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그만 멀어져야 하지 않을까?
[커버스토리③] 그만 멀어져야 하지 않을까?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09.08 00:04
  • 수정 2021.09.07 2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른 불안의 이유, 듣는다는 것의 다른 의미
‘주52시간상한제·비대면·신입리더’의 습격

회의하고 개운한 적 있으신가요?

회의는 문제를 풀자고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회의는 엉킨 문제의 실마리의 끝을 잡아 쭉 잡아당긴 다음에 여러 바퀴 더 감아 실타래를 더 엉키게 만드는 골치 아픈 일로 생각한다. 회의를 하고 난 후 기운이 쭉 빠져 영혼이 빈 동료의 눈동자를 바라보곤 한숨을 푹 쉴 때, 그 동료도 한숨을 푹 쉰다. 아마도 당신의 빈 눈동자를 바라봤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회의가 사람들의 생기를 앗아갈까, 회의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기를 가질까 이야기를 들어봤다.

커버스토리③ 회의 주재자-참가자의 시각 차이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회의가 피곤한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회의 주재자-참가자, 흔히 시니어-주니어로 불리는 두 주체의 시각 차이가 넓어질수록 회의는 더 피로해질 가능성이 높다. ‘불안’과 ‘듣는다’라는 키워드로 시각 차이에 프리즘을 대봤다.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더 빨리 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적 변화를 살펴봤다.

불안

회의 주재자든 참가자든, 그러니까 흔히 시니어든 주니어든 회의는 각자의 이유로 각자를 불안하게 한다. 시니어는 일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불안하다. 주니어는 내 시간 깎아먹는 것이라 생각해 불안하다.

송영욱 한국능률협회컨설팅 본부장은 시니어들의 불안을 대표하는 사례가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라고 했다. “직원들은 다 재택근무하고 상사들만 다 출근하는데, 두 눈으로 보지 않고 대면 보고를 받지 않으니 일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어 상사들이 불안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상사들이 서면이나 메신저를 통해 확인해도 될 점검 사안들을 화상회의를 통해 하고, 화상회의 횟수가 늘어난다.

꼭 재택근무가 아니어도 시니어들의 불안은 불쑥불쑥 나온다. 송영욱 본부장은 “중소기업의 경우도 흥미롭다”며 “한 공간에서 일하는 중소기업이면 자리에 일어나서 뭐하는지 보이고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회의를 잡는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공간의 중소기업에서도 회의의 탈을 쓴 대면보고회의는 빈번하다. 기업의 규모를 떠나 이 시대 시니어라면 비슷하게 가진 문화적 토대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주니어들은 이를 낭비로 인식하는 것이다. 예정에 없는 회의가, 그것도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회의가 주니어들의 생산성을 떨어뜨릴까 불안한 것이다. 일터에서 시니어든 주니어든 불안이라는 감정은 같이 느끼지만, 이유는 상당히 대척점에 놓여있다.

듣는다

회의 주재자들은 듣고 싶어 한다. 정작 회의 참가자에게 물어보면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재자와 참가자, 흔히 시니어와 주니어로 일컬어지는 관계에서 ‘듣는다’는 의미가 다르다.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그룹 대표는 “시니어나 리더들이 듣는다는 것, 듣고 싶다는 건 설득하기 위해 듣겠다는 뜻이다”라며 “내가 가르쳐주고 고쳐주겠다는 생각이 밑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니어나 리더들은 자기 딴에 열심히다. “가르치고 고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주장이 어떻게 부족한지를 들어야 하고, 그러니까 듣는다고 생각한다”는 게 구기욱 대표의 해석이다. 반면 회의 참가자들이 주니어들이 생각하는 ‘듣는다’의 의미는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이고, 반영을 위해 귀를 여는 모습이다. 결국 의사결정에 반영이 아닌 가르치고 고쳐져야 할 수단으로 듣기 때문에 시니어와 주니어의, 회의 주재자와 참가자의 인식 차이가 발생한다.

회의를 잘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불안함에 대한 다른 이유와 듣는다는 것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은 ‘시니어-주니어’, ‘회의 주재자-참가자’ 사이를 더 벌려 회의를 좀 더 피로하게 만든다. 간극을 줄일 시도들이 필요하다. 최근 회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호명하고 있다.

이제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주52시간 상한제를 지켜야 한다. 노동시간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업무량, 만들어내야 할 성과물은 줄지 않았다. 노동밀도는 올라간 셈이고 최대한 업무 시간 내에 몰입을 해 맡은 업무를 끝내는 풍토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또한 워라밸을 점점 중요시하면서 법정 노동시간 외에 초과 노동을 당연시하던 문화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노동환경과 노동문화의 변화는 기업의 회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송영욱 본부장은 “(이제 더) 내 일하기 바쁜데 회의에 시간 뺏기는 게 더 싫은 상황이 왔다”며 “회의 때문에 내 일 못하고 야근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불만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회의를 줄이는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게 송영욱 본부장의 생각이다. 물론 회의는 집단 내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스마트하게 줄이는 고민이 절실해졌다는 뜻이다.

여기에 코로나19는 비대면 세계를 급작스럽게 현재에 안착시키길 요구하고 있다. 특히나 회의 분야는 비대면화의 1순위 대상이다. 회의는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비대면 회의 수요에 발맞춰 기술 개발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기업이 원하는 대로 기술을 개발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물론 제아무리 좋은 기술이 준비됐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활용도는 낮아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다면 만들어진 기술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위드코로나’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현재는 사람이 얼른 변해야 하는 시기이다. 비대면 회의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이자 비대면 회의를 위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 시기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코로나19로 인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회의에 대한 고민을 깊게 만든다. 한편으로 젊은 세대가 관리자가 되는 시간이 곧 온다는 점도 회의에 대한 고민을 깊게 만드는 환경적 변화이다.

송영욱 본부장은 “시기적으로 MZ세대에서 밀레니얼세대가 리더가 되는 시대”라며 “근데, 회의는 내 업무 시간 깎아먹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의가 낭비라고 인식한 채 회의를 주재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송영욱 본부장은 “조직의 일이 집단지성을 통해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대면 소통이 부담스러운 세대와 회의가 시간을 뺏는 것이라 문화적으로 습득해온 신입리더들이 모여서 뭘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기업의 회의를 둘러싼 노동 제도의 변화, 노동 문화의 변화, 노동자의 변화라는 3가지 변화는 본질적으로 회의는 무엇이고, 그동안 해왔던 피로한 회의를 바꿔야 한다는 근거가 됐다. 송영욱 본부장은 “옛날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면 돼가 아니라, 시간을 뺏지 않고 (개인과 조직에) 성과가 창출되는 회의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전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