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기업별 교섭체제 해체 없는 직무급제는 허상이다
[곽상신의 통계로 읽는 노동] 기업별 교섭체제 해체 없는 직무급제는 허상이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1.04 08:32
  • 수정 2023.01.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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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상신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연구실장

느닷없이 노동개혁이 정치권에 태풍으로 부상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힘으로 누른 정부가 노조의 조합비까지 들여다보겠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급기야 노동개혁을 3대 개혁과제로 꼽았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권고문을 제시한 후로 파죽지세로 노동계를 밀어붙인다.

연구회가 제시한 권고문은 개혁대상도 잘못 짚었고, 개혁 방향도 엉뚱한 데가 많다. 연구회가 진단한 문제 몇 가지에 오류를 짚고자 한다. 먼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진단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이중구조라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이중구조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책임은 정부와 기업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병을 일으킨 균을 명확히 밝혀 드러내지 않으면, 처방전도 엉뚱한 사람을 처방하게 될 수 있다.

권고문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선택받은 소수 근로자는 내부노동시장과 노동조합에 의해 두텁게 보호받지만, 배제된 다수는 불안한 고용지위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책임은 전혀 묻지 않고 있다. 연구회가 발표한 권고문을 보면, 책임이 노조에게 있는 듯한 뉘앙스로 읽힌다. 기업 내부노동시장이 형성된 원인은 분명히 산별노조를 금지한 전두환 정부에 그 책임을 1차로 물어야 한다.

파견법을 도입한 것도 정부이다. 정부는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확대하면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기업 측은 어떠한가. 호봉제를 도입한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가. 연공급은 산업화 초기 기업의 경영전략이었다. 연공급이 발달했던 일본의 사례를 보면, 오야카타라는 현장감독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경영자들은 기간공을 훈련시켰다. 기간공에게 장기고용을 보장하고 연공임금을 지급했다. 일본은 산업화 초기에 오야카타를 통해 숙련공을 양성했다. 그런데 오아카타가 점차 특권적인 지위를 갖게 되면서 경영자들은 오야카타를 대체할 기간공을 양성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가 1900년대 초기의 일이다.

기업은 숙련된 노동자의 이직을 막기 위해서 내부 노동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연공임금, 기업복지, 내부 승진 사다리 등을 제공하게 되었다(Thelen, Kathleen, 2004 참조). 우리나라는 일본 경영자의 전략을 그대로 이식받았다. 80년대 중반부터 3저 호황으로 기업의 생산규모가 커지면서 노동력 수요도 커지게 된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임금이 더 높은 일자리로 이동이 늘어나게 된다. 기업 경영자들은 노동력 이동을 막기 위해 호봉제를 도입하고 상여금을 제시하는 등 노동자의 장기고용을 유인했다.

그러다가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1998년 파견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파견법이 도입되자 기업 내부노동시장에 사내하청이 대거 유입된다. 사내하청은 노동조합이 조직될 위험이 적고 인건비도 싸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정부는 파견노동자의 확산을 막지 못했고,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도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한 레버리지로 삼았다. 이 부분만큼은 노조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노동시장 양극화를 일으킨 주범은 정부와 기업에 있다는 점은 극명하다. 그 점을 지적하지 않고 아무 대책도 제시하지 않은 연구회 권고문은 비겁하다.

다음으로 호봉제 이야기를 해보자. 연구회는 권고문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유노조 대기업 사업장에 종사하는 정규직 남성이 임금이 높은 이유는 연공 축적이 가능한 유일한 계층이기 때문입니다. 연공을 유지하기 어려운 계층 즉, 비정규직 중소기업, 여성 등의 경우 내부노동시장에 올라탈 수 없습니다. 고연차 노동력이 다수인 대기업의 경우 하청협력사나 소비자들에게 임금비용을 전가하기도 합니다.” 호봉제가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차별하는 결정적인 요인일까. 이론적으로 그럴싸한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틀린 말이다. 왜 틀렸는지 사례를 통해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2018년 금속노조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금속노조 연구진은 완성차 집단 2개사, 1차벤더 3개사, 2차벤더 2개사 등 3개 집단 7개사의 임금실태를 조사했다. 임금정보는 회사 측에서 제공한 자료이기 때문에 신뢰도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임금정보는 기본급, 제수당, 연장수당, 상여금, 성과급 복리후생 등 임금항목별로 금액이 제시돼 있다. 임금항목별로 원하청 간의 임금격차 수준을 비교하기 위해 변이계수를 사용한 결과를 도출했다.

분석결과 변이계수 값이 가장 작은 임금은 기본급이었다. 기본급의 변이계수는 .15 값을 보였다. 변이계수가 가장 큰 임금항목은 성과급이었는데 2.43 값이었다. 변이계수 값이 클수록 원하청 간 임금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이계수를 사용한 이유는 임금항목마다 금액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하청 간 임금격차는 표준편차를 이용해서 비교할 수 있는데, 임금항목마다 금액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표준편차만으로는 임금항목별로 임금격차의 정도를 판단하기 어렵다. 임금항목별 격차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기준이 필요한데 변이계수를 이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변이계수는 표준편차를 평균으로 나눈 값이다. 각 임금항목의 표준편차가 같다고 했을 때 평균금액이 큰 임금항목이라면 표준편차는 그 의미가 작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평균임금이 큰 임금항목은 표준편차의 의미가 크게 해석될 것이다.

[표1]에서 기본급의 표준편차는 25만 원이었고 제수당의 표준편차는 14만 원이었다. 표준편차로만 보면, 제수당의 원하청 간 임금격차는 작다. 그런데 기본급의 평균은 168만 원이었고, 제수당의 평균은 32만 원이었다. 평균이 32만 원인데 표준편차가 14만 원이라면 원하청 간 제수당의 임금격차는 크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작: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7개사의 임금항목 중에서 기본급의 변이계수 값이 왜 가장 작을까. 7개사 모두 기본급은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기본급 차이는 크지 않았다. 더구나 근속연수 변수까지 고려하면 그 차이는 더 작다고 볼 수 있다. 원청사 A1사는 평균 근속연수가 22년이나 되는데 하청사 C6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6년에 불과했다. 같은 근속으로 비교하게 되면 기본급의 임금차이는 더 작을 것이다. 기본급의 변이계수가 작은 이유는 기본급을 낮게 책정한 기업의 전략적 선택 때문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본급을 작게 해서 연장근로수당의 부담을 낮추려고 했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기본급이 낮기 때문에 근속연수가 오래되더라도 임금 차이는 크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호봉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벌리게 한다는 진단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호봉제가 비판받는 부분은 기업 내부노동시장을 고착화했다는 데 있다. 그러면 직무급은 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금속노조 연구에서 보듯이 연공급이 기업내부 노동시장에서 근속연수 간 임금격차는 발생시켰을지언정, 원하청 간 임금격차를 발생시킨 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역설적이지 않는가. 연공급 반대론자들이 그토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의 원흉을 연공에 있다고 주장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연공급이 오히려 원하청 간 임금이 평균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노조가 임금투쟁을 하면서 쌓은 결과물이다. 노동조합은 기업별 교섭체제 하에서도 기본급을 평준화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했다. 대신 기업별 노조는 기본급 외 제수당, 상여금, 성과급을 올리면서 원하청 간 임금격차를 벌렸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본급은 사회적으로 눈치를 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본급은 사회적으로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수당, 상여금 성과급은 철저히 기업별 교섭체제 하에서 작동했다. 산별노조도 기본급 외 다른 항목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 사이 기업별 교섭체제 하에서 새로운 수당이 생겨나고, 기업의 성과에 따라 성과급 격차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는 기업별 교섭체제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기업별 교섭체제가 존속하는 한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직무급을 백날 떠들어도 직무급이 기업별 교섭체제 안에서 발현된다면 그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연구회는 교섭체제는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몰라서 그랬을까. 알면서도 그 부분은 말하지 못한 것이라고 의심해본다. 그런 점에서 연구회는 비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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