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임금체계 개편, 어디로 가야하나?
[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임금체계 개편, 어디로 가야하나?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9.13 14:04
  • 수정 2022.09.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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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상신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연구실장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 정부 들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서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하고 노동시간과 임금체계에 관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은 연공급 폐지에 초점이 맞춰지는 모양새다. 연공급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왜곡한다고 진단한다. 연공급에 대한 비판은 노동계보다 경영계와 정부 쪽 목소리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연말 ‘한·일·EU 근속연수별 임금 격차’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한국이 일본이나 EU보다 임금의 연공성이 강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임금체계 개편을 설명하면서 경총에서 발간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결국 경영계나 정부는 연공급을 개편하는 데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공급을 직무급이든 직능급으로 바꾸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해소될까? 필자는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임금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단체교섭 제도에서 찾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진단한다. 1980년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후 제삼자 개입금지와 산별교섭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법을 통과시켰다. 단체교섭이 산업별 차원에서 기업별 차원으로 되었기 때문에 내부 노동시장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이런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연공급의 문제점을 꼬집어 마치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연공급에 대한 문제의식을 현장의 관점에서 풀어가고자 한다. 현장의 관점이란 이론적인 관점보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경험하고 인식하는 시각이다. 또한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현황에 대해서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이용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순서로 임금체계에 관한 통계조사인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이하 부가조사)’ 자료를 살펴본다. 부가조사는 매월 실시하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부가하여 1년에 한 번 실시한다. 조사대상은 상용근로자를 1인 이상 고용하고 있는 사업체이다. 부가조사 대상에서 정부 기관은 빠진다.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는 정부기관이 포함되지만, 부가조사에서는 조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가조사는 순수 민간 사업체가 조사대상이다. 부가조사는 2009년부터 시작되었고 임금체계를 연공급, 직무급, 직능급, 기타 등으로 구분해서 파악한다. 2014년부터는 임금체계가 없는 ‘무체계’ 항목을 포함시켰다. 오늘 소개할 자료는 무체계를 포함하기 시작한 2014년 자료부터 2021년까지 조사된 결과를 살펴하고자 한다.

부가조사를 보기 전에 가벼운 내용 하나 살펴보자. 포털사이트에서 임금체계를 구분하는 연공급, 직무급, 직능급 중 가장 많은 검색어 순위는 무엇일까?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어 순위를 살펴보면 직무급에 대한 검색어 순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21년 9월부터 최근까지 1년 동안 주간 단위로 검색어 건수를 집계한 결과 직무급 검색어가 평균 45건, 연공급은 29건 직능급은 17건으로 집계되었다. 눈에 띄는 것은 올해 6월부터 직무급을 검색한 건수가 부쩍 증가했다는 점이다. 반대로 직능급이나 연공급에 대한 검색 건수는 확 줄었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다루기 위해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시점과 맞물린다. 검색어 순위는 직무급이 대안적인 임금체계로 떠오른다는 것을 방증하는 현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싶다.

본격적으로 부가조사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현재 주소는 어떤 모습일까? 언론이나 정부에서는 연공급이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2021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사업체 164만 개 중에서 임금체계가 없다는 응답이 100만 개(61.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호봉급은 23만 개(13.7%), 직능급은 22만 개(13.6%), 직무급은 17만 개(9.4%) 수준이다. 통계조사로만 본다면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문제는 연공급이 아니라 임금체계가 없다고 응답한 100만 개 이상의 무체계 사업체로 볼 수 있다.

시계열로 보면 무체계 비중은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 2014년 48.5%에서 2021년 61.4%로 비중이 높아졌다. 직능급, 연공급 비중은 동시에 낮아지고 있다. 임금체계가 없다는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임금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부가조사는 공무원이 근무하는 정부기관을 뺀 민간부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봉급과 직능급을 적용하는 사업체 비율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호봉급의 문제는 민간부문보다는 공공부문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 공무원의 임금체계는 대표적인 호봉제이기 때문이다.

기본급체계 유형을 업종과 사업체 규모별로 살펴보자. 업종별로 보면, 호봉급의 비중이 가장 높은 업종은 금융업 68.6%였고, 가장 낮은 업종은 숙박 및 음식점업 3.6%였다. 숙박 및 음식점업은 소규모 자영업 형태가 다수이기 때문에 임금체계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체 규모에 따른 기본급체계의 유형 차이는 뚜렷하게 갈린다. 사업체 규모가 100인을 기준으로 기본급체계의 차이가 다르게 나타났다.

100인 이상 규모의 사업체는 호봉급의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뚜렷하게 높아졌다. 기본급체계는 노조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유노조 사업체의 경우 무체계 비중이 7.3%였지만, 무노조 사업체는 무체계 비중이 64.2%까지 올라갔다. 특히 유노조 사업장이면서 규모가 큰 사업장일수록 호봉급 비중이 컸다. 같은 1,000명 이상 규모 사업체라도 무노조 사업체는 호봉급 비중이 42.7%였지만, 유노조 사업체의 경우 호봉급 비중이 73.3%까지 올라갔다. 이처럼 기본급체계는 노조의 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호봉제는 규모가 큰 유노조 사업장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적어도 민간부문에서는 호봉급의 문제가 조금씩 옅어가는 흐름을 보인다.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기본급체계가 없다는 사업체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조가 없고 규모가 작은 소규모 사업체 중심으로 임금체계가 없는 곳이 확산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난다. 임금체계가 없는 사업체 노동자들은 사회적 제도의 울타리 바깥에서 임금의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임금체계 개편은 임금제도의 사각지에 존재하는 노동자를 위한 보호막을 고민하는 것이 급한 과제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와 경영계 쪽은 마치 호봉급의 문제가 우리나라 임금체계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왜곡한다. 제한된 통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로 1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 자료를 사용한다. 부가조사에서도 1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은 여전히 호봉급이 과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1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은 5만 개 남짓이다. 전체 164만 개 사업장의 5%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임금체계 개편은 호봉급만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

더구나 대안적 임금체계로 강력하게 제시되는 직무급은 연공급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도깨비방망이는 더더욱 아니다. 직무급은 90년대 말부터 대안적 임금체계로 부상했지만, 직무조사 컨설팅 회사만 좋은 일 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직무조사는 일부 순기능을 낳기도 했다. 현장에서 기업체의 임금체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수한 연공급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기업마다 연공급을 보완하여 진화한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직무와 숙련 차이를 반영하는 수당이 만들어졌다. 또한 호봉급을 운영하더라도 직급이나 직군마다 차이를 두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직무조사 컨설팅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연공급 중심이면서 직무급과 직능급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임금체계가 복잡해지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임금체계 개편은 임금제도가 발전한 역사적인 배경 전반을 들여다봐야 한다. 또한 임금체계 개편은 단체교섭제도와 교육훈련제도 등 3개의 제도가 패키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확고한 생각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기업 수준의 인사관리적 관점으로만 접근한다면, 그것은 노동비용만 줄이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는 노동자의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생각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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