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⑥] 산단 정책,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커버스토리⑥] 산단 정책,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2.10.21 00:00
  • 수정 2022.10.21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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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정책 체감도 낮고 일부 기업에 정책 지원 집중되는 등 문제
​​​​​​​‘산단 내 노동자·중소기업 의견 더 수렴해서 정책 마련해야’

산업단지 리포트

산업단지가 만들어진 지 어언 60년. 대한민국의 산업을 이끌어온 산업단지는 어쩐지 힘겨워 보인다. 수명을 다해가는 산업과 중소기업 경영난, 질 나쁜 일자리, 환경오염, 산업재해 등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낡은 것’들이 산업단지 곳곳에 먼지처럼 방치되어있다. 한국의 성장,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에 한몫해온 산업단지는 어떤 모습일까. 전국 7개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단지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커버스토리⑥ 산단 정책에 대한 노·사·민·정 시각

1960년대부터 정부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산업단지를 집중 조성했다. 기업을 집적시켜 △공장 설립 및 인프라 투자 비용 절감 △기업 간 교류·협력 증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목적에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산단은 물리적 기반시설 노후화, 업종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에 봉착했다. 과거 생산성·효율성에 주목해서 산단을 조성한 탓에 노동자·지역주민 등의 삶의 질을 고려한 산단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커졌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착공된 지 20년 이상 경과된 노후 국가·일반산업단지는 지난해 말 기준 총 462개다. 노후 산단 입주업체 수는 전국 산단 대비 79.5%(약 8만 9,990개)이고, 노후 산단 노동자 수는 전국 산단 대비 72.8%(약 165만 5,000명)이다. 여전히 다수의 기업·노동자들이 노후 산단에 존재하는 가운데, 산단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산업단지 대개조 △스마트그린산업단지 등의 정책사업이 마련·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산단 내 노동자·기업과 민간 전문가·한국산업단지공단·지자체 등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았다.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구조고도화, 산단 대개조 등
노후화 극복 위한 사업 계속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재정비해 산단 입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돼왔다. 대표적으로 2009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한 ‘산업단지 구조고도화사업’이 있다. 이는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이하 산집법)에 따라 수행되는 사업으로, 사업 대상은 착공 후 20년 이상 된 노후 산단이다.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 목적은 산업단지 내 기반시설 등 정비, 문화·복지·편의시설 및 기업 지원서비스 확충,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입주업종 전환 등이다. 주요 사업에는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 선정 및 토지 용도 규제 완화 등을 통한 산업집적시설 등의 건축사업 시행 △정부 출연을 통해 산단별 특성·여건에 따른 기업혁신 지원시설 및 기관 등이 집적화한 산단 혁신지원센터 구축 △휴폐업 공장 리모델링 통해 창업·중소기업을 위한 공공임대공장 공급 △산단 노동자를 위한 문화·복지·편의시설이 집적화된 복합문화센터 건립 등이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도 있다. 이 사업은 개별 산단 중심 재생·고도화로 인한 지역별·산업별 특성에 대한 고려 부족, 정부 부처별로 재생사업 등의 대상 산단 개별 선정에 따른 지원 분산 등의 문제의식에서 추진됐다. 따라서 지역 주도로 산단 혁신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일자리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국토교통부 등 범부처가 협업 지원해 산단의 경쟁력을 키우고 산단을 일자리 창출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은 주로 유사·동종업종이 집적된 산단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지역별로 주요 거점산단과 주변 산단·지역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거점산단은 20년 이상 된 산단 중 기업·생산·고용이 집중되고 지역경제의 거점 기능을 하는 산단이다. 주변 산단·지역은 거점산단과 가치사슬, 경제활동 네트워크 측면에서 관련성이 높은 산단, 지역 또는 시설(대학, 연구소 등) 등으로 노후 산단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주요 세부사업은 제조 혁신, 투자 촉진, 노동환경 개선, 인력 양성, 산단 인프라 개선 등의 목적에 따라 관계부처와 협의한 사업 42개가 메뉴판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메뉴판 사업은 구조고도화 사업과 스마트그린산업단지 사업 내용 등을 포괄하고 있다.

스마트그린산업단지 사업은 거점산단을 중심으로 실시 중이다. 산단을 경쟁력 있고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바꿀 목적에 따라 △기업의 생산성 제고를 추구하는 공장 스마트화 △제품 개발·제작·성능 검증 등을 지원하는 공정혁신시뮬레이션센터 구축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 △산단 내  △산단별 데이터 연계 활용 체계 마련 등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자 위한 사업 실감 안 나”
노동계 목소리 반영 과정 미흡

산단을 이끄는 핵심 경제주체는 기업이고, 기업의 생산활동을 책임지는 건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다수의 산단 노동자들은 각종 산단 지원 정책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영욱 화섬식품노조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청주지회 지회장과 서다윗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지회장은 “특별히 와 닿는 산단 정책이 없다”고 밝혔다. 청주 산단 내 LG화학 청주공장에서 약 14년째 근무 중인 우영욱 지회장은 “(산단 부지) 기업들의 이윤 추구 외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을 위한 정책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산단 내 노동자들이 정책 혜택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산단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 자체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고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조고도화 등 사업 대부분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간 산단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에서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외에 고용노동부가 빠져 있었던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산단 정책을 담당하는 주체에 고용노동부가 빠져 있다는 지적은 산단 대개조 사업 등을 통해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산단 대개조 사업 추진 부처에는 고용노동부가 포함돼 있고, 그에 따라 통근버스 운행, 기숙사 임차비 지원 등 노동환경 개선을 사업도 산단 대개조 메뉴판 사업에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기술 개발, 공정 혁신 등을 지원하는 산업부나 노후화된 산단 인프라 정비 등을 지원하는 국토부 등에 비해 고용노동부가 전담하는 사업은 비중이나 규모 면에서 작다는 문제는 상존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있어도 기업이 신청을 하지 않아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정훈 금속노련 한국알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 제공을 위한 예산 지원이 지자체에서 있었지만 회사가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며 “정부 정책에 대해 노사정이 정보를 공유하는 절차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한편, 산단 대개조 사업 등이 아직 계획·추진 단계에 있어 노동자들이 이를 잘 체감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는데, 구미 국가산단이 그 예다. 전상구 한국노총 구미지역지부 의장 겸 영도벨벳노동조합 위원장은 “산단 내 빈 곳에 공원이나 노동자 쉼터, 카페 등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일 끝나고 노동자들이 모여서 차 한 잔 먹고 같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구미 국가제1산단은 복합문화센터 공모 사업에 선정돼 여가 문화 시설 등 노동자들의 휴식 및 자기계발 등을 위한 공간을 조성 중이다. 또한 현재 구미 국가산단은 휴폐업 공장 리모델링 사업, 산단 혁신지원센터 건립 등 총 9건의 구조고도화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렇게 산단 정책사업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향후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해 사업의 실효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파악된다.

“대기업 등에 정책 혜택 집중”
일부 중소기업 정부 사업 신청조차 못 해

산단 정책 사업의 혜택이 일부 기업에만 집중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구미 산업단지 한 관계자는 “정부가 취업박람회를 열어도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중심으로 혜택이 간다”고 비판했다.

그는 “취업박람회 참가 기업에 소수의 대기업들을 포함시키면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대기업으로 쏠린다. 그럼 정부도 취업인원 몇 명 등의 실적을 내기 딱 좋은 점도 있지만, 중소기업 대표들은 ‘박람회를 가 봐야 들러리 같지만, 안 가면 답답하다’고 토로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인력이 급하게 필요한 중소기업들만을 모아 취업박람회를 여는 등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단 내 부지를 임대해 사업 중인 기업들은 정책 지원에서 배제되는 문제도 지적됐다. 손정순 연구위원은 “산단 정책의 핵심 수혜자들은 대체로 산단 내 상위레벨 사업체일 가능성이 많다”며 “임대 사업체들은 정책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반월·시화 산단 경우 주력업종인 전자산업이 경기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어, 좋을 때는 사업장을 임대했다가 나쁠 때는 문을 닫는 사업체들이 있다. 

손정순 연구위원은 “2·3차 하청업체 등 산단에서 일정 규모의 자기 사업장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해나가려는 사업체들은 산단 정책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공장을 직접 사지 않은 일부 4·5차 벤더(하청업체)들은 심하게 표현하면 일종의 뜨내기 사업장 성격이 강해, 산단 정책의 지속적인 효과를 받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중소기업들이 사업계획서 작성 등을 어려워해 정부 지원 사업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진영 한국산업단지공단 당진지사 지사장은 “일부 10~20명 미만 중소기업들은 어떤 정부 사업을 지원하고 싶어도, 사업 현황 분석이나 전략·목표, 기대효과 등을 잘 쓰지 못해 지원을 못하기도 한다”며 “공단 차원에서 사업계획서 컨설팅을 제공하고 홍보해도 미니 클러스터나 경영자협의회 등 이미 네트워크 울타리 속에 들어온 기업들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정보 불균형 문제 등이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당장 생존이 문제, 스마트공장 등 할 여력 없다”
vs “미래 성장성 중요... 기업도 성장 의지 키워야”

정부의 사업 내용이 현장의 수요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산단 지원 정책 중 스마트공장 구축·고도화 등은 일부 중소기업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사업이라는 것이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센터장은 “산단 내 영세업체들은 당장 내일 문 닫을 수도 있는데 공장을 스마트화하는 등 그런 정부 지원 사업을 진행할 여력조차 없다”고 전했다. 

구미 산업단지 한 관계자도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번 달에 제품 하나 팔아서 직원 월급 주기 바쁘다”며 “4차 산업혁명 사업 방향은 맞다고 생각하나, 중소기업들이 단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현장 사업 속도에 맞는 정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중소기업의 고민을 한국산업단지공단이나 지자체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연구개발(R&D) 경우 영세기업들은 자금을 지원받아도 역량이 부족해 이를 소화하지 못한다고 여수지역 산업단지 한 관계자는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는 알키미스트 정책 등은 (연구개발에) 실패해도 용인해 준다고도 하지만, 그간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 돈 환수하는 등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역량이 올라와 있지 않은 기업들은 R&D가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2019년부터 산업부가 추진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성공을 담보로 하는 기존 R&D 틀을 벗어나 고난도 기술 확보를 위해 중장기·대규모로 지원하는 기술개발 사업을 뜻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기보다 미래 성장성 확보를 위한 의지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업이 일정 수준의 역량이 있다면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R&D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규연 한국산업단지공단 광주지역본부 산단혁신기획팀 팀장은 “우리 같은 실무자들이 사업이 잘 되는 기업에 가서 R&D 등을 권유하면 ‘24시간 공장 돌려서 바쁜데 무슨 R&D냐’고 한다. 그런데 일감이 딱 끊겼을 때 다시 가면 ‘돈도 없는데 무슨 R&D냐’는 말이 나온다”고 밝혔다.

아울러 “몇몇 선도 기업들은 연말에 남는 돈을 다 나눠 갖는 게 아니라 잉여금으로 남기고 앞으로 뭐가 유망한지 찾아보고 개발도 하고 실패도 한다. 그런 기업들의 의지가 있을 때 정부 지원책이 붙으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며 산단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 정책만큼 기업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중소기업 의견 수렴해
현장 체감도 높이는 산단 정책 필요

산단 대개조 사업 등은 지역 주도(Bottom-up) 방식을 결합해 지역별 맞춤형 산단 정책을 추진하도록 설계됐다. 과거 정부 주도(Top-Down) 일변도의 산단 정책과 달리 지역 산단의 요구를 반영해 정책 효과성을 더욱 높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산단 내 경제주체인 노동자·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정책 수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산단 정책 수요자인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과정 없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후화된 산단을 개선하기 위한 산단 정책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 사업 계획·추진 단계에 있는 지역 또는 산단이 많은 가운데 산단 내 노동자·중소기업들의 의견을 더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 현장의 체감도를 높이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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