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노동시간 단축 역사를 멈추지 마라
[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노동시간 단축 역사를 멈추지 마라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8.02 19:06
  • 수정 2022.08.02 1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곽상신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연구실장

“노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에 헌신했다가 고용과 노동 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 6월 23일자 브리핑 자료에 등장한 표현이다. 윤석열 새 행정부의 공식 문서에 노동운동사에서나 볼 수 있는 문장이 등장하는 것은 뜻밖이었다. ‘주 120시간’으로 대표할 만큼 노동시장 유연성에 방점을 찍는 정부지만, 이 장관은 노동운동가 출신답게 노동시간 단축 의지를 보이면서 노동정책 개선의 정당성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정작 장관이 발표한 전체 내용을 보면, 노동시간 유연성을 확대하는 내용만 주목을 받았고, 노동시간 단축 내용은 희미하게 제시됐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4가지 정책 방향을 보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 이상으로 확대 검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방안 마련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 유연근로제 활성화 △스타트업, 전문직의 근로시간 운영 애로사항 해소 지원 등이다. 4가지 중에서 3개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저축계좌제 도입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이 낮은 내용뿐이었다.

오히려 정부의 브리핑 내용에 담긴 노동시간 유연성 정책은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한 내용이다. 정부의 발표 내용은 지난 5월 11일 경총이 주최한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방안 토론회’ 발제문과 상당 부분 겹친다. 발제문에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 이상으로 확대할 것과 연구개발이나 전문직에 대한 노동시간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은 사용자 편으로 기울어진 내용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장관의 표현도 무늬만 노동시간 단축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으로 연 평균 1,915시간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뒤에서 네 번째 순위다. 장시간 노동국이라는 오명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노동시간 정책 방향을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투트랙으로 잡았다. 노동시간 단축은 1주 단위의 노동시간 상한선을 52시간으로 제도화했고 관공서 휴일에 관한 규정을 민간기업에도 확대 적용했다. 그리고 노동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던 28개 업종을 5개로 대폭 줄였다. 유연성은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를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했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도화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경직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최장시간 노동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성적표는 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이다.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노동시간 단축의 성적표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양적인 측면만 보면 최하위 성적표지만, 노동시간 단축 성과는 최상위 성적표를 자랑한다. 2010년 대비 2021년 노동시간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11.5% 단축됐다.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슬로바키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성적이다. 같은 기간 OECD 평균 단축률은 3.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워낙 장시간 노동국이기 때문에 그 성과도 크게 나타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우리나라 노동시간 단축 과정을 시계열로 보면, 뚜렷하게 우하향하는 그래프를 볼 수 있다. 반면 OECD 회원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우하향 정도가 미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 결과 OECD 회원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2010년 391시간에서 2021년에는 199시간으로 좁혀졌다. 시기별 노동시간 단축 과정을 살펴보면, 2017년부터 감소 폭이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평균 감소율은 1.12%이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평균 감소율은 1.53%다. 노동시간을 단축한 근로기준법의 개정 성과가 지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우리나라 노동시간 단축 노력의 성과가 높지만, 여전히 OECD와 격차는 크다. 지금 추세를 기준으로 OECD 평균 시간을 따라잡는 시기를 계산해보자. 지금 추세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평균 감소율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기간 평균 노동시간 감소율은 우리나라 1.10%, OECD는 0.29%다. 이 평균 감소율 값을 이용해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을 따라갈 시기를 계산했을 때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수준을 따라갈 시기는 2035년쯤 돼야 가능하다. 선진국 체면을 찾기에는 여전히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노동시간 단축 속도가 지금보다 더디게 된다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진다.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제작 :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노동시간 정책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성은 놓칠 수 없는 과제지만, 무게 중심은 당연히 노동시간 단축에 둬야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고용관계에 종속된 노동시간은 인간의 여가와 건강을 빼앗았다. 노동시간엔 이윤율을 극대화하는 자본의 속성까지 더해지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 빠져버린 것이다.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시간을 규제하지 않고 시장원리에 맡겨둔다면, 자본의 힘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켈로그 사례다. 켈로그는 1930년에 6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 3교대를 4교대로 바꾸면서 일자리를 늘렸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겪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시로 일시적으로 3교대로 환원됐고, 전쟁 후에도 경영진은 6시간으로 복귀하지 않고 8시간 노동제를 유지하도록 노동자를 설득했다. 노동조합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임금을 무기로 노동자를 분열하는 정책을 시도하면서 6시간 노동제를 무력화시켰다. 일부 노동자들은 40년 동안 6시간 노동제를 지키기 위해서 투쟁했지만, 결국 1985년에 항복하고 8시간 노동제로 환원됐다. 켈로그 사례처럼 경영진에게 노동시간은 마치 마시멜로와 같아서 한 번 길어지면 다시 줄어들기 힘들다. 노동자 역시 노동시간이 임금과 연동되면, 그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실제 켈로그 사례에서도 8시간 노동제를 선택한 노동자들 다수가 임금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은 정부의 규제로 가능해진다. 다만, 노동시간이 단축됐을 때 생기는 부작용은 보완해야 한다. 이 문제를 잘 풀어낸 사례가 독일의 노동시간 계좌제다. 하지만 독일의 노동시간 계좌제는 기준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해당하는 고정임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임금의 안정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저축하는 방식의 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한 모범 사례는 주간연속2교대로 평가할 수 있다. 주간연속2교대는 노동시간은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은 보전하는 원리를 적용하면서 노사합의로 이뤄졌다. 주간연속2교대가 시행된 지 올해 딱 10년째다. 현장에서 주간연속2교대를 경험한 노동자를 만나보면 과거 주간맞교대 시절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중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육아와 여가생활이 가능해졌다. 이를 경험한 노동자는 자신의 시간주권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주간연속2교대를 도입한 사업장의 노동시간은 연 평균 1,800시간대로 줄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노동시간 유연성으로 기울어진 정책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도 2020년까지 1,800시간대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이래서는 남은 5년간 노동시간이 얼마나 단축될지 걱정이 앞선다.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줄일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을 보자. 총 노동일수부터 따져보면 365일 중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104일, 관공서 공휴일 평균 15일, 연차휴가 15일을 빼면 노동일은 231일이다. 여기에 하루 8시간을 곱하면 1,848시간대로 계산된다. 주 40시간을 유지하고, 연차휴가를 제대로 사용할 때 가능한 목표치다. 주 40시간을 유지하고 연차휴가를 최소 20일 이상 사용하게 하면 1,700시간대까지 가능한 목표다.

이렇게 보면 그리 어려운 목표는 아니다. 연가휴가의 경우 여전히 사용일수가 짧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자료를 보면 평균 연차사용일수는 10.9일이고, 소진율은 72.4%다. 아직 연차휴가 사용실적이 낮다. 연차휴가일수를 늘리는 방법은 개별 기업 단위로 휴가일수를 계산하기보다 고용보험 가입일수를 기준으로 연차휴가일수를 산정하고, 연차휴가 사용에 따른 임금보전도 정부에서 지원하게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가 상병수당을 도입했듯이 휴가수당도 도입하면 어떨까.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휴양콘도사업과 연계하는 것도 방안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멈출 수 없는 역사다. 임금과 생산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유연성을 확보하는 길을 찾는다면, 그 길은 제대로 가는 방향일 것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