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사람 있는 산단을 고민할 차례
[커버스토리④] 사람 있는 산단을 고민할 차례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10.19 00:00
  • 수정 2022.10.19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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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과 구직의 불균형, 산단은 인력난을 겪어
중소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산업생태계인가 질문해야

산업단지 리포트

산업단지가 만들어진 지 어언 60년. 대한민국의 산업을 이끌어온 산업단지는 어쩐지 힘겨워 보인다. 수명을 다해가는 산업과 중소기업 경영난, 질 나쁜 일자리, 환경오염, 산업재해 등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낡은 것’들이 산업단지 곳곳에 먼지처럼 방치되어있다. 한국의 성장,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에 한몫해온 산업단지는 어떤 모습일까. 전국 7개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단지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커버스토리④ 산단이 일하려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려면

땅, 물, 전기, 원료, 기계설비가 갖춰졌다고 해서 산업단지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있어야 산업단지는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은 산업단지에서 중요한 요소다. 한편으론 중요도의 크기만큼이나 문제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산업단지가 제조업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가 나타날 확률이 있다. 다만 현장의 목소리는 조금은 달랐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문제보다 당장은 인력난을 문제로 지적했다.

산업단지 내 위치한 한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일할 사람이 ‘없다’, ‘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현실은 인력난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인력 수요와 인력 공급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서 일하고 있는 30대 청년노동자 T는 산단의 인력 문제 양상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산단에 대기업이나 대기업 1차 하청회사, 그러니까 중견기업 정도 되는 곳이 몇 군데 없어요. 나머지 회사들에서는 급여 수준이나 복지 같은 걸 그곳들처럼 맞춰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산단 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많이 몰리겠죠. 나머지는 인력난이 더 심해질 거고요.”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기업주에게는 맞는 말이고, 일할 사람은 있지만(일을 하고 싶지만) 일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은 구직자 혹은 청년들에게는 맞는 말인 것이다. 일할 사람이 없는 것도, 있는 것도 모두 참인 상황인 셈이다.

적은 돈, 안 좋은 환경
문제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

산단 내 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왜곡 문제는 왜 발생할까. T의 말처럼 급여 수준의 차이가 여러 원인 중 하나다. 취재했던 일곱 지역의 산단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저임금 문제가 인력 수급의 왜곡 문제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월급 300~400만 원 준다고 하면 일하는 환경이 안 좋더라도 (기업으로) 올 것”이라고 여러 취재원들이 이야기했다.

급여 수준뿐 아니라 노동환경의 차이도 한몫한다. 이재영 금속노조 인천지부 부평공단지회 지회장은 “일하는 공간이나 주변에 편의시설이 얼마나 있느냐. 쉴 수 있는 공간이 뭐가 있느냐. 이런 것들이 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노동 조건과 노동 환경이 열악하니 구인과 구직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산단의 주요 문제로 언급되는 것은 열악한 노동 조건과 노동 환경을 제공할 확률이 높은 중소기업이 산단 내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비중은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 산업단지 현황 통계를 작성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도 기업 규모별 통계를 따로 내지 않아서다. 전국 산업단지 내 가동업체 수(10만 6,762개, 2022년 2분기 기준)의 1/3가량을 차지하는 경기도 소재 산업단지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97.1%가 중소기업이었다. 중소기업 기준은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른 자산총액 5,000억 원 미만 기업이다.

종사자 수 기준으로 기업 규모를 확인했을 때도 중소기업이 산단 내 차지하는 비율이 대부분일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소재 하남일반산단의 경우 가동업체 1,029개 중 고용인원 300인 이상인 기업이 7개다. 50인 이상 기업은 71개다. 각각 약 0.7%, 약 7% 수치다. 50인 미만 기업이 93%에 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이 인건비와 부대 시설 투자 비용을 줄이려고만 하지 않으면 될까. 실제 악덕하게 비용을 절감하는 곳도 있겠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지불여력, 투자여력이 부족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중소기업 하기 좋은 산업생태계인가?

T : 사실 돈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아요. 이제 세 번 일하면 두 번은 돈을 못 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기자 : 세 번 일하면 두 번은 돈을 못 받는 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T : 예를 들어서 제가 기업이에요. 외주 3건을 받아서 물건을 3개를 만들어요. 근데 두 곳은 돈을 주고 한 곳만 돈을 준다는 거예요. 돈 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수금하러 다닐 수도 없으니까. 두 곳은 그냥 포기하는 거예요. 작은 기업들은 이런 계약에서나 미숙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요. 그리고 그 물건 만들려고 예를 들어서 볼트는 여기서 사고, 뭐는 저기서 사고. 한 곳에서만 돈을 받았으니까. 자재를 산 데에 돈을 못 주죠. 빚만 쌓이고, 자재상도 망하고. 월급도 못 주고. 사장도 돈 못 가져가고.

T는 다니는 회사의 물건을 납품을 하러 다른 기업에도 오며 가며 산단 내 사정에 꽤 밝다. T는 작은 기업의 여력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가 원인으로 작동한다고 봤다. T가 보고 들은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대금 결제 지연은 중소기업이 호소하는 큰 애로사항이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여력이 적을뿐더러 보수적인 재정 운용을 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지불 및 투자 능력에 영향을 주는 다른 원인은 ‘원-하청 관계’다. 대표적인 것은 흔히 말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원-하청 관계에서 지적되는 문제다. 또 다른 문제는 생산 과정에서 주어진 대로만 생산을 해야 하는 자율성 부재다. 이를 정관 금속노련 광주전남지역본부 의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하청이 원가 절감을 위해서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는데, 원청이 하라는 대로만 생산을 해야 해요. 예를 들자면 자동차는 완성차업체에서 잘 만들지 몰라도 거기에 들어가는 차량 시트는 하청업체에서 잘 만들 거 아녜요. 그러면 시트에 구멍을 두 개 뚫으나 한 개 뚫으나 마찬가지라면 한 개 뚫어서 원가 절감할 수 있잖아요. 정해진 안전 기준만 맞추면요. 그런데 그런 게 용납이 안 된다는 거죠. 원-하청 관계 속에서. 원가를 하청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절감하고 그 절감한 부분은 하청업체의 자체 이윤으로 남겨도 되는데 그러면 충분히 원하청 상생이 가능한 방법 중 하나인데 말이죠.”

산업생태계가 대기업으로 이윤이 빨려 들어가도록 구축된 것이다. 결국 중소기업의 생존법은 인건비 따먹기로 귀결된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2차 하청업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지불 능력이 있는 편이긴 한데, 3~4차로 내려갈수록 사장 입장에서는 인건비 따먹기밖에 없는 거다. 그런 상황에선 인건비를 그렇게 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측면이 생긴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원-하청 관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승용 하남산업단지관리공단 사무국장은 “원하청 관계에서 오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산단 내 어떤 곳은 원하청 관계가 산단 나이만큼 30년 된 곳도 있다”며 “원하청이 함께 있어온 (긍정적인) 관계도 있다”고 전했다. 원청 대기업이 존재함으로써 작은 사업장들도 생겨날 수 있다는 의미다.

구인-구직 불균형과
악순환의 재생산

산단 내 구인과 구직의 불균형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앞으로 이러한 구조가 계속된 채 시간이 더욱 흐르면 구인과 구직의 불균형은 더 공고해진다. T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사람이 몰리면 (입사) 기준은 또 높아질 거예요. 터무니없는 기준들도 생길 거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악순환해 더 큰 문제를 낳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다가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 백수로 남는 사람도 생길 거고, 작은 기업들은 여전히 일할 사람은 없고 사람들은(기존 직원들은) 나이는 먹어가니까 일 못할 때가 되면 회사는 망하겠죠. 그러다 보면 작은 기업들은 사라질 거고요.”

구인과 구직 사이의 균열
이주노동자가 메운다

현재 구인과 구직의 불균형으로 만들어진 빈 공간은 이주노동자가 채우고 있다. 취재했던 대부분의 산단에서, 특히 제조업 중심의 산단에서는 이주노동자가 큰 일손이라고 이야기했다.

손정순 연구위원은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반월시화공단은 바로 문 닫고, 공장 기능이 정지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구미 산단의 한 기업주는 “외국인 노동자들 움직이는 거 보면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 어디에서 활성화 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라고도 했다. 이한옥 여수국가산업단지경영자협의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지 않다보니 일할 사람이 없어서 더 곤란을 겪고 있다”고도 전했다.

빈 공간을 채우는 이주노동자들은 산단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됐다. 그래서 기업주들은 가끔 골머리가 썩기도 한다. T는 ‘한 번에 실종’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주노동자들끼리 커뮤니티가 단단하고, SNS 발달로 소통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좀 더 돈을 주는 업체로 다같이 옮기기도 하는데, 옮기게 되면 해당 공장은 멈출 정도가 된다. 그렇다고 이주노동자들이 온다는 업체의 기업주는 마다할 처지도 안 된다. 당장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인력 양성해도
취직은 수도권에서

산업전환에 산단도 자유로울 수 없다. 디지털 전환 흐름을 따라잡아야 하고 그에 따른 사업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R&D 인력,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등이 필요하다. 산단 내 기업과 지방정부가 근접한 대학과 연계해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방식으로 산업전환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한다.

다만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 해당 인력들이 정착하지 않는 것이다. ‘키워놨더니 수도권으로 간다’고 취재원들은 표현했다. 김진영 한국산업단지공단 당진지사 지사장은 “국비를 투입하고 계약학과라고 해서 기업들이 필요한 학과를 개설하기도 하는데, 졸업한 인력들이 취업은 서울 쪽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최규연 한국산업단지공단 광주지역본부 산단혁신기획팀 팀장은 “산단을 스마트화하고 산단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지역에서 산학연계로 양성을 하면 수도권으로 떠난다. 어떤 교수들은 우리 교육기관이 무슨 인력양성소냐고 토로하기도 한다”며 “그렇다고 몇 년 이상 지역 내 기업에서 일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면 교육 자체가 진행이 안 된다”고 전했다.

한편으로 중소기업의 여력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R&D 인력에게 많은 급여를 줘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에 R&D 인력 유치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인력을 둘러싼 문제 해결하고
희망의 산단으로

결국 산단의 인력 문제는 몇 가지 안 좋은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숙련인력의 공백 현상이 발생한다. 인력이 꾸준히 쌓이지 않기 때문인데, 기업에게는 노하우 축적 문제가 발생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작업장 안전도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숙련인력이 작업장을 바라보는, 생산과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동시에 새로운 인력이 수급되지 않아 인력 구조가 고령화되기 때문에 기업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 또한 민간 일자리 창출 동력이 사라지게 돼 일할 곳이 줄어들고, 청년들이 오지 않고 똑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지방은 더 안 좋은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산업전환과 산업 고도화를 위해 양성한 인력이 지방에 남지 않기 때문에 설상가상이다.

해결의 방향은 다각도로 고민해볼 수 있다. 노동환경 개선 지원 사업, 교통비·주거비 지원 등 사회적 지원을 통한 중소기업 부담 줄이는 실질 급여 수준 인상, R&D 인력 유출 막기 위한 정착 지원 등이다. 방향에 대한 구체화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하는 게 효과적이다. T는 “대체 휴일 모든 기업 쉬어라, 그런데 5인 미만 기업은 힘드니까 적용 제외한다처럼 단순한 논리가 아니라 다 쉬되 작은 기업은 지원을 해준다든가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어쨌든 작은 기업 사장님들도 돈이 안 벌리니까 하루라도 더 일하려고 하는 거다”라고 했다. 효과적인 정책은 현장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T는 납품하러 산단을 돌아다니면서 이전보다 산단에 청년들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 자체가 귀해져 산단으로 더 흘러온 것일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그래도 산단에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건 다른 곳을 찾다 어쩔 수 없이 오는 공간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산단이 일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공간이 되려면 산단이 가진 구인과 구직의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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