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회의 이모저모
[커버스토리④] 회의 이모저모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9.09 00:01
  • 수정 2021.09.09 0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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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하고 개운한 적 있으신가요?

회의는 문제를 풀자고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회의는 엉킨 문제의 실마리의 끝을 잡아 쭉 잡아당긴 다음에 여러 바퀴 더 감아 실타래를 더 엉키게 만드는 골치 아픈 일로 생각한다. 회의를 하고 난 후 기운이 쭉 빠져 영혼이 빈 동료의 눈동자를 바라보곤 한숨을 푹 쉴 때, 그 동료도 한숨을 푹 쉰다. 아마도 당신의 빈 눈동자를 바라봤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회의가 사람들의 생기를 앗아갈까, 회의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기를 가질까 이야기를 들어봤다.

커버스토리④ 회의에 한발 더 다가가기 

ⓒ 참여와혁신DB 

회의문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애초에 회의는 왜 이런 존재가 된 걸까? 학교에서의 조별과제를 떠올려보면 그때도 회의는 순탄치 않았던 듯하다. 회의문화의 실마리를 찾아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기록에 남아있는 회의 형태는 주로 국가 차원에서 이뤄졌던 것들이다. 그 이전 농경사회에도 회의는 있었지만 공동체 내 지식격차가 존재했다. 내부에서 지혜를 가진 사람이 회의를 주재하고, 그의 결정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공식적인 ‘회의체’가 지속됐던 건 삼국시대 때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결정하지 못하는 만장일치제로 진행됐다는 신라의 화백회의부터 고구려의 제가회의, 백제의 정사암회의가 있었다. 화백회의의 경우 초반에는 왕이 회의를 주재했는데, 나중에는 귀족들이 왕을 폐위시키는 등의 사안도 회의에서 정했다. 참가자인 귀족이 실질적인 힘을 가졌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회의를 직접 진행했다. 역사적으로는 참가자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회의의 주재자였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가 잘못된 회의문화의 토대가 됐다고 진단한다. 권위자가 공식석상에서 누군가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상황이 일제강점기에 반복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격차가 크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주재자의 일방적인 ‘가르침’은 불만을 낳는다. 참여자도 주재자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게 됐다.

2018년 ‘수원시 회의체계 개선방안 연구’를 수행했던 박상우 수원시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 굳어진 회의문화는 일본식의 잔재와, 미군정에 의한 군대식 회의가 기원이 됐다고 볼 수 있다”며 “자유로운 논의보다 상명하복 식 문화가 중요시 됐다. 그러다보니 현재에 와서는 시대적으로 감퇴된 문화”라고 말했다.

회의 유형과 전문가 처방

회의를 일터로 좁히면 유형을 나눠볼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기업의 회의문화 실태와 개선해법’ 보고서에서 일터에서의 회의를 ▲보고·점검 ▲정보공유 ▲아이디어도출 ▲문제해결이라는 목적으로 분류한다.

보고·점검회의는 참가자들의 업무 진척도를 말하는 자리가 된다. 관례적으로 이뤄지는 일일, 주례, 월례회의가 속한다.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발언하고 나머지는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회의도 비슷하다. 각 부서 간 돌아가는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경우 등이다.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한 회의는 ‘사고의 진전’이 목표다. 꼭 이 자리에서 의사결정까지 이뤄질 필요는 없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들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때 열리는 회의다. 문제해결 회의는 말 그대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집중하는 회의다. 조직들은 주로 문제해결 회의의 최종순서로 의사결정과 업무분장을 둔다.

이 외에도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워크숍, 훈계의 자리로 사용되는 각종 면담 등 다양한 ‘회의’ 상황이 있다. 현실에서 회의의 목적들은 뒤섞여 진행되는 게 태반이다. 그래서 회의도 누군가의 의지 아래 잘 설계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그룹 대표는 “우리나라는 회의를 잘 못 이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도 있고, 회의를 진행하는 법을 어디선가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기 때문이다”라며 “사내에 퍼실리테이터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각도의 의견들을 가감 없이 동등하게 말할 수 있도록 진행을 도와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퍼실리테이션은 ‘쉽게 하도록 돕는다’는 라틴어 Facile에서 유래된 단어다. 주재자와 참여자 말고 회의를 촉진할 퍼실리테이터라는 제3의 역할을 부여하자는 방법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조직 외부의 사람일 수도 있고, 내부의 사람이 교육을 받고 회의에 참여할 수도 있다.

서진 민주주의기술학교 상임연구원은 “막상 들여다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다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민주주의기술학교에서는 ‘조직문화 이야기카드’를 만들어 조직 내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점들을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카드를 놓고 연관된 자신의 경험과 사례, 의견 등을 공유할 수 있다.

‘괜찮은’ 회의를 위한 팁

회의가 잦은 노동조합들은 나름의 팁을 가지고 있었다. 회의가 막히고 환기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회의 장소를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김호정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처장은 기분이 좋아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늘 하는 똑같은 회의에 지쳐있다면 아예 장소를 외부로 옮겨보자는 것이다. 여건상 장소를 바꾸는 게 어렵다면 무언가 쓰고 싶어지는 좋은 펜을 배치한다거나, 향을 준비한다거나, 간식거리를 놓아보는 것도 참가자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원 발언을 제안하기도 해요.” 김광창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전체 지역의 성원들이 참여하는 회의라면 사안에 따라 발언을 모두 들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역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왔던 사람들의 의견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주재자가 모두의 이야기를 한 마디씩이라도 들으려 하는 회의분위기는 그 이전과도 다를 수 있다.

“결론이 너무 안 나면 정회하는 것도 괜찮아요.” 김태성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결정을 쉽게 못 한 채로 회의가 흘러간다면 조금 쉬어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신경전이 팽팽하거나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성원들에게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그동안 삼삼오오 모여 다시 논의하거나 원래 계획을 수정, 양보할 수 있다. 꼭 당장 결정해야 할 안건이 아니라면 회의 자체를 다음으로 미루는 것도 방법이다.

“정시에 시작하기 운동을 한 적이 있어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어느 순간 회의 전에 미리 와 있는 것이 당연해졌다. 예전엔 성원이 부족해 늦게 열릴 때가 많았다. ‘회의 정시에 시작하기 운동’을 시작한 후 강연배 보건의료노조 선전홍보실장은 “지금은 거의 정시에 시작한다. 바뀐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 많이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저는 1:1회의라고 부르는데, 구성원들과 사전회의를 가지면 본회의가 순조롭게 진행돼요.” 구자숙 민주노총 전교조 편집실장은 논쟁이 예상되는 안건을 준비할 때 회의 성원들에게 고민 지점을 미리 털어놓는다. 막상 회의 자리에서 내 의견을 충분히 말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안을 만들어놓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는 회의 준비과정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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