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요즘 뭐 읽니?
금융노조, 요즘 뭐 읽니?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5.24 00:00
  • 수정 2020.05.23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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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⑦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북커버 챌린지 ‘#7days7covers’가 SNS를 달궜다. 이 챌린지는 7일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좋아하는 책 표지를 SNS에 올리며 다음 참여자를 태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독서문화 확산이라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인의 다양한 독서 취향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참여와혁신>도 활동가들이 요즘 뭘 읽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요즘 뭐 읽으세요?” 답변은 다양했다. “갑자기 책이요?” “책 읽을 시간 없어요” 대부분 난색하다가도 어디선가 책을 한 권씩 꺼내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설명과 독후감이 없는 북커버 챌린지보다 재밌었다. 당시 반응도 좋아 연재 꼭지로 진행하기로 했다. 앞으로 노동조합에 국한하지 않고 노동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산별노조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서는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다짜고짜 다동 사무실을 찾아 “책, 좋아하세요?”라고 던진 질문에도 4명의 활동가들은 마음을 담아 답해주었다. 윤여림 정책전략본부 실장, 최유리 총무기획본부 차장, 정재용 공공정책홍보본부 차장, 이현정 공공정책홍보본부 차장을 만났다.

윤여림 금융노조 정책전략본부 실장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윤여림 금융노조 정책전략본부 실장
<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스스로를 다그쳤던 나에 관한 분석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5년 전,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는 문구로 신문에 소개된 <피로사회>가 제게 필요할 것 같다는 권유를 받았어요. 피로의 가해자가 바로 자신이라니? 피로의 원인은 장시간의 노동시간, 가사노동 등 사회구조나 타인에게 있지 않나?

21세기는 지배자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규율사회가 아니라 자유가 맡겨진 성과사회에요. 성과사회에서는 '너는 할 수 있다'는 정언이 지배하여 주어진 자유를 성과를 향한 압박 때문에 스스로를 착취하는데 소모하고, 그러다가 결국 우울증이나 번아웃과 같은 신경증에 걸리게 된다는 논리를 최근에 피로사회를 읽고 이해하게 됐어요.

열심히 혹은 바쁘게 살지 않으면 실패자처럼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불편한데도 거부하지 못하고, ‘혹시 뒤쳐지는 건 아닌가’하며 조바심을 내며 스스로를 다그쳤던 나에 관한 분석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이러한 원인을 알고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는 책이에요.

최유리 금융노조 총무기획본부 차장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해냄, 2020
최유리 금융노조 총무기획본부 차장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해냄, 2020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내 삶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주인의식을”

친구의 추천으로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온 김누리 교수 강의를 본 이후, 우연한 기회로 책을 선물 받아 읽게 됐어요. 책 속에서 마주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구절을 보고 한동안 멍해졌습니다. 얼마 전 5·18을 보내며 생각해보니, 저는 그동안 민주주의를 당연한 제도로 인식하고 있었어요. 스스로 약자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공감하는 삶의 태도를 갖지 못하면서, 국가가 지켜야만 하는 제도라며 떠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자세인가 하고 되묻게 됐어요.

특히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것이 광장의 촛불이 내 마음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타올라야 하는 이유다”라는 구절은 그동안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공포감마저 들었어요.

몇 해 전 필리핀에서 머물 때 제게 한 친구가 한국은 왜 자살률이 높으며, 어린아이들부터 하루 종일 학교 학원 등 공부에 시달리는 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자인 김누리 교수님처럼 저 역시도 그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친구 얼굴만 바라봤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모른 척 넘어가거나 넘기고 싶었던 불편함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내 삶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주인의식을 가질 거예요.

제목처럼,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으니까요!

정재용 금융노조 공공정책홍보본부 차장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정재용 금융노조 공공정책홍보본부 차장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사랑하고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처음에는 단순 번역판을 읽었다가 문학으로서 전문적으로 번역된 판을 읽고 싶어 두 권을 소장 중인 <위대한 개츠비>. 일인칭화자인 닉의 시점으로 쓰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 작품은 모든 것을 가졌던 개츠비가 한 사람의 마음까지는 결국 얻지 못해 비극적으로 끝난 '슬픈 사랑'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사실은 1920년대 미국에서 시행하던 금주법 등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챙긴 사업가들의 이면적 모습과 그에 따른 물질만능주의, 쾌락에 빠진 미국의 경제성장 과도기 시절을 과감하게 비꼰 작품이에요.

평론가들이 최고의 호황 이후 대공항을 맞이한 미국의 당시 상황과 함께, 부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개츠비의 비극을 엮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 제목 그대로 ‘위대한 사랑’ 이야기로 더 알려진 것은 상대방의 조건과 대가를 저울질하고 인스턴트 음식처럼 쉽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벌어지는 하룻밤 쾌락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작금의 '썸 타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선뜻 행할 수 없는 사랑을 이 작품이 대신 보여줘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데이즈 한 사람의 마음을 얻겠다는 꿈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개츠비의 허무하게 끝나버린 사랑, 그래서 개츠비의 '위대한 사랑'은 더 가슴 아프고 여운이 남아요. '사랑하고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현정 금융노조 공공정책홍보본부 차장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2019
이현정 금융노조 공공정책홍보본부 차장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2019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답답했던 부분이 바로 이거라고! 바로 당신들한테 하는 소리야!”

친구와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지정해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요.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4월에 선정한 책이었어요. 사실 저는 저 나름대로 차별이나 표현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졸업 전에 소논문도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쓰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제가 생각치도 못했던 이야기가 나올 때, 흥미로우면서도 부끄러워지기도 했어요.

그동안 묘하게 불편 했었는데 이유를 설명하진 못했던 표현들, 다들 있잖아요? 이 책은 그런 '찜찜했던' 부분들을 짚어주면서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해주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어요.

그래, 내가 답답했던 부분이 바로 이거라고! 바로 당신들한테 하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