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최저임금 결정은 왜 비과학적인가
[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최저임금 결정은 왜 비과학적인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8.03 09:59
  • 수정 2023.08.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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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상신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연구실장

내년 적용될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올해 대비 2.5% 인상된 9,860원이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240원, 월급은 5만 160원 인상된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상 폭이다. 올해 상반기 물가만 하더라도 평균 3.97%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물가를 고려해 올해 물가상승률이 3%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내년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게 돼 실질임금은 감소하게 된다. 당분간 노동자의 삶은 더 팍팍할 것이 뻔하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도 여느 해와 다르지 않았다. 과학에 근거하지 못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결정은 여전히 이해관계자들의 힘으로 결정되는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그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정부는 노동계 위원이 구속되었다는 이유로 해촉하고 대체 위원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금액도 올해는 사용자 위원이 제시한 안을 표결로 처리했다. 공익위원 안으로 제시했던 9,920원보다 낮은 금액으로 최종 금액이 결정됐다. 공익위원이 제시했던 9,920원을 민주노총 소속 위원들이 거부하자, 근로자 위원이 제시한 금액과 사용자 위원 쪽이 제시한 금액을 놓고 최종 표결을 붙였다. 사용자 위원 쪽은 공익위원 조정안보다 낮은 9,860원을 제시했고 그 안으로 표결이 통과됐다. 민주노총 쪽이 공익위원이 제시한 조정안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조정안보다 낮은 금액을 최종안으로 제시한 사용자의 심보가 고약하다. 민주노총이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그랬을까. 시급을 60원이나 에누리한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매년 그렇듯, 올해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기준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법정기준은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에 명시돼 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고 정한다. 그러나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요소는 배제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매년 공식적으로 비혼단신근로자 생계비 실태조사와 최저임금 적용효과 실태조사 등을 보고받는다.

보고서는 요식행위처럼 보인다. 비혼단신근로자 생계비 실태조사 결과가 최저임금 결정에 얼마나 반영됐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매년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비혼단신근로자 생계비보다 낮다. 비혼단신근로자는 결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전 연령층의 노동자를 의미한다. 통계의 신뢰성도 그다지 높지 못하다. 생계비가 전년보다 낮은 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7년 생계비는 209만 원이었다. 그런데 2018년에는 202만 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심지어 3년이 경과한 시점인 2020년 생계비도 208만 원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보였다. 최저임금위윈회가 발표하는 비혼단신근로자 생계비 통계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기반으로 작성한다. 거기서 비혼단신근로자를 뽑아서 생계비를 계산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3년이 지나도 생계비가 오히려 떨어졌다는 결과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저임금과 비혼단신근로자 생계비 간의 격차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상승 폭이 생계비 상승 폭보다 크기 때문에 차이가 줄어드는 것이다.

제작: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임금수준을 정할 때 절대적인 기준과 상대적인 기준을 고려할 수 있다. 최저임금법에서 규정하는 생계비와 유사근로자의 임금 요소는 절대적인 기준과 상대적인 기준을 동시에 고려하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생계비 통계는 가계동향조사와 가계금융복지조사 등 2개가 대표적이다. 가계동향조사는 1950년부터 시작된 통계로 역사가 길다.

가계는 한 공간에서 생계를 같이 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가구의 소득과 지출의 변화추이를 통해 국민소득의 재분배 등을 계산할 수 있다. 가계동향조사는 근로자가구와 비근로자가구를 구분하기에 근로자의 지출자료를 확보할 수 있어 최저임금위원회가 이용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2006년 시작한 가계자산조사를 기반으로 2012년부터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가계동향조사와 달리 가구의 자산, 부채 등 금융 부문까지 파악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가구의 개념을 가계동향조사와 다르게 정한다. 한 공간에 같이 거주하지 않더라도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라면 하나의 가구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대학생 자녀가 다른 지역에서 유학한다면 가계동향조사에서는 자녀가 빠지고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포함된다. 실질적인 경제 공동체 단위를 조사대상으로 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가 가구의 소득, 자산, 부채 등 금융 부문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가계동향조사는 가계의 지출부문을 구체적으로 조사한다. 그래서 가계금융복지조사는 소득 파악이 중요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준중위임금을 정하는데 활용되고, 가계동향조사는 최저임금을 정하는 생계비로 활용된다.

임금의 상대적 기준으로 삼을만한 통계는 사업체노동력조사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가 있다. 사업체노동력조사는 사업체에 소속 상용직의 임금과 노동시간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집단변수인 산업과 규모, 지역별로 임금과 노동시간을 비교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는 사업체에 속한 개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다. 개인을 조사하기 때문에 성별, 고용형태별, 직종, 나이 등 개인 속성별로 임금 및 근로시간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제작: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임금을 정하는 절대적 지표와 상대적 지표를 활용해 적정임금을 파악할 수 있을까 싶어 몇 가지 자료를 가지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식비로 대표되는 자장면과 노동자의 평균임금 비율을 시계열로 살펴보면 임금수준의 변화추이를 파악할 수 있겠다 싶어 자료를 찾았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격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2020년 가격 기준 연도별 가격의 상대가격을 계산해 지수로 환산한 값만 제공한다. 그러니 20년 전의 자장면 가격과 임금을 비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행정안전부에서는 지역물가정보를 제공한다.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가격정보는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다. 공공요금, 외식비, 개인서비스, 농축산물 가격을 공개한다. 지역물가정에서 제공되는 물품정보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제공하는 품목별 물가지수를 활용해 연도별 물품가격을 계산할 수 있다. 그 결과를 보면 <표2>와 같다.

제작: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이 표를 이용해 자장면 가격과 임금과의 비율을 계산했더니 제법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공공요금과 외식비가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08년까지는 격차가 벌어졌는데, 이 시기를 정점으로 그 이후부터는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장면 가격이 오른 비율과 임금이 상승한 비율이 같이 움직인 것이다. 2008년 이전까지는 임금인상 수준이 물가상승률보다 높았지만, 그 이후로는 임금인상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임금인상률이 물가인상률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작: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가계지출과 평균임금의 관계도 분석했더니 역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도시근로자 2인 이상 가구의 가계지출과 노동자의 평균임금과의 비율을 계산했더니 2015년까지는 격차가 좁혀지다가 그 이후로는 80%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현상은 소득이 증가한 만큼 지출로 빠져나가는 비율이 매년 같은 수준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제작: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준중위소득은 노동자와 국민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그럼에도 이번에 정해진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도 과학적이지 못했다. 정부가 공을 들여서 생산하는 통계조사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휘둘려 결국 권력의 크기로 결정된다면, 정책의 신뢰성은 상실할 수밖에 없다.

임금의 상대적인 비교에서도 살펴보았듯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물가인상률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을 늘릴 수 없다는 결론이다.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부를 증진할 수 없다. 임금과학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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