자 배웅한 6,000명
“이제 산 자의 몫” 고 양회동 건설노동자 배웅한 6,000명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6.22 09:31
  • 수정 2023.06.22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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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장례 절차 모두 마무리
유족, “정부 사과 없어···남은 과제는 이제 산 자의 몫”
야당 대표들, 노조 탄압 해결 약속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장례위원회’ 상임장례위원장인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가 양회동 건설노동자의 장례식에서 제사상에 술을 올리고 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고 양회동 건설노동자의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마무리됐다. 노동절인 지난 5월 1일 양회동 씨가 정부의 노동 탄압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분신해 이튿날인 2일 숨진 지 50일 만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 17일부터 양회동 건설노동자의 장례를 진행했다. 21일 장례식은 발인미사(8시)→발인(9시)→노제(11시)→영결식(13시)→하관식(16시 30분)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은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안치됐다.

그동안 건설노조는 정부의 사과를 받아 양회동 노동자의 명예가 회복된 후 장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 “결국 정부 관계자 중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시민·정당 등 시민사회에 열사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하는 이들이 점차 늘었다. 일정 부분 열사의 사회적 명예가 회복됐다. 이에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식엔 수많은 노동계·시민사회·정당 인사들과 시민들이 함께 했다. 장례위원회엔 100여 개의 노동·시민·정당·종교 등의 단체가 참여했다. 장례위원회의 규모는 고 김용균 노동자, 고 백기완 농민 장례위원회 이후 최대 규모다. 또, 6,000여 명의 시민도 장례식에 함께 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고 양회동 노동자의 영결식’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고 양회동 노동자의 영결식’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8시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미사가 엄수됐다. 이날 미사는 김시몬 신부의 주례와 김비오 신부의 강론으로 진행됐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양경수(민주노총)·현정희(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노동계, 심상정(정의당)·강성희(진보당) 의원 등 정치계 인사를 비롯해 수십 명의 시민들이 미사에 참석했다.

김비오 신부는 “의인은 때에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는 ‘지혜서’의 말씀이 있다. 양회동 열사는 노동자로서 옳은 일을 한 것이기에 안식을 얻을 것”이라며 유족을 위로했다.

발인미사 후 장례위원회와 유족, 그리고 시민들은 “고인의 죽음엔 ‘건설 현장 특별단속’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한 경찰의 책임이 크다”며 서대문구 경찰청 앞까지 운구 행진을 했다. 2시간에 걸친 행진 후 경찰청 앞에서 30분간 노제를 치렀다. 허근영 건설노조 사무처장은 “노제가 진행되는 이곳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를 때려잡는 데 이용한 경찰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은 무리한 수사의 책임자를 제대로 밝히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장례위원회’ 관계자들 및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양회동 노동자의 노제를 마치고 영결식을 위해 광화문 세종대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장례위원회’ 관계자들 및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양회동 노동자의 노제를 마치고 영결식을 위해 광화문 세종대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오후 1시엔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엔 6,0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이 양회동 씨의 얼굴이 그려진 책자를 들고 엄숙한 표정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엔 6개 야당(민주당·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기본소득당) 대표도 참석했다. 이들은 건설노조 탄압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약속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노동자가 정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은 살아남은 우리가 이뤄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권력자의 권력을 제어하는 법치를 약자에게만 적용하는 정부의 폭주를 심판”하겠다고 했다. 윤희숙 진보당 대표는 “노동 탄압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던 고인의 유지는 이제 진보당의 사명”이라며 “진보당을 지키는 마음으로 남은 건설노동자와 건설노조를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4시 30분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이 진행됐다. 마석 모란공원은 민주화 운동가·노동 운동가 등이 많이 안치돼 있는 공동묘지다. 하관식 참석자들은 장지에 양회동 씨의 관을 넣고,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후, 제사를 지냈다.

21일 양회동 씨의 유족이 허토를 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고 양회동 노동자의 형 양회선 씨는 “동생은 50일이 넘도록 차가운 관 속에서 정부의 사과를 기다렸다”며 “하지만 정부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제 이곳 모란공원에 동생을 묻는다. 미완의 과제는 이제 우리 몫”이라며 “내년에 다시 이곳에 왔을 땐 동생에게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회동 씨의 유족들은 장례를 치르는 장례위원회 위원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양회동 씨의 유지를 받들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열사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이 필요하다”며 “그 길에 건설노조가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관식을 끝으로 51일간의 양회동 씨의 장례는 모두 마무리됐다.

앞서 경찰은 양회동 씨가 건설사에 조합원의 채용 등을 요구한 것에 대해 공갈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 청구를 신청했다. 이에 양회동 씨는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했을 뿐인데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21일 양회동 씨의 장례식에서 유족을 안으며 위로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양회동 씨는 21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됐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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