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⑧] 비대면 회의, 어떻게 하고 있나?
[커버스토리⑧] 비대면 회의, 어떻게 하고 있나?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9.10 00:02
  • 수정 2021.09.09 2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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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화상회의 경험 축적···
포스트 코로나엔 온·오프 장점 살리는 방향으로

회의하고 개운한 적 있으신가요?

회의는 문제를 풀자고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회의는 엉킨 문제의 실마리의 끝을 잡아 쭉 잡아당긴 다음에 여러 바퀴 더 감아 실타래를 더 엉키게 만드는 골치 아픈 일로 생각한다. 회의를 하고 난 후 기운이 쭉 빠져 영혼이 빈 동료의 눈동자를 바라보곤 한숨을 푹 쉴 때, 그 동료도 한숨을 푹 쉰다. 아마도 당신의 빈 눈동자를 바라봤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회의가 사람들의 생기를 앗아갈까, 회의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기를 가질까 이야기를 들어봤다.

커버스토리⑧ 비대면 회의는?

25일 열린 한국노동공제회 발기인대회에는 조강현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택배산업본부 조직국장, 4개 권역별 서울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 센터장 등이 온라인으로 함께했다.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지난 8월 열린 한국노동공제회 발기인대회에는 참석자들이 화상회의로 함께했다.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모니터에 보이는 상대를 보며 말하는 것이 낯설기만 했던 비대면 회의는 이제 업무의 일부가 됐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비언어적 표현을 못 읽어내 답답하고, 티키타카가 어려운 기술적 한계에 벌써 지쳐버렸다. 반면 어떤 이들은 화상회의가 편하고 경제적이라며 온라인 소통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노동조합과 회사는 어떤 비대면 회의를 경험하고 있을까?

더 피곤한 비대면 회의

피로감은 가장 먼저 다가오는 어려움이다. 화상회의에선 45cm 앞으로 다가온 것 같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해야 한다. 이 거리는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로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에게만 허락하는 물리적 영역이다. 김병기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자기 얼굴을 모니터에서 크게 봤던 경험도 없던 사람에겐 화면에 얼굴을 집어넣는 것부터 어색한데, 상대의 가까운 얼굴까지 마주하며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얼굴 대신 아바타가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좋겠단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피로감을 두고 스탠퍼드대학교 가상인간상호작용연구소 소장 제러미 베일린슨(Jeremy Bailenson)도 ‘동료들이 가득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금지된 상황’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여기에 음질, 화면 끊김 등 기술 문제까지 겹치면 금새 지치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또한 화상회의에선 충분한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의미 전달의 65~70%를 차지하는 비언어적 표현을 모니터를 통해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연배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선전홍보실장은 “화상회의에선 눈짓,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같은 발언을 하더라도 설명이 길어진다”며 “특히 신임 지부장 등 화상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토론하기 더 힘들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경우 대면회의를 거치려고 안건을 미룬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소통이 힘들다 보니 회의가 일방으로 흐르기도 한다. 공광규 한국노총 금융노조 홍보본부장은 “물리적 거리와 낯선 기계 시스템이 자유로운 토론을 방해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회의가 일방이 되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김태성 민주노총 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특히 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발언에 제약이 따르고 일부 참가자가 발언을 독점하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화상회의 과정이 기록될 수 있다는 전제가 참석자들을 위축시키기도 한다. 김병기 사무국장은 “화상회의에선 녹화가 된다는 전제하에 자기 검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에선 참석자들의 허심탄회한 진심을 듣거나, 사는 이야기도 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화상회의에선 쉽지 않다”고 전했다.

장점은 ‘경제성’
정보공유 회의도 효과적

비대면 회의는 여러 장점도 있다. 우선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 이상진 한국노총 조직확대본부 본부장은 “화상회의 때 세 가지만 논의합시다 하면 불필요한 가지치기 없이 안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강연배 선전홍보실장은 “지역에서 서울로 오는 교통비가 안 드니까 보건의료노조에선 장비를 사서 지역본부별로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춰놨다”며 “또한 특정 장소에 모이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회의 참석률이 높아진 장점도 있다”고 했다.

충분한 회의는 어렵지만 정보 전달과 공유엔 화상회의가 적합하단 이야기도 나왔다. 김태성 사무처장은 “정부 행정기관에서 전국 단위 회의를 위해 일찍이 화상회의를 도입했다. 그래서 화상회의는 주로 의견 전달에 최적화 된 시스템”이라며 “현재 화상회의는 토론 중심보다는 결정 사항 전달, 정보·상황 공유에 적합할 듯하다”고 평가했다. 강연배 선전홍보실장도 “화상회의가 치열한 토론은 어렵지만 짧게, 자주 필요한 회의에 적합하다”며 “교섭 중인 보건의료노조는 매주 금요일 아침 교섭 상황 공유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전국 지부장, 전임 간부 등이 들어와 서면으론 전하기 어려운 상황과 맥락 등을 공유한다”고 전했다.

한 가지 안건을 설명한 뒤 피드백을 받는 형태의 회의도 비대면으로 잘 이뤄지는 편이다. 송영욱 한국능률협회컨설팅 본부장은 “비대면이 잘 되는 케이스는 한 사람이 주제를 발표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포럼 같은 형태의 회의”라며 “명확한 주제를 두고 함께 이해한 뒤 논의하다 보니 온라인에서도 진행이 원활하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교육에도 화상회의 시스템 활용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강연배 선전홍보실장은 “지역지부별 선전홍보 담당자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해왔다. 전에는 1박 2일 일정 안에 여러 내용을 몰아넣었는데, 올해는 8주에 나눠 온라인으로 교육했다”며 “외부강사도 모시고 매주 과제도 함께하며 긴 호흡으로 가져갔더니 후속 강좌를 열어달라는 등 평가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포스트 코로나에도 피할 수 없다
화상회의 장점 살리고 단점 보완해야

피할 수 없는 비대면 회의는 결국 적응의 문제가 된다. 김광창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비대면 회의는 부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적응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예전엔 전체 회의 중 온라인회의 비중이 0%였다면 코로나 시기엔 50~70%, 코로나 이후엔 20~30%로 바뀔 순 있지만 화상회의는 앞으로도 유효한 업무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대면 회의에 잘 적응하기 위해선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보완해 나가야 한다. 강연배 선전홍보실장은 “충분한 논의와 결의가 필요한 대의원대회는 모여서 하고, 짧게 상황을 공유하는 회의는 온라인으로 하는 식으로 온·오프라인 각각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충실한 회의 준비와 기술·장비 보완도 필요하다. 김호정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처장은 “화상회의는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참석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뒤 간결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며 “진행 중 끊기지 않도록 기술적인 보완도 필요하다”고 했다. 전근배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도 “앞으로도 노동조합에서 긴급한 논의나 결정이 필요할 때 화상회의가 자주 활용될 것 같다”며 “이런 회의 문화를 잘 정착시키기 위해 조직마다 기본 영상장비를 마련할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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