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공정위의 오지랖과 고용노동부의 멀뚱함
[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공정위의 오지랖과 고용노동부의 멀뚱함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2.06 14:46
  • 수정 2023.02.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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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상신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연구실장

지난해 연말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를 사업자단체로 판단했다. 공정위의 판단은 시대착오적이며, 지극히 정치적이라 평가한다. 시대착오적인 까닭은 국제기준에 역행하기 때문이며, 정치적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공정위 논리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사업자단체로 판단하는 것은 노동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공정위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공정위가 발표한 보도자료(2022년 12월 28일자)를 들여다보자. 공정위가 노조를 사업자단체로 판단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공정위는 건설노조를 임대사업자로 규정했다. 공정위 논리는 건설노동자가 자신이 구매한 건설기계를 건설사에 대여하고 임대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피심인의 구성원은 자기의 계산 하에 자기의 이름으로 건설사와 건설기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여 임대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대료를 받으므로 공정거래법상 사업자이다”(보도자료 2페이지) 과연 그런가? 건설노동자는 자신이 구매한 건설기계뿐 아니라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다. 단순히 건설기계를 건설사에 대여만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노동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건설노동자가 받은 보수는 임대료가 아니다. 본인 소유의 건설기계를 직접 운전해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임금 성격이 강하다. 임대료는 본인 소유의 건물, 토지, 장비를 제3자에게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 것이다. 임대료와 임금의 차이는 본인이 직접 노동과정에 참여하느냐이다. 건설노동자는 본인 소유의 기계를 직접 운전한다. 그런데 공정위는 노동자가 직접 운전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사실은 숨긴 채 건설기계를 대여하고 임대료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사업자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참고로 산업재해보상보호법에서도 직접 운전을 했느냐를 중요한 보험 보상의 기준으로 삼는다. 산재보상법 시행령 125조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데, “건설기계관리법 제3조 1항에 따라 등록된 건설기계를 직접 운전하는 사람”을 특고로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의 두 번째 판단은 건설노조와 같은 성격의 단체인 건설기계개별연명사업자협의회(건사협)가 사업자단체이기 때문에 건설노조도 사업자단체라는 논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건설기계를 몇 대 소유하느냐이다. 건사협 소속 회원은 건설기계 여러 대를 소유하면서 건설사에 대여하고 임대료를 받는 사업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건사협은 당연히 사업자단체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는 건설기계 1대를 소유하고 직접 운전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엄연히 건사협과 차별되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건사협에 소속된 회원들의 사업 형태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단지 외형적인 조직형태만을 근거로 건설노조가 건사협과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사업자단체로 규정한 것이다. 이것 역시 공정위가 건설노조를 사업자단체로 규정하기 위한 억지책이다.

공정위의 이번 판단은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연구마저 부정하는 꼴이다. 공정위는 2006년에 레미콘 운송 노동자의 사업자성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레미콘 기사의 경우도 레미콘 회사와 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도급계약이 전제하는 노무의 완성에 있어서 수급자의 자율성이 보장되는지가 중요하며,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도급계약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레미콘 기사를 독립된 사업자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레미콘 운반도급계약서에서 레미콘 기사에게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운행가능상태 유지 및 대기 의무, 직접운행 의무, 믹서트럭의 사전정비 의무, 안전운행 의무 등을 감안한다면 사업자 인정과정에서 요구받을 수 있는 독립성이 레미콘 기사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정호열 외, 2006).”

이처럼 공정위는 사업자로서 갖춰야 할 독립성 요건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근거로 레미콘 운송 노동자를 사업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공정위는 과거 연구내용은 일체 고려하지 않고 임대료 부분과 유사 사업자단체를 근거로 건설노조를 사업자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노동계를 제압하려는 정치적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공정위가 레미콘 운송 노동자를 사업자로 규정하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의 변화된 정책과 역행하는 처사다. ILO는 특고 등 새롭게 나타나는 고용형태의 노동 기본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ILO는 2018년 노동자의 종사상 지위를 새롭게 분류하는 국제종사상지위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Status in Employment, ICSE-18) 개정 결의안을 채택했다. 개정안은 플랫폼 노동이나 특고 등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고용형태를 통계조사에 포착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행 우리나라 통계도 특고 노동자를 완전하게 포착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고는 경제활동인구근로형태부가조사에서 포착하고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현행 조사는 임금노동자 중에서 특고만 포착하기 때문이다. 특고는 종업원이 없는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 통계조사에서는 종업원이 없는 자영업자 중에서 특고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는 특고 노동자 수를 정확하게 파악조차 못 하는 실정이다. 다만 학술연구에서 추정된 숫자만 존재한다. 서울과학기술대 정흥준 교수는 2018년 연구에서 종업원이 없는 자영업자 중에서 특고 노동자는 913천명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중에서 특고로 분류할 수 있는 노동자는 대략 150만 명 수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작: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약 1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특고는 임금노동자와 1인 자영업자 속성이 혼재한다는 이유로 근기법이나 노조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입차주와 같은 특고 노동자를 종속적 계약자(dependent contractor)로 분류해 이들의 권리를 보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종속적 계약자는 형식적으로는 1인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결정권을 스스로 갖지 못하고 상대방의 경제 단위에 종속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플랫폼 노동자이나 특고 등과 같은 노동자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통계청도 ILO 기준에 맞게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개정한 바 있고, 현재 시범적으로 통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통계조사가 안정화 단계에 오르게 되면, 특고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지난 정부는 특고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그나마 특고의 노동기본권을 강화하는 노력을 조금씩이나마 진전시켜 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공정위가 나서서 특고를 사용자단체로 규정해 버렸는데도 정작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멀뚱멀뚱 처다만 보는 격이다. 고용노동부는 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가. 건설노조가 불법적 행위를 했다면 형사법으로 다루면 될 일이다. 굳이 멀쩡한 노동조합을 사용자단체로 규정하는 처사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두고만 볼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ILO 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를 비준한 바 있다. ILO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ILO 협약을 위반하면 노동기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상대 교섭국으로부터 무역제재까지 당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그만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정부는 ILO가 새로 개정한 종속적 계약자에 대한 보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선진국으로서 국제규범에 발을 맞추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공권력을 동원해 일시적인 성과는 봤겠지만, 약효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개혁의 주체가 나서지 않는 개혁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노동조합은 국민경제의 한 축으로서 사회안전망과 산업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것이 이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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