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노동자
자영업자,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노동자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2.10 00:10
  • 수정 2021.02.10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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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는 노동자? 사용자? 자영업자의 ‘노동자성’은?
노동권 보호 혹은 경제적 육성 위해 ‘세밀한 분류’가 먼저

커버스토리 : 자영업, 어찌할꼬?

‘자영업 살려야 한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언론은 자영업을 살려야 한다고 말해왔다. 임대 현수막을 붙인 텅 빈 상가를 비추며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 가야 하는 지점이 있다. 자영업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자영업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그들을 ‘시혜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릴 수 있다. 현장의 자영업자들을 찾아가 ‘자영업을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커버스토리②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자영업자

윤경자 궁중족발 사장
윤경자 궁중족발 사장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우린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할 수 없어. 노동자가 아니니까.”
“노동자가 아니면 뭐?”
“자영업자.”
“자영업자도 노동자인데요?”
“사장 노동자지.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잖아. 자영업자에게 노력은 있어도 노동은 없어.”
“일하는 만큼 버나요?”
“꿈에 가까워지는 게 버는 거지.”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 2화 중

드라마의 한 장면. 주인공 진주는 유명 드라마 작가 밑에서 일하는 ‘새끼 작가’다. 진주는 출근시간을 조정해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단칼에 ‘포기’한다. 유명 작가는 진주를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 노동자’, ‘자영업자’라고 부른다. ‘자영업자도 노동자’라는 명제는 ‘근로계약관계’가 아닌 유명 작가와 새끼 작가 사이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노력은 있어도 노동은 없는’ 게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새끼 작가인 진주는 정말 자영업자일까? 새끼 작가와 카페 사장님의 처지가 같다고 보기에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자영업자’라는 말 속에 함정이 있다. 우리가 뭉뚱그려 자영업자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는 노동자에 가까운 사람, 노동자는 아니지만 사용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람도 있다. 자영업 살리기의 첫 단계는 이들을 정확히 분류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를 수 없고

국어사전에서는 자영업자를 ‘자신의 혼자 힘으로 경영하는 사업자’로 정의한다. 사전만 봤을 때 자영업자는 영락없이 사업자다. 그러나 영문으로 자영업자는 ‘Self-Employed’, 스스로 고용된 사람을 말한다. 고용됐다는 측면에서 노동자의 의미가 더 강조된다.

전통적인 노동관계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 한 편에는 일을 시키는 사용자가 있다. 다른 한 편에는 시킨 일을 하는 노동자(피용자)가 있다. 여기서 자영업자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지위를 동시에 점하는 사람이다. 자영업자는 사용자로서 자신을 고용하고 동시에 노동자로서 자신에게 고용된다. 말이 복잡하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의미는 동시에 언제든지 ‘내가 내키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어떤 직장인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또 언제든 퇴사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자영업자는 아니다. 직장인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자영업자는 그럴 수 있다. 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오롯이 혼자서 진다. ‘내가 시키는 일을 내가 하는 사람’이 바로 자영업자다.

다만 ‘자유로운 형태로 일하는 사람’을 자영업자로 이해하면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가게 문을 원할 때 열 수 있는 사장님처럼 정시 출퇴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동자일 수 있다. 방송작가, 대리운전기사, 택배기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배달노동자 등 플랫폼노동자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특정한 일터에서 정해진 시간에 일하지 않지만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킨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일을 시킨 건지(고용) 아니면 부탁한 건지(용역)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탁한 일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일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통제하려 한다. 자영업자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자영업자로 분류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노동권의 보호가 필요하다.

한문태 마노비어 대표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바지사장님도 사장님인가요?

그렇다면 치킨집 사장님은 모두 자영업자라 할 수 있을까? 대체로는 그렇다. 하지만 만약 그 치킨집이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가맹점주는 큰 틀에서 가맹본사가 ‘시키는 대로’ 일하기 때문이다.

가맹사업은 체인사업의 한 형태다. 체인사업은 두 곳 이상의 점포가 하나의 브랜드를 내걸고 표준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형태를 말한다. 여기서 한 사업자가 여러 개의 점포를 운영한다면 직영점 형태이며, 복수의 사업자가 운영한다면 가맹점 형태다. 가맹사업에서 가맹본부는 가맹점주에게 브랜드 사용권, 영업 노하우, 직무 교육 등을 제공한다. 그 대가로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에 가맹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함정이 존재한다. 프랜차이즈 가입은 해당 브랜드의 표준화된 영업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을 말한다.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는 가맹점주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메뉴를 팔 수도 없고 팔아서도 안 된다. 가맹계약 위반이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사장님은 사장님이지만 마음대로 가게를 운영할 수 없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러한 가맹본부와 가맹점주의 관계를 ‘지배종속적’이라고 말한다.(한국노동연구원, 《프랜차이즈 노동관계 연구》(2014)) 전통적인 고용관계에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일을 지시한다. 이를 ‘지배종속관계’라고 한다면, 가맹본부는 가맹점주에게 표준화된 사업 방침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가맹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가맹본사에는 가맹점을 통제할 수 있는 ‘지배종속적’인 힘이 있다는 것이다. 가맹본사 대표와 가맹점주 모두 똑같이 ‘사장님’이라고 불리지만, 단지 호칭만 같을 뿐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박제성 선임연구위원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형식상의 사업자성으로 인해 지배종속성을 전제로 하는 노동관계에 포섭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가맹점주에게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가맹점주가 가맹본사에 고용돼 있는 노동자라고 판단하기에는 섣부르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많은 가맹점주가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또한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에 종속돼 있기도 하지만 가맹사업에 자신의 자본을 투자한 ‘동업자’이기도 하다. 가맹점주는 동업자로서 가맹본사의 방침을 착실히 따르는 한편, 동업자에게 어찌 이런 대우를 하느냐고 가맹본부에 항의하기도 한다. 가맹계약의 불공정성을 토로하는 것이다.

누가 자영업자인가

우리가 뭉뚱그려 자영업자로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영업자로 오분류된 노동자는 노동권의 보호가 필요하다. 뭘 하더라도 가맹본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는 가맹계약의 종속성을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제외하고 남은 사람들은 진짜 자영업자라고 불릴 수 있다. 언제든 가게 문을 닫아도 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지는 ‘최소 단위의 기업’인 것이다.

다만 노동자 내부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격차가 존재하듯 자영업자 내부의 격차도 만만치 않다. 점포를 몇 개씩 가지면서 떵떵거리는 사장님이 있는 반면, 하루 종일 가게에 매달리는 사장님도 있다. 전자를 진성 자영업자, 후자를 영세 자영업자로 부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 진성 자영업자는 정부의 육성 대상이다. 훗날 대자본가가 될 수 있는 귀중한 새싹이다. 자영업의 전설로 시작해 현재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큰 손이 된 백종원 씨를 떠올려보자. 자영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은 소자본가를 대자본가로 키운다는 의미다.

반면 영세 자영업자는 정부의 보호대상이다. 사회안전망, 특히 노후가 불안정한 한국사회에서 자영업은 정년퇴직, 희망퇴직 등 많은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손쉬운 길이다. 그러나 평생을 회사 생활만 한 사람들이 준비도 없이 섣불리 자영업에 뛰어들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허다하다. 직장이라는 보호막을 잃고 뾰족한 수가 없어 생계를 위해 자영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나쁜 상황에 처하기 쉬운 현실이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돕는 일도 정부의 정책적 과제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장사할 맛’ 지켜주기 위해선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자영업은 경기를 많이 탄다. 경기가 좋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경기가 나빠지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는 그동안 자영업자가 떠안고 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그동안 야금야금 자영업자를 괴롭혀 왔던 임대료, 프랜차이즈, 플랫폼 등 문제들이 급속도로 심화한 것이다.

이러한 골칫거리들은 모두 ‘자영업 수익률 저하’라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모두 자영업자들에게 ‘장사할 맛’을 빼앗아 가는 주범이다. 그간 자영업자들은 매년 매출이 증가하더라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실제로 자영업자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여태껏 자영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지 않고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나빠져만 가는 자영업을 그냥 지켜만 본 셈이다.

물론 코로나19로 현재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영업제한이 풀리고, 다시 거리에 사람들이 붐비면 자영업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영업자들의 삶이 더 나아진다는 건 아니다.

가게에 손님이 많이 온다고, 배달 주문이 폭주한다고 해서 자연히 자영업자의 처지가 더 좋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은 무척 많아졌는데 남는 건 없는 허탈한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자영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어떻게든 ‘장사할 맛’은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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