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회의는 왜 피곤할까?
[커버스토리②] 회의는 왜 피곤할까?
  • 정다솜 기자,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9.08 00:03
  • 수정 2021.09.08 0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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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진행-평가’ 연결된 회의
“뭐 하나 때문에 피곤한 건 아냐”

회의하고 개운한 적 있으신가요?

회의는 문제를 풀자고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회의는 엉킨 문제의 실마리의 끝을 잡아 쭉 잡아당긴 다음에 여러 바퀴 더 감아 실타래를 더 엉키게 만드는 골치 아픈 일로 생각한다. 회의를 하고 난 후 기운이 쭉 빠져 영혼이 빈 동료의 눈동자를 바라보곤 한숨을 푹 쉴 때, 그 동료도 한숨을 푹 쉰다. 아마도 당신의 빈 눈동자를 바라봤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회의가 사람들의 생기를 앗아갈까, 회의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기를 가질까 이야기를 들어봤다.

커버스토리② 회의가 피곤한 이유

편집·디자인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편집·디자인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회의는 왜 피곤할까? 사전 준비가 안 돼서, 회의 목적이 불분명해서,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이 너무 없어서, ‘답정너’라서, 내 일에 도움이 안 돼서, 결론이 안 나서, 결정난 대로 집행이 안 돼서···. 회의가 피곤한 이유는 다양하다. 서진 민주주의기술학교 상임연구원은 “회의 하면 진행 현장만 떠올리기 마련인데, 회의 전-중-후 과정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며 “뭐 하나 때문에 피곤한 건 아니”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참여와혁신〉이 만난 이들도 회의 전 과정에 걸쳐 피곤한 이유를 전했다. 회의 주재자든 참가자든 회의가 피곤했던 경험은 비슷했다.

#장면1. 회의 전

빈틈 많은 사전자료

회의에 사전자료는 빼놓을 수 없다. 사전자료가 없으면 논의할 안건과 참고할 데이터, 조건, 맥락 등을 참석자 간 올바르게 공유하기 어렵다. 그러면 기본 내용을 전달하느라 시간을 빼거나, 참석자 간 충분한 논의를 할 수 없게 된다.

김태성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회의자료를 미리 준비하고 회의 전 최소 3~5일 전에 배포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참가자들의 충분한 준비에 방해가 되는 요소”라고 했다.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도 “회의자료를 보면 준비를 했는지, 안 했는지 보인다. 이는 참석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며 “자료가 마련되지 않은 채로 회의 준비할 때 싫다.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준비가 안 됐으면 같은 안건을 다음 회의 때 논의해야 해 소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송주현 정책실장은 회의자료를 준비하는 총무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회의 안건과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하찮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조직 전반을 꿰고 있지 않으면 어렵다”며 “그래서 회의에서 총무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준비되지 않은 참석자들

사전자료가 충실하게 마련됐더라도 주재자와 참석자가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 입장을 정리해오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회의는 삐걱댄다.

우선 회의 주재자가 준비되지 않으면 참석자들은 당혹을 넘어 무례하다고 느낀다. 구자숙 민주노총 전교조 편집실장은 “주재자가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사람들을 모아놓고선 갑자기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건 굉장히 무례하다고 생각한다”며 “참석자들이 창의적인 상태가 된다는 건 귀한 상태다. 그러려면 자료를 찾아보고, 사람들이랑 대화를 나누는 등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6년차 아동복 디자이너 B씨도 “사회 초년생 때 아이디어가 필요한 주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 없이 맨손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했다. 무슨 이야기든 하라는 식의 회의가 가장 괴롭고 화났다”고 했다.

참석자들이 준비되지 않아도 힘 빠지는 회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하늬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차장은 “참석자마다 안건에 대한 준비 정도가 너무 차이나면 회의 진행이 잘 안 되고, 결정 사안에 대해서도 누군가 불만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광창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회의에서 발언한다는 것은 안건에 대한 파악을 전제로 자기 입장을 세우는 것이기에 기본 준비가 되지 않으면 발언할 수 없다”며 “보통은 몇몇 준비된 사람들이 회의를 주도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모인 목적이 뭐더라?

회의 목적이 불분명해도 피곤하다. 전근배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처장은 “산별대표자 회의나 운영회의를 하면 25~30명 정도가 모인다. 그 중에는 회의 목적에 대해 긴가민가 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며 “그러면 회의 진행이 제대로 안 되고 그 사람들도 피곤한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욱 한국능률협회컨설팅 본부장은 “대부분 회사에선 관리, 교육, 업무지시 등 직원들을 모아서 무엇인가 하는 것을 회의라고 통칭한다”며 “회의라고 모였지만 목적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회의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회의를 기피하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목적이 불분명한 회의는 습관성 회의로 이어진다. 아동복 디자이너 B씨는 “전 직장에서 특별한 이슈 없이 월요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주간회의가 있었다. 전 구성원이 모여 자기 스케줄을 보고했다”며 “안 그래도 업무 강도가 높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참아가며 일했는데 내 아까운 시간을 왜 내 일과 상관없는 부서원의 스케줄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송영욱 본부장은 “‘도대체 왜 하지?’ 싶은 형식적인, 루틴한 회의가 굉장히 많다”며 “그래서 컨설팅할 때는 업무 분석을 한 뒤 목적에 맞게 회의를 분류하는 작업을 먼저 한다”고 했다.

지난 3월,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참석 조합원들이 명부에 서명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지난 3월,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참석 조합원들이 명부에 서명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장면2. 회의 중

쓸데없는 ‘말말말’

참석자들의 ‘중언부언’은 회의를 피곤하게 만든다. 김태성 사무처장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해선 소수 의견이라고 배제되지 않도록 충분한 토론을 보장해야 하는데, 이 지점에만 매몰되다 보면 회의가 느려지고 중언부언이 많아지게 되면서 시간끌기, 진 빼기 회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송주현 정책실장은 회의 주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회의가 길다고 좋은 게 아니다. 회의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힘들고 분위기가 루즈해진다”며 “그럴 땐 회의 주재자가 적절히 잘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구자숙 편집실장은 참석자들의 태도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그냥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중언부언 하는 경우가 많다”며 “참석자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인지한 상태에서 최대한 짧고 분명히 이야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딴 소리도 문제다. 대기업 인사팀 3년차 직원 D씨는 “전 팀장님이 회의 때 쓸데없는 정치 얘길 한 마디씩 꺼냈다”며 “그럴 때마다 우리가 왜 회의를 하는 거지 싶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2년차 직원 C씨는 “상급자에겐 회의가 단순히 업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부를 묻는 자리이기도 한 것 같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서 회의를 시작하니까 회의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며 “젊은 사람들은 회사에선 업무만 하자는 인식이 강한데, 윗분들은 아직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안부에서 훈계까지 가면 분위기는 더 안 좋아진다.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그룹 대표는 “직원들이 이렇게 나태하게 일해선 안 된다, 분기 실적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일을 어떻게 했냐는 등의 질책과 훈계 자리로써 회의 경험이 많다 보니 회의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회의가 가끔 삼천포로 빠지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정영수 반려동물 관련 IT스타트업 기획자는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분위기 특성상 회의가 끝도 없이 길어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면 중간에 방향성을 잃기도 하고 1시간이면 끝날 회의를 10시간씩 할 때도 있어 가끔 답답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총연맹으로서 민주노총의 약 1,800명 규모 대의원대회 역시 긴 회의 중 하나다. 송주현 정책실장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워낙 길다 보니 성원이 안 돼서 끝나길 바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대내외로 집중하는 대의원대회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참석자들이 에너지를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점은 문제”라고 평가했다.

의견 없어 논의는 제자리

정리되지 않은 말이 떠도는 회의는 구성원을 지치게 한다. 그런데 반대의 상황도 같다. 안건은 있는데 의견이 나오지 않을 때다. 참가자들이 발언을 주저하면 안건은 원안대로 결론 내려지기 쉽다. 그래서 회의 자체는 짧지만,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어떤 노동조합은 회의가 너무 길어서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한국노총과 상당수의 산하 노동조합은 너무 짧아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회의에서 발언을 잘 안 하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다. 찬반 토론이 너무 치열해서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면서까지 회의를 해 봤으면 하는 꿈같은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전근배 사무처장도 회의에서 구성원들이 “발언을 아낀다”고 생각한다. 이 느낌은 그가 속한 산별조직뿐 아니라 여러 산별이 모인 지역본부 회의에서도 해당됐다. “대표자의 결정, 생각들이 그냥 하부로 전달되는 방식. 그것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힌 것 같다. 지역본부 회의 때도 은연중에 나타난다. 발언을 아낀다거나 돌출되는 발언을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식석상에서는 그런 애로사항을 소상히 이야기를 못 한다”며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잘못 이야기하면 다른 사업장이랑 비교가 될까봐 그렇다”고 말했다.

일상의 회의에서도 침묵이 반복되면 주재자와 참석자 모두 비효율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안건을 내놓은 사람이 이야기를 더 나눠보고 싶어도 다들 말문을 열지 않으니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회의 자리에서 말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앞서 준비가 부족할 수도 있고, 의견개진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답답한 ‘답정너’ 회의

공공기관 직원 C씨는 “위에 분들만 계속 말씀하고, 아래는 듣기만 하는 식으로 회의가 많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했다. 애초에 임원진 단위에서 결정된 것을 C씨가 포함된 회의에서 “뿌려주는” 방식으로 회의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논의도 자유롭지 않다.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면 참가자들은 의견개진을 포기하기도 한다. 주재자가 답정너가 될 때다. 참가자들은 의견이 딴지나 말보태기로 비춰질까 말을 아낀다. 구자숙 편집실장도 일터에서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은 적이 있다.

“저는 사람들이 다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려면 그만큼의 고민과 에너지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업장에 있을 때도 생각해보면, 제일 무례한 방식은 하고 싶은 거 다 결정이 됐어요. 그러면 그냥 설득하고 공지하면 되잖아요. 토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요즘 공지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왜 다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건가 싶죠.”

회의라는 탈을 쓴 전달의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논의의 필요성을 의심하게 된다. 원하는 답을 내놔야 순탄하게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면 의견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상급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텐데, 말을 덧붙여 회의를 더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참가자가 입장을 미리 고정해버려도 의견조율이 어려워진다. 익명의 노동조합 간부는 내부에서 정치적 견해가 다를 때 회의가 막히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성원들의 정파가 있기도 한데, 경우에 따라 충돌될 때 사실은 갑갑하다”고 말했다.

김하늬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차장도 “다른 사람들이랑 판단을 내린 상태에서 그걸 관철시키겠다는 자세로 회의에 임하는 사람을 과거에 만난 적이 있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며 “기껏 회의에서 결정이 됐는데 실제로 집행되는 것은 전혀 다를 때도 있었다”고 공감했다.

회의만 한나절

많은 직장인이 회의 시간이 긴 게 힘들다고 한다. 회의가 끝나면 오전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오후에는 또 소규모 회의가 진행된다. 회의만 하다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잡혀 있는 회의들을 생각하면 일할 시간이 어디 있나 싶다.

준비되지 않은 회의는 긴 회의가 되기 쉽다. 회의가 길다는 뜻은 곧 자기 시간을 뺏긴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구기욱 대표는 “어쨌든 회의의 부정적 측면은 시간이란 자원을 쓴다는 것”이라며 “자기 시간을 쓴 이상의 결과가 나오면 회의가 좋다고 할 텐데, 그 이상의 가치가 안 나오니까 회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길다는 하소연 뒤에는 ‘생산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 사소한 안부를 물으며 회의를 하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다. 회의 안건이 적절치 않거나 주재자와 참석자가 생각하는 회의의 상이 다르다고 생각될 때 이런 기분이 든다.

공공기관 직원 C씨는 “내 시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드는 회의가 가장 싫다. 중요한 포인트만 간단하게 말하고 끝나는 식의 방법이면 괜찮은데, 아무래도 계속 부연설명들이 붙고, 회의가 길어지면 1시간이 넘고, 이럴 때 일할 시간이 뺏긴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주52시간 상한제 도입 이후 노동시간 단축이 당연해진 현실도 회의가 더 피곤해진 배경 중 하나다.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업무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회의에 뺏기는 시간이 더 아까운 것이다. 송영욱 본부장도 “주52시간 상한제 도입 이후 내 일도 바쁜데 회의에 시간 뺏기는 것이 더 싫은 상황이 왔다”며 “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야근하게 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못 참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노동조합에서 긴 회의는 고민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회의를 통해 모아진 구성원들의 결의는 집행의 동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노동조합에서는 짧은 회의가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의견도 많았다.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회의는 경험의 전수나 교육 등의 기능이 포함된다는 말도 있었다.

강연배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선전홍보실장은 “밤샘 회의를 하면 한편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밤늦게까지 고민하면서 투쟁결정을 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며 “각급 단위로 회의를 많이 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회의는 기업체처럼 빨리빨리 해야 하는 회의하고는 기본적으로 아주 다르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더디더라도 같이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장면3. 회의 후

명확하지 않은 결론

준비가 없고, 목적이 공유되지 않아 회의 중에 생기는 일들을 짚어봤다. 이런 상태로 회의 시간만 흐르면 자연스레 결과는 애매해진다. 회의는 끝났는데 결론이 나지 않거나 참가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김광창 사무처장은 “결정이 선명하지 않은 회의를 제일 싫어한다. 몇 시간을 회의했는데 결론이 뭔지 물어보면 모르겠다거나 다음에 한 번 더 하기로 했다는 식이면 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라 본다. 바쁜 사람들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 걸 생각하면 (결론 없는 회의는) 비판적이다”라고 말했다.

결론이 명확하지 않으면 비슷한 논의를 차후에 또 해야 한다. 회의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고, 긴 회의에 오전을 다 보냈지만 같은 주제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회의 중 역할분담이 이뤄지지 않아도 매한가지다. 논의는 됐는데 누가 무엇을 할지 정해지지 않으니 참가자들은 다음 회의까지 혼란을 겪는다.

이행 없는 회의

“회의를 몇 시간씩 했어요. 결론을 지었는데, 그러고 나서 끝이에요. 이행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럼 회의 가서 그 이야기를 또 할까요? 맨날 이야기해봤자 그때만 그렇고 끝이면 표현을 안 하겠죠. 의견 제시하면 나만 말만 많은 놈으로 찍히니까요.”

송영욱 본부장은 ‘회의가 일로 연결되지 않았던’ 실망의 경험이 쌓이면 무언가 진행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내가 한 이야기에 대한 피드백은 감감무소식이고, 일에 반영도 되지 않는다.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회의에서는 질책이 반복된다.

회의가 회의 자리에서만 끝나면 구성원들은 발전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김태성 사무처장은 “안건에 대한 각자의 의견과 입장, 다양함을 인정하고 토론을 치열하게 하되 결정을 하면 마지못해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이행까지 결의까지 하는 회의가 좋다”며 “무엇보다 결정한 사항을 각 단위에서 집행하고 환류하는 회의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는 회의를 하는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준비와 회의진행, 집행까지를 하나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 ‘회의가 피곤하다’는 말 속에는 여러 고민거리가 숨어있다. 복잡하지만 회의가 피곤하다는 말로 넘어갈 순 없다. 구자숙 편집실장은 개인과 조직이 좋은 회의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이렇게 정리했다.

“회의는 하나의 기승전결로 벌어져야 해요. 그런데 준비 없고, 말잔치하고, 끝나고 나서 안내 없는 회의를 너무 많이 잡는 구조라면 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죠. 회의를 잘 준비한다는 건 보통 에너지가 아닌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회의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타인과 공동체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인 거예요. 준비되지 않은 회의 백날 해 봤자 시간만 낭비하는 거잖아요.”

* <참여와혁신>이 만난 사람들은 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고민도 많았다. 특히 전체 맥락이 아닌 인용 형태의 리포트라서 조직에 대한 불만으로만 비춰질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이들은 속한 조직에서 진행되는 회의뿐 아니라 과거 회의 경험을 종합해 들려줬다. 진솔한 고민을 전해준 취재원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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