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9,860원···물가 인상률 밑돌아
내년 최저임금 9,860원···물가 인상률 밑돌아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7.20 13:47
  • 수정 2023.07.20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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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위, 18~19일 차수 변경하며 밤샘 논의
합의 유도했지만 ‘사용자 편향’ 비판도
표결 끝에 경영계 최종안 결정
19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2024년 최저임금 심의를 마친 공익위원들이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2024년 최저임금이 시급 9,860원(206만 740원, 209시간 기준)으로 19일 정해졌다. 올해 최저임금인 9,620원보다 2.5%(240원) 인상된 금액이다. 물가인상률 전망치 평균인 3.4%에 못 미치는 인상률에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실질임금 삭감을 겪게 됐다며 불평등이 가속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결정된 최저임금은 노동계(1만 원)와 경영계(9,860원)의 최종 제시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다. 투표에는 재적 위원 26명이 모두 참여했으며, 경영계안은 17표, 노동계안은 8표를 받았다. 나머지 1표는 무효(기권) 처리됐다. 사실상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 대부분이 시급 9,860원에 투표한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18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최임위 전원회의실에서 14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9시간 가깝게 이어진 논의에도 최임위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자정을 넘기며 차수를 변경해 15차 전원회의를 열어 밤샘 논의를 이어갔고, 표결을 마친 오전 6시께 논의가 종료됐다. 무려 15시간을 이어간 마라톤 회의였다.

다섯 차례 수정안,
노사 간극 825원→140원

15시간 회의에서 노사는 다섯 차례 수정안을 냈다. 간극은 825원에서 최종 140원까지 좁혀졌다. 최종안이 나올 때까지 공익위원은 ‘합의에 이를 수준의 인상액 제시’를 거듭 요구하며 노사 양측을 압박했다.

먼저 7차 수정안으로 노동자위원은 시급 1만 620원을, 사용자위원은 9,795원을 냈다. 이어진 8차 수정안에서 노동자위원은 1만 580원을, 사용자위원안은 9,805원을 제출했다.

노사는 더 이상 수정안을 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고, 공익위원은 최저임금 상하한선(심의촉진구간)을 마련했다. 하한은 9,82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대비 2.1% 인상한 금액이다. 인상률 2.1%는 ‘2023년 1~4월 3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임금총액 상승률의 평균값(2.16%)’을 참고한 근사치다. 상한은 5.5% 인상한 1만 150원이다. 5.5% 인상률은 ‘비혼 단신 노동자 생계비 개선분(2.1%)’과 ‘202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평균(3.4%)’를 합한 값이다. 여기서 물가 상승률 전망치 평균은 한국은행(3.5%)‧한국개발연구원(3.4%)‧기획재정부(3.3%)의 지표를 이용했다.

9차 수정안은 심의촉진구간 안에서 제시됐다. 노동계가 인상률을 대폭 낮추며 간극이 크게 줄기 시작했다. 노동자위원안은 460원 내린 시급 1만 20원(인상률 4.2%), 사용자위원안은 10원 올린 시급 9,830원(인상률 2.2%)이었다. 격차는 190원으로 크게 좁혀졌으나 공익위원은 10차 수정안을 요구했다. 노동자위원은 ‘9차 동결’ 의사를 밝혔고, 사용자위원은 다시 10원 올린 9,840원(인상률 2.3%)을 냈다. 공익위원은 합의 가능한 간극(180원)으로 좁혀졌다며 9,920원(2023년 대비 300원, 3.12% 인상)을 노사에 조정안으로 제시했다. 노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마지막 11차 수정안인 1만 원(노동계)과 9,860원(경영계)을 표결한 끝에 경영계안이 2024년 최저임금으로 정해졌다.

‘합의’ 촉구한 공익위원,
경영계 계속 격차 줄여왔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 기간은 110일로 역대 최장기간인 108일(2016년)을 경신했다. 법정 심의기한(6월 29일)을 20일 넘겼다. 18~19일 이틀간 15시간 회의에 최임위 노‧사‧공과 사무국, 기자들도 혀를 내둘렀다. ‘노사 합의’로 끝을 보겠다던 공익위원의 운영 방침이 크게 작용했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를 가장 중요한 심의 기준이자 방향으로 삼았다”고 했다. ‘법정 심의기한 준수’를 강조했던 지난해와 다른 모습이었다.

노사 간극이 180원으로 좁혀진 10차 수정안 이후, 공익위원은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노사에 ‘조정안’으로 9,920원을 제시했다. 조정안 도출 방법에 대해 권순원 교수는 “명확한 근거에 의한 수치는 아니”라며 “합의 유도를 위해서 기계적인 차원에서 반분해서 중간값을 조정안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0차 수정안대로라면 조정안은 1만 20원(노동계)과 9,840원(경영계)의 중간값인 9,930원이어야 한다. 권순원 교수는 “노동자위원이 9차 수정안에서 1만 20원을 제안한 뒤에 10차 수정안에서 수정 없이 백지를 냈다. 비공식적으로 노동계의 의사를 확인했을 때 1만 원이 마지노선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그것을 기준으로 중간 값을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10차 수정안을 백지로 낸 이유에 대해 노동자위원은 ‘경영계 인상안이 답보 상태여서 9차 수정안을 그대로 제출한 것’이라고 전원회의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동계의 수정안을 임의로 20원을 깎은 조정안을 공익위원이 제시한 셈이다.

반면 경영계의 10차 수정안은 그대로 인용한 것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사용자위원의 인상률 마지노선은 확인해보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권순원 교수는 “사용자위원 마지노선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며 “사용자위원이 계속 (격차를) 줄여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최초안부터 10차 수정안까지 노동계가 총 2,190원 줄일 때 경영계는 220원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18~19일 이틀만 두고 보더라도 노동계가 620원을, 경영계는 65원을 수정해 제시했다.

공익위원 대부분은 최저임금 1만 원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정안으로 9,920원 제시했지만 표결에선 거의 모두가 경영계안(9,860원)에 투표했다. 박준식 최임위 위원장은 “우리나가 최저임금 절대 수준이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왔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도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특히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인상률은 2.5%지만 9,860원도 상당 액수”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이 19일 최저임금 표결이 끝난 직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제도 개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심의 마지막까지 발맞춘 노동계
“정부 정책방향 그대로 관철돼”

경영계는 조정안을 수용키로 했지만 노동계는 갈렸다. 한국노총은 찬성한 반면 민주노총은 반대했다. 애초 노‧사‧공 운영위원은 조정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노사 최종안을 두고 표결 절차에 들어가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노동계가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인데도 약속과 달리 공익위원은 조정안에 대한 동의 절차를 밟으려 했다.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은 노사 최종안을 두고 표결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이에 공익위원 측에서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은 나가라’는 얘기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을 배제한 노‧사‧공 합의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 했던 것 아니냐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조정안을 두고 잠시 이견을 보였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시급 1만 원’을 노동계 최종안으로 정하고 모든 심의가 끝날 때까지 발을 맞췄다. 전원회의 종료 직후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올해 최저임금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결정됐다. 실질임금 삭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준영 노동자위원 강제 해촉,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위촉 거부 등 정부의 월권과 부당개입 상황이 심의 도중 일어나 최저임금 위원회의 자율성‧독립성‧공정성이 저해됐다”며 “정부의 월권과 부당 개입에 사라진 최임위의 자율성‧공정성‧독립성을 확립하는 방안을 깊이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물가상승과 예정된 공공요금 인상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산입범위 확대개악으로 인해 실질임금 하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를 도외시한 결정으로 소득불평등은 더욱 가속화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자본과 부자 중심의 윤석열 정부의 정책방향이 그대로 관철된 이번 최임위 논의는 결국 윤석열 정부의 퇴진 없이는 노동자, 시민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경영자총협회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바람을 담아 최초안으로 동결을 제시하였으나, 이를 최종적으로 관철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며 “다만 이번 결정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로, 우리 최저임금이 또다시 고율 인상될 경우 초래될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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