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⑧]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연금개혁은 가능한가
[커버스토리⑧]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연금개혁은 가능한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12.20 08:46
  • 수정 2022.12.2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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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 센터장

연금개혁, 어디로 가야 하나

내년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앞두고 개혁을 향한 움직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올해 국회에 설치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11월 16일 전체회의에서 16명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 일반 국민 500여 명이 참여하는 국민의견수렴 기구 등을 통해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참여와혁신은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2030 및 5060 노동자, 청년과 노년을 각각 대표하는 시민단체,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소속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 인터뷰를 통해 국민연금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아울러 양재진, 정세은, 민기채, 제갈현숙, 오종헌, 이다미 등 연금 전문가 6명의 기고를 통해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여러 생각을 모았다.

커버스토리⑧ 기고_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 센터장

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 센터장
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 센터장

그간의 복지국가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일국의 사회정책이 달성해야 할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계급갈등의 완화였다. 최근으로 오면서 계급갈등은 점차 완화되고 있는 것에 반해 세대 간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세대 간 형평성(generational equity)’을 두고 갈등이 빚어지며 이것이 극대화되는 지점이 바로 연금개혁이다. 2014년 기초연금이 도입된 이후 급여 수준은 계속 높아져 현 정부에서는 최대 40만 원까지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때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초연금 인상이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공적 이전 소득의 가장 큰 수혜자 같기도 하다. 단순히 수치만을 보면 아동·청년과 비교할 때 노인에게 훨씬 더 큰 규모의 공적 자원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에서 나타나는 세대갈등이 한국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서구 사회정책의 가장 큰 과제는 급속도로 팽창한 연금재정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과거 경험하지 못한 인구구조 변화에 봉착하면서 공적연금의 보험료율을 높이고 급여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연금개혁이 실시됐다. 이 과정에서 인구 고령화를 공적연금에 최대한 ‘중립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장치들을 모색했다. 인구 고령화의 영향을 모든 세대가 ‘덜’ 불형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다.

80년대 중반, 머스그레이브(Musgrave)는 인구 고령화라는 연속적인 코호트(cohort) 변화에 중립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고정된 상대적 지위 모형(FRP)’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퇴직자(수급자) 1인당 연금급여 대비 노동자(기여자) 소득비율이 고정되도록 기여와 급여 관계를 자동적으로 설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단 그 비율이 정해지면 인구 변화와 그에 따른 생산성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사회보장세율, 즉 연금보험료율이 주기적으로 조정된다. 연금급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FRP에 기초하여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했으며, 그 예로 인구학적 요소(demographic factor) 도입을 들 수 있다.

세대 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세대 간 연대가 반영된다는 측면에서 FRP 방식은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를 바로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한 서구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부분적립방식으로 거대 규모의 적립기금이 존재한다. 또한 노령층과 근로연령층 비율의 불균형이 심각하고 앞으로 둘의 차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인구 고령화를 연금산식의 중립적 요소로 만들기에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물론 국민연금이 성숙하고 출산율이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에는 자동안정화장치를 적극 고려할 수 있다. 원리상으로는 세대 형평성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지만, 아직 국민연금과 이를 둘러싼 여러 제도들의 장기적 방향성에 관한 합의가 부재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2018) 당시 국민연금의 지급보장 명문화 요구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급보장 명문화의 가능 여부를 떠나 사회보험 관계로 약속된 급여가 지급되지 못할 것을 걱정할 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심각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대 형평성을 완벽하게 고려한 연금개혁은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형평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합계 출산율이 0.8 아래로 떨어진 현 상황은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인구 고령화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경고하는 지표일 수 있다.

따라서 인구 고령화로 인해 후세대가 갖게 될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연금제도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정책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 안정적으로 생애 후반을 누리기 위한 연금개혁을 가능케 하려면 세대의 관점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벌써 첫 회의가 있었다. 그 외에도 연금개혁을 다룰 다양한 거버넌스들이 속속 구성되고 있다. 이번 연금개혁 논의에서는 비록 이상적일 수 있지만 ‘모두에게(universal), 적정한 수준의 급여를(adequate), 지속가능하게(sustainable)’ 보장할 수 있는 노후소득보장체계 마련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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