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의 자살” “헌법·노동법 의도적 무시” 건설노조 수사에 쏟아진 비판
“법치의 자살” “헌법·노동법 의도적 무시” 건설노조 수사에 쏟아진 비판
  • 김광수 기자·천재율 기자
  • 승인 2023.06.05 20:20
  • 수정 2023.06.05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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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수사 문제점 논하는 토론회 열려
“법치의 이름으로 법 오용...법치의 자살”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고용교섭 등 건설노도 단체협약의 정당성과 정부 건설노조 탄압의 문제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고용교섭 등 건설노도 단체협약의 정당성과 정부 건설노조 탄압의 문제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최근 건설노조 조합원 조사에 많이 입회하고 있다. 입회 시 수사기관으로부터 빈번히 들었던 질문들이 있다. ‘회사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이유가 있냐?’ ‘회사에서 단체협약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냐?’는 질문들이다.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이에 응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노동법, 나아가 단체교섭에 관한 권리를 명시한 헌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조세현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

1,000여 명의 건설노동자가 수사받는 등 건설노조에 대한 수사기관의 전방위적 수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건설노조 수사에 자주 입회했다는 조세현 변호사(법무법인 다산)는 현재 수사당국의 수사가 헌법과 노동법에 명시된 노동3권(단체교섭권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음 (노동조합의 교섭권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노동3권이 명시된 헌법 33조에 관해 이야기하며 열변을 토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잘 반영되지 않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건폭’(건설 현장 폭력) 발언 이후 ‘건설노조는 조폭’이라고 예단한 후 의도적으로 법을 무시하면서 수사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1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열린 ‘고용 교섭 등 건설노조 단체협약의 정당성과 정부 건설노조 탄압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나왔다. 

건설업의 구체적 사정 살펴보면 교섭 중 채용 요구는 정당

한상희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대표는 “사용자보다 힘이 약한 노동자가 교섭과 단체행동 등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권력을 가진 사용자가 이를 인내하라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자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것”이라며 “노동조합의 교섭 자체를 불법으로 몰아가며 전방위적 수사를 펼치는 것은 정부의 수사가 아니라 폭력이자 헌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하고(헌법 제33조), 노조법에선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할 경우, 사용자는 교섭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노조법 제30조).

최근 수사기관이 건설노조의 교섭 과정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채용’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조세현 변호사는 “이 같은 태도는 고용이 사용자의 인사권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건설 현장의 ‘구체적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설업은 특정한 기간 건축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일이라 주로 일용직으로 고용된다”며 “이런 고용 형태는 사용자의 이해관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현장이 있을 때만 노동자를 고용하고, 평상시에는 고용하지 않으려는 건설사의 니즈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매일 고용불안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은 건설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건설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건설노조가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경영권이라도 무조건 사용자의 전속사항이라고 볼 수 없으며, 산업과 노동 형태 등의 구체적인 사항들을 검토해야 한다는 판례도 많다“며 “건설현장과 건설노동자에 관한 구체적인 검토를 하지 않고 무조건 고용에 관한 교섭은 금지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얄팍한 형식논리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업, 기업별 노사관계와 다를 수밖에 없어
받아들일 건 제도화, 잘못된 부분은 시정해야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설노동자들은 대기업 정규직들과는 다른 고용 형태를 가지고 있다”며 “그래서 기업별 노조를 만들기 쉽지 않다. 이에 건설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한 후 노사 교섭을 통해 나름의 노사관계를 형성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별  노사관계의 발전이 어려운 현실에서 초기업적 결사체를 만들고, 나름의 노사관계를 만들어 온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업별 노사관계를 기초로 만든 한국의 노동법 체계 아래에서는 건설업의 노사 관행이 법 규범적 근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며 “그렇다면 정부는 노사가 만들어 온 관행을 잘 살펴보고, 그중 산업에 적합한 것은 제도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이 작업은 매우 세심하게 진행돼야 할 일”이라고 말하며 “지금 정부는 노동조합의 활동 자체를 부당한 것으로 뭉뚱그려 형사처벌만 하려고 하니 계속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전했다.

퇴행 중인 건설 현장
법치 이름으로 법치 죽이는 일 막아야

소영호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작년 이맘때쯤 건설노조는 단체협약을 어떻게 다른 현장에 더 확장할지, 어떻게 더 많은 일용 건설노동자를 노동조합의 울타리 안으로 넣을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누가 털렸다더라’, ‘어디서 누가 잘렸다’는 이야기만 듣고 있다. 후퇴하는 건설 현장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2021년 개정된 채용절차공정화법은 유력 정치인이나 지방 호족들의 부패와 이에 호응한 공기업, 은행에 대한 공분으로 입법된 것인데 지금은 건설노동자의 노동자공급에 대해 적용 중이다. 재벌기업집단의 독과점 거래 등을 막고자 만들어진 공정거래법도 건설노동자를 사용자로 규정하는 데 쓰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금 정부에서 법치를 강조하는데, 애당초 법이 만들어진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법을 오용하는 것은 행정권의 통제를 위해 만들어진 법치를 파괴하는 일”이라며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법치를 망치고 있다. 이는 ‘법치의 자살’”이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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