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⑤] “사후약방문격” 산업단지 안전 조치
[커버스토리⑤] “사후약방문격” 산업단지 안전 조치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10.21 00:00
  • 수정 2022.10.21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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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단축, 최저가 낙찰제와 다단계 하도급, 설비 노후화 등
“산업단지 사고 줄이려면 강력한 컨트롤타워 필요해”

산업단지 리포트

산업단지가 만들어진 지 어언 60년. 대한민국의 산업을 이끌어온 산업단지는 어쩐지 힘겨워 보인다. 수명을 다해가는 산업과 중소기업 경영난, 질 나쁜 일자리, 환경오염, 산업재해 등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낡은 것’들이 산업단지 곳곳에 먼지처럼 방치되어있다. 한국의 성장,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에 한몫해온 산업단지는 어떤 모습일까. 전국 7개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단지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커버스토리⑤ 산업단지에 새겨야 할 두 글자, 안전

“3일 상오(上午) 울산 한양화학(韓羊化學) 대화(大火)” 1973년 5월 3일자 매일신문 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경남 울산 석유공업단지 안에 있는 한양화학(사장 이철승) 폴리에틸렌 공장에서 프로판가스 폭발로 불이 일어나 공장 내부 시설을 크게 태우고 이날 상오 9시 30분경 겨우 진화되었다”며 “이 불로 공장 전기 과장 유교환 씨(37)를 비롯 22명이 중화상을 입었으며 그중 4명은 생명이 위독하다”고 전한다. 당시 현장은 유해 가스 유출로 접근금지령이 내려졌다. ‘빨리빨리’를 외치던 압축성장기에 터진 재해다.

지난 60년간 산단에선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했다. 화학물질, 온수, 대형 차량, 생산 설비, 밀집한 공장 등 산단은 위험의 집적지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한국산업단지공단에 요구해 받은 ‘산업단지공단 관할 64개 산단 중대재해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8월 10일까지 133건의 중대재해1)가 발생했다. 그중 55%를 차지하는 상위 5개 지역인 울산·미포(21건), 여수(19건), 구미(13건), 포항(10건), 남동(10건) 모두 생산액 기준 중화학공업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이중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한 울산과 여수 산단은 철강·석유화학 공장이 집적된 곳으로, 화재·폭발, 유해물질 누출로 대량의 인명피해와 환경오염을 일으킨 곳으로 악명이 높다. ‘화약고’, ‘공해단지’, ‘죽음의 땅’이란 표현이 붙은 이유다. 지역주민들 역시 달가워할 리 없다. 한 여수 시민은 “울산하고 여수가 화학공장 때문에 공기가 안 좋다고 알려져 있고,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힘들게 사는 친척이 있다”고 말했다.

암 발병 이유가 산업단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알긴 어렵다. 그러나 많은 사고가 발생한 탓에 여수시민들은 대체로 산업단지에 대한 걱정과 불신을 가지고 있다. 여수시가 집계한 ‘여수국가산단 입주업체 안전사고 현황’을 보면 1970년부터 모두 395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3,503명이 인명피해를 입었다. 사망자는 151명, 부상자는 281명이다. 재산 피해는 약 1,685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2019년 드러난 대기업들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사건 등은 여수산단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플랜트 건설노동자들이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부탄을 저장한 탱크를 정비 중이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화재·폭발 빈번한데 ‘빨리빨리’
안전비용 감축 막는 대책 필요

끊이지 않는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이 꼽힌다. 안전보다 비용 절감을 중시하는 고도성장기의 ‘빨리빨리’ 문화가 여전히 산업단지를 지배한다는 주장이다.

석유화학산업단지는 ‘대정비 작업’ 기간을 갖는다. 공장 가동을 중단해 공정 중에는 실시할 수 없는 정비·보수 작업을 진행한다. 현재순 화섬식품노조 노동안전실장은 “대정비 작업 기간에 사고가 제일 많이 난다”며 “안전을 무시하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공사 기간이 짧을수록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멈춘 공장을 빨리 돌려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리한 공기 단축은 건설업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최저가 낙찰제와 관련이 깊다. 공사 대금을 적게 책정하는 경쟁 입찰을 하다 보니, 하청업체에선 줄어든 비용을 아끼려고 공기를 단축하고 안전·보건 관리비를 줄이게 된다. 김대희 여수YMCA 사무총장은 “여수산단 내에서는 대정비나 설비 신·증설에서 초지일관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한다. 인건비를 줄이던가, 설비 원재료비의 삭감, 또는 일정 수준의 유지·보수비용 등 3가지 영역에서 최저비용 산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정비 작업에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참여한다. 석유화학공장을 가진 대기업에게 수주를 받은 중대형 건설사가 전문건설업체에 하청을 주면, 하청업체는 다시 작업반장을 통해 배관·기계·용접·비계·용접·도장 등 인력을 모은다. 건설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단계 하청 구조다.

김신 여수시·여수산단공동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원청과 하청 사이의 적정 임금구조를 중심에 두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신 사무국장은 “적정 임금을 주고 숙련공을 쓴다면 안전사고는 줄어들 거로 본다. 원청은 적정한 공사비 기준을 측정해 하한선을 두고, 하청은 출혈경쟁을 할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 비용을 제시해야 한다. 또 다단계 하도급 폐·개선 방안을 위해 원청과 하청 모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안전인력 감축도 지속해서 제기되는 문제다. 현재순 노안실장은 인력 감축을 올해 2월 있던 여천NCC 폭발 사고와 2013년 대림산업 폭발 사고의 공통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여천NCC 사고는 열교환기 청소작업 후 가스가 누출을 확인하던 중 설비가 폭발해 4명이 사망하고 4명 부상을 입은 재해다. 대림산업 폭발은 폴리에틸렌 원료 저장탑(silo·사일로)을 보수 중 용접 불씨가 가스와 점화돼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현재순 노안실장은 “여천NCC와 대립산업 모두 한 명의 안전관리자가 이곳저곳을 오가며 여러 보수 공정을 관리했는데,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1인 1안전작업허가가 정착되도록 원청인 대기업에서 안전인력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섬식품노조 여천NCC지회는 “회사가 무리하게 적은 인원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안전관리에 허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고, 이후 사측은 이를 인정하며 여천NCC지회와 인력 확충에 합의했다.

노후설비 특별법으로 투명성 높여야
안전사고 관리할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도

‘시설 노후화’도 산단 안전사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노동·시민단체는 ‘오래된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에서 시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앞서 강은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133건의 중대재해 중 70%(92건)가 60·70년대에 조성된 산단에서 일어났다. 20년 넘은 노후 산단2)으로 확대하면 무려 130건의 재해가 20년 이상의 산단에서 발생했다.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4~2019년간 화학사고 원인은 시설관리 미흡이 41%로 가장 많았다.3)

김대희 사무국장은 “(산업단지) 대정비 작업 주기 결정을 누가 하는가 하면 노동부나 외부 설비 전문가가 아닌, 공장의 주인인 회사가 결정한다”며 “회사는 공장의 설비가 노후화되어 총사용 범위나 사용기한을 넘길 때에야 그나마 부분 수리나 보수를 한다”고 주장했다.

‘노후설비 특별법(산업단지 노후설비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에 관한 필요성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현재순 노안실장은 “기업에서 유지·보수를 제대로 하는지 정부·지자체가 들여다볼 수 있게 하자고, 그 결과를 지역 주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신뢰성도 확보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노후시설 특별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국회에서 발의된 노후설비 특별법은 산업단지의 노후설비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정부·지자체에 부여하는 게 골자다. 먼저 산업부 장관은 5년마다 노후설비 안전과 유지·관리에 대한 기본 계획을 세우고, 연도별 시행 계획을 수립·시행할 수 있다. 또 산업부 장관에게 입주기업체의 노후설비 통합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관리권자는 지역협의체를 구성해 입주업체의 노후설비 실태를 점검하고, 점검 결과를 지역사회에 공표하도록 했다. 관리권자는 국가산단의 경우 사업부 장관, 일반산단·도시첨단산단은 시·도지사, 농공단지는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이다.

산업단지 입주업체는 산업부에서 정한 계획에 따라 노후설비에 대한 안전 관리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안전진단 전문 기관에 의뢰해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안전 관리 계획을 수립할 땐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동자 대표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또한 노후설비의 중대한 결함 등을 통보받아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노후설비의 사용을 제한·금지하거나 철거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아 공공의 위험을 발생시키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김대희 사무국장은 “폭발과 유해·독성물질을 가진 화학공장이나 제철공장 등은 사기업의 영역으로, 정부나 지자체의 안전진단은 상대적으로 사후약방문식이거나 외부의 형식적인 시각 관찰·평가에 의존한다”며 “설계도면과 운영매뉴얼에 근거한 노후설비 진단과 비파괴 등 피로도 검사, 운영 매뉴얼에 근거한 상시관리 인력의 역할, 비상상황 대응 능력 등 여러 조건에 근거한 객관적인 설비 안전과 유지·관리의 적정성을 공공에서 들여다보고 기업에 의견과 방향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노후설비 특별법은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고 했다.

노후설비 특별법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노후설비’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여수산단 관계자 A 씨는 “법으로 노후설비를 관리토록 한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규제가 발생할 텐데, ‘노후설비’를 어떻게 봐야 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노후설비를 ‘재질의 열화·부식·마모 등으로 인해 안전관리가 필요한 설비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되어있다.

A 씨가 꼽은 시급한 문제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산업단지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합동방제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여기에 참여한 다수 관련 부처·기관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일부 지역은 산업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소방청,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산업단지공단, 자치단체 등으로 구성된 합동방제센터를 운영 중이다. A 씨는 유관 기관들을 강력하게 총괄 컨트롤할 중심 기관이 있어야만 산업단지 내 사고를 줄여갈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여천NCC 폭발 사고로 고용노동부에서 특별감독을 실시한 결과 1,117건의 위법 사항이 적발됐잖아요. 굉장히 다양한 문제들이 사고에 얽혀있죠. 그런데 담당 부처에서 위법사항들에 관한 대책을 수립하고 관리·점검을 하고 있는지 기관끼리도 잘 알 수 없어요. 특정 부처에서 다른 부처로 지시를 내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고요. 사고가 났을 때 컨트롤타워가 끝까지 조치하고 마무리하는 사례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고 예방을 할 수 있을 텐데 사후 약방문처럼 뭐 하나 터지면 그때만 집중해서 조사하는 식이에요. 여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산업단지가 그런 상황입니다.”

산업단지 안전 문제,
시간 지날수록 중요해져

사고와 환경오염 등 노동자와 시민을 위협하는 안전 문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산업단지 주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각종 위험이 지역사회에서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우영욱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청주지회장은 “예전에는 청주산단이 주거지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주거지와 가까워지고 있다”며 “산업단지 노후화에 따른 사고 위험이 노동 현장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거주하시는 주거지와 연관되어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안전과 환경문제가 산단 내 업체 입주에 영향을 주기로 한다. 김영현 하남산업단지관리공단 산단관리부 부장은 “산업단지에 먼저 자리 잡고 사업을 하고 있더라도 냄새나 분진이 생기는 업종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자체장도 다 주민들이 뽑는데, 업체 입장만 받아들여서 (개발을) 하긴 어렵다”며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업종이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민원도 줄어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업단지 노후화를 문제로 꼽은 이유환 충북연구원 성장동력연구부 연구위원은 “기업의 노후장비 및 시설 등의 교체를 지원하고, 공장 외관 개선 및 산단 주변 환경 정화 등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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