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주말’ 온라인 배송 확대... 마트노동자 건강·휴식권은 ‘나 몰라라’?
‘야간·주말’ 온라인 배송 확대... 마트노동자 건강·휴식권은 ‘나 몰라라’?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2.09 09:18
  • 수정 2023.02.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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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윤석열 정부, 각각 유통업계와 의무휴업 규제 완화 추진 협약 체결
마트노동자 “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배제돼”
서울시 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안내문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시 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안내문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초기 대형마트는 규모의 경제, 저렴한 가격, 높은 접근성 등의 전략을 통해 국내 유통시장을 이끌었다. 이후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ICT 기술을 활용한 사업 전략이 등장하면서 유통시장은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돼왔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온라인 유통시장 규모는 더욱 커졌다.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되자 비대면 경제활동이 급격하게 확대됐다. 특히 신선식품·가공식품 등 온라인 쇼핑을 통한 먹거리 소비가 증가하면서 새벽·당일 배송 등 신속한 물류와 배송이 유통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배송 거점으로 활용했다. 고객 접근성이 비교적 높은 곳에 있는 장점을 활용해 그 자체가 물류센터 역할을 수행하며 배송시간 및 거리를 단축하게 했다. 현재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 부문 노동자들은 고객의 온라인 주문 처리를 위해 매장에 진열된 상품을 담고 분류·포장하는 (주로 매장 후방에 위치한) 물류센터에서 주로 업무를 수행한다.

갈수록 유통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탓일까? 마트노동자 건강권과 전통시장·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마련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0시~10시) 및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와 유통업계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시장이 재편되는 가운데 해당 규정이 전통시장 보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뿐더러 대형마트만 불이익을 받는 것은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 28일 정부는 유통업계와 영업제한시간·의무휴업일에도 대형마트 등의 ‘온라인 배송’이 허용될 수 있도록 공동 노력하겠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 13일 대구시는 2월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월요일’로 변경하는 조례 제·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논의의 주체로 초대받지 못했다. 규제 완화에 따른 노동자의 건강권·휴식권 침해 문제는 상대적으로 배제되는 양상이다. 마트노동자들은 주말·야간노동 확대는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이 문제 제기하는 쟁점은 세 가지다.

① 온라인 배송 증가 따른 ‘야간노동 확대’

유통 대기업들은 온라인 배송시간이 늘어 야간노동이 확대돼도 기존 직원들의 노동시간은 변함없다고 주장한다. 늘어난 영업시간에 야간노동을 수행할 노동자를 새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트노조는 야간노동 자체가 노동자 건강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이 같은 일자리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22일부터 7월 9일까지 마트산업노동조합 온라인배송지회 조합원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 실시 결과1) 현재 야간배송을 하는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노동자는 전체 응답자 284명 중 63명(22.2%)이었다. 이들은 적은 수면시간에 따른 수면장애를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간배송자의 평일 수면시간은 평균 6.26(±1.11)시간, 야간배송자의 경우 5.46(±1.06)시간으로 야간배송자의 수면시간이 더 짧았다. 수면장애 증상을 ‘매일’ 또는 ‘한주에 여러 번’ 겪는다는 응답 비율은 2020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실시한 ‘근로환경조사’2)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잠들기가 어려움’ 31.0%, ‘자는 동안 반복적으로 깨어남’ 55.3%, ‘기진맥진함 또는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며 깨어남’ 49.3%로 2020 근로환경조사상 각각 3.3%, 4.6%, 6.3%보다 현저히 높았다. 세 항목 모두 주간배송자에 비해 야간배송자가 ‘매일’로 응답한 경우가 많았다. 

현재 온라인 배송노동자들은 대형마트와 위·수탁계약을 맺는 운송사와 계약한 특수고용직이다. 입직을 위해 본인 소유 차량이 있어야 하고 노동법 적용이 안 돼 연차나 유급휴가, 4대 보험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고용이 불안정하며 운송료가 낮아 소득도 불안정한 편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야간노동을 하는 이유로 야간배송자 63명 중 49명(77.8%)이 ‘경제적 이유’로 야간배송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284명 대상으로 소득 만족도 조사 결과 ‘한 달 총소득으로 귀하의 가구가 생활’하기에 ‘대체로 어렵다’ 또는 ‘매우 어렵다’고 응답한 경우는 180명(63.4%)이었다. 

다수의 온라인 배송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야간배송을 선택하는 이유에도 이 같은 이유가 작용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온라인 배송시간 확대는 더 많은 노동자들을 야간배송으로 내몰고 이들의 전반적인 수면장애 및 과로 등 건강 악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마트노조의 설명이다.

17일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위원장 정민정)과 마트노조 서울본부(본부장 강우철)는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앞에서 ‘의무휴업제도 무력화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7일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위원장 정민정)과 마트노조 서울본부(본부장 강우철)는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앞에서 ‘의무휴업제도 무력화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② 일요일 의무휴업 ‘평일’ 전환 따른 ‘주말 휴식권 침해’

마트노동자들은 마트 전체가 쉬는 날인 의무휴업일을 온전한 휴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1~2주마다 새로 고지되는 시간표와 달리 고정적인 휴일은 의무휴업일 뿐이고, 동료나 가족 또는 지인들과 약속을 잡거나 휴일 계획을 세우기에도 가장 적합한 날이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의 월 2회 의무휴업을 규정하고 있다. 의무휴업일은 공휴일 중에서 지정하되,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마트노조에 따르면 일요일 의무휴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마트노동자 휴일은 거의 평일이다. 따라서 의무휴업마저 사라지면 일요일 휴일은 거의 사라질 위기라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진희자 마트노조 이마트여의도지회 지회장은 “2008년부터 15년째 마트에서 근무 중이다. 지금도 의무휴업이 아닌 주말에 하루 쉬려면 사정해야 한다”며 “적어도 눈치 보지 않고 한 달에 두 번 가족들과 쉴 수 있어 행복하다. 의무휴업은 건강권과 휴식권을 넘어 노동자의 행복권을 지켜주는 제도인데 이를 정부와 싸워 지켜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 전반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의 확대 적용을 요구해왔다. 복합쇼핑몰, 백화점 등 노동자들도 일요일에 휴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원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마트 의무휴업을 보며 다른 유통노동자들도 일요일 휴일에 희망을 가졌다”면서 “일부 백화점 등 판매서비스노동자들은 원청의 요구에 따라 주말 연장 근무로 9시 넘어 퇴근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도 의무휴업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 1회 의무휴업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기적인 휴일 보장으로 노동력 회복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다. 지난해 서비스연맹·마트노조가 설문조사와 함께 실시한 면접조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온라인 배송노동자들은 운송계약서에 따라 월 4일 휴일(의무휴업일 포함)을 정하고 있다. 그중 일부 배송노동자들은 일방적으로 회사에 의해 의무휴업일이 있는 주에 휴일을 하루 더 보내고 있었는데, 이는 배송노동자들의 과로를 가중시켜 육체적·정신적 소진을 더욱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예컨대, 의무휴업일이 일요일인데 회사로부터 토요일 휴일이 주어지면 토일을 쉬고, 다음 의무휴업일까지 배송노동자는 최장 12일간 근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해당 근무 형태를 경험한 배송노동자 A씨는 “휴일 없이 연속 근무를 하면 솔직히 몸 관리 자체가 잘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마트노동자들은 건강권·휴식권 보호를 위해 의무휴업 제도 확대를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요일 의무휴업은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지 않게 하는 ‘사회적 휴일’이라고 주장했다. 강진명 서비스연맹 유통분과 의장은 “유통산업발전법을 통해 그나마 노동자들이 빨간 날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됐다”며 “일요일에 쉬고 싶다는 유통노동자의 소박한 소망 실현을 위해 서비스연맹 유통분과는 전원 단결해 나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③ 규제 변경 시 ‘이해당사자인 노동자 배제’

최근 대구시와 정부가 각각 의무휴업 규제 완화 추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견 수렴 절차는 없었다. 정부가 이 같은 태도는 작년부터 일관되게 나타났다. 지난해 7월 ‘국민제안 TOP 10’에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국민투표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후 규제심판회의에서 의무휴업 규제 완화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도 노동자는 없었다.

이에 마트노동자들은 유통산업발전법상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대구시와 정부가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를 규탄하는 의견서를 전국의 마트노동자와 시민들로부터 모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 접수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지난달 30일에는 의무휴업 규정 취지가 전통시장 및 노동자 건강권 보호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구시의 의무휴업 평일 변경 과정에서 전통시장 상인과 마트노동자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은 ‘직권남용’이라며 관련자들을 고발하기도 했다. 마트노조가 마트노조가 고발한 이들은 홍준표 대구시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대구시 기초지방자치단체장 8명(조재구 남구청장·이태훈 달서구청장·최재훈 달성군수·윤석준 동구청장·류한국 서구청장·김대권 수성구청장·배광식 북구청장·류규하 중구청장) 등 총 11명이다.

끝으로 박찬종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부지회장은 유통 기업 간 ‘출혈 경쟁’이 가장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코로나를 거치며 대형마트들이 온라인 유통 부문 사업을 확장했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오프라인 점포 내 물류센터를 다른 점포와 통합 운영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일부 이마트 지점 내 PP(Picking&Packing)센터 13곳이 다른 점포와 통합, 5곳이 폐점된 바 있다. PP센터란 이마트 매장을 활용한 SSG닷컴의 온라인 물류 처리 공간으로,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의 집품(Picking)·포장(Packing)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이에 따라 일부 노동자들은 일하는 매장이 변경돼 출퇴근 시간 또는 배송 거리가 갑자기 증가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의무휴업 평일 변경 등이 실현되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현장의 노동자라는 것이 박찬종 부지회장의 입장이다.

그는 “노동자들이 요구해서 만든 의무휴업 규정을 정부 마음대로 갑자기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며 “전체적인 노동시간 단축도 필요하지만, 정기적인 휴일은 노동자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미래를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노동자들이 기계처럼 언제 쉴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 서비스연맹·마트산업노동조합·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유통물류서비스업 야간노동 실태와 노동자 건강영향 연구(2022.12)
2) 산재예방정책 수립과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 생산을 목적으로 만 15세 이상 취업자 5만여 명을 대상으로 로 근로형태, 고용형태, 직종, 업종, 유해·위험요인 노출, 고용안전 등 130여 개 노동환경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조사.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3년마다 실시하며 통계청 '국가통계포털(http://www.kosis.kr)'에 근로환경조사 결과를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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