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⑧]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몇 개의 방향성
[커버스토리⑧]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몇 개의 방향성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12.20 08:43
  • 수정 2022.12.2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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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연금개혁, 어디로 가야 하나

내년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앞두고 개혁을 향한 움직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올해 국회에 설치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11월 16일 전체회의에서 16명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 일반 국민 500여 명이 참여하는 국민의견수렴 기구 등을 통해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와혁신은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2030 및 5060 노동자, 청년과 노년을 각각 대표하는 시민단체,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소속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 인터뷰를 통해 국민연금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아울러 양재진, 정세은, 민기채, 제갈현숙, 오종헌, 이다미 등 연금 전문가 6명의 기고를 통해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여러 생각을 모았다.

커버스토리⑧ 기고_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

지금까지 4차례의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수행됐는데 추계 이후에 언론이나 국민의 관심은 예외 없이 기금고갈론, 미래세대 부담론에 맞추어져 왔다. 머지않아 기금이 고갈될 것이고 기금이 고갈된 이후에는 은퇴 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미래세대가 매우 무거운 부담을 질 것이라는 진단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우려는 자연스럽게 기금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하향 조정하고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개혁을 낳았다. 그러다 보니 국민연금의 목표인 적정한 노후소득보장 역할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전개됐다.

제대로 된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민간연금처럼 바라보는 식으로, 즉 수입과 지출을 결정하는 제도 밖 요인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므로 수입과 지출을 맞추기만 하는 식으로, 보험료를 늘리거나 급여를 줄이는 식으로 개혁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보장을 낮추고 보험료를 올리는 단순한 대응으로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해 제대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은퇴 이후에도 국가 보호가 약하여 각자도생해야 한다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할 것인가? 은퇴 이후 부모의 노후를 여전히 자녀가 적지 않게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안심하고 공적연금에 가입하려 할 것인가?

즉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 혹은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국민연금이 충분한 노후소득 보장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들에 더해 국민연금이 불충분한 경우 양극화와 영리화 현상이 심각한 민간연금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혹은 민간연금에 의존할 수 없는 빈곤 고령층은 어차피 공공부조로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국민연금 지출을 통제하기 위해 보장성을 약하게 설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연금은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심할만한 노후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저출산, 고령화와 상관없이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다. 고령 인구가 많다고 부양을 포기할 수 없고 어느 주머니에서 나가든 결국 국민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감당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개혁 과정에서 이것이 간과된다면 실패한 개혁이 될 것이다.1)

충분한 보장성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보다 기금소진 시점은 더 빨라질 수 있다. 기금소진의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보험료율을 크게 올려서 기금소진 시기가 빨라지지 않도록, 혹은 더 뒤로 가도록 해야 할 것인가? 공적연금을 운용하는 많은 국가들이 대규모의 기금을 운용하지 않고 부과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도 기금을 소진하는 미래를 맞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부과식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인구구조가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장하기 전까지는 완충적 역할을 수행할 정도로 기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틀에서 보자면 기금문제는 소진 시점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할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장기에 걸친 기금 규모의 궤적을 설계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당분간 기금을 일정 수준에서 유지하고 운용하더라도 그 규모가 과도하게 대규모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금을 대규모로 축적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후세대가 현세대를 부양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축을 많이 해서 후세대에게 부담을 끼치지 말고 스스로의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당장 보험료를 대폭 올려 더욱 대규모인 기금을 쌓는 것은 국민연금 가입에 대한 저항을 야기할 뿐 아니라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고용에 부정적인 충격을 미쳐 성장을 둔화시키고 그로 인해 연금재정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유발할 것이다. 기금을 쌓으면 그것이 투자를 늘려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르지만 현재 국민연금은 공격적으로 해외자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게다가 기금 규모가 대규모가 될수록 국가경제 불안정 요인이 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장성과 함께 보험료를 서서히 올려서 가계와 기업에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기금을 과도하게 높지 않은 수준에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한다면 과도한 강제적 해외투자를 피할 수 있고 거대 기금으로 인한 불안정성 문제도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략을 선택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결국은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양인구가 급감하는 미래에도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해서 급여를 지급하는 식으로 현재의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평균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았던 과거에는 합리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마치 이제는 고령자 부양도 국가 전체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과도해지지 않게 상한선을 두고 그로 인해 부족해지는 국민연금 재정은 국고로 지원하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많은 국가들이 공적연금에 대거 국고를 투입하고 있고 우리의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순수한 보험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국고 투입은 정당하다. 이번에 연금개혁을 논의할 때에 이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보장성을 더 올리고 보험료를 서서히 올리는 것은 현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후세대보다 낮게 유지하겠다는 것이므로 세대간 형평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현세대가 적립한 기금의 수익률이 더욱 높았다는 점, 현세대는 부모 부양과 자신의 노후 준비를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 후세대의 높은 생산성은 일부 현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현세대의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율은 정당화될 수 있다. 단순한 형평성 논리로 당장 보험료를 대폭 올린다면 그로 인한 충격은 현세대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고 있는 그 자녀세대, 즉 후세대에도 직접 가해진다. 현세대와 후세대가 결국 경제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정확히 인식한다면 현세대에 대한 당장의 보험료 대폭 인상과 대규모의 기금적립이 바람직한 대안은 아닌 것이다.

1) 한편 왜 기초연금이 아니고 국민연금인가도 논쟁거리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역진적이라는 이유로 국고를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내는 사람 받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한 보장성을 담보할 정도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 국민연금이 역진적이라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며 노동시장 이중화와 관련된 문제이지 국민연금 설계 자체가 역진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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