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노동 국감] 한순간이더라도, 노동자에게 국감은 절박한 기회
[2023 노동 국감] 한순간이더라도, 노동자에게 국감은 절박한 기회
  • 정다솜·박완순·백승윤·강한님·임혜진·김광수 기자
  • 승인 2023.10.12 15:03
  • 수정 2023.10.16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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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수개월간 절박하게 준비하는 노동자들···
정책·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사회적 의제화로 효능감 느껴
노동 뺀 노동개혁, 노사 자치 흔든 노동부 견제 등 주요 의제로 꼽아

국정감사는 행정부가 수행하는 국정 전반을 감시·견제할 수 있는 입법부 국회의 강력한 권한이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말마따나 정부 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숨겨진 문제들이 국정감사에서 쏟아지고, 이는 대개 정책·제도 개선으로 이어진다. 

정책·제도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해도 소외되거나 계속 미뤄졌지만 누군가에겐 절박한 사회적 갈등이 국정감사장에서 떠오르면,  해당 이슈는 여론의 관심을 받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의원이나 정당의 이슈 파이팅을 위한 활용에 그칠지라도, 노동조합들이 국정감사를 수개월간 절박하게 준비하는 이유다.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 막이 올랐다. 국회는 10일부터 24일간 791개 기관을 감사한다. 올해도 노동조합들은 산적한 현안을 국정감사장 안으로 넣기 위해 힘을 쏟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다뤄지지 못하더라도, 노동조합들이 올해 준비한 의제들은 무엇이었는지 <참여와혁신>이 취재했다. 아울러 혼란한 정치지형 속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올해 국정감사에서 노동 이슈는 충실하게 다뤄지기 어려울 거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국정감사는 어떤 의미인지 짚어봤다. 

국회의사당 전경 ⓒ 참여와혁신 포토DB
국회의사당 전경 ⓒ 참여와혁신 포토DB

노동 뺀 노동개혁에 
노사자치 흔드는 노동부 견제

윤석열 대통령표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노사 법치주의 확립’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동시간 개편 추진을 시작으로 임금체계 개편,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5대 불법·부조리(포괄임금 오남용·임금체불·부당노동행위·직장내괴롭힘·불공정 채용) 근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이 ‘반노동 정책’임이 낱낱이 드러나길 바라고 있다. 임은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 실장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회는 반노동 공세를 향한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실체와 문제점을 낱낱이 밝히고 위헌적 시행령 정치나 노조 갈라치기, 노조 때리기, 막무가내식 횡포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양대 노총은 주69시간 노동이 가능한 노동시간 개편안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고용노동부에 관련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개편에 관한 의견 수렴을 위해 지난 6~9월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그룹별 심층면접조사 등을 했는데,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정기국회에 재입법안을 제출하겠다던 고용노동부의 계획도 미뤄지고 있다.

정부의 설문조사가 명분쌓기용 시간끌기가 아닌지 설문조사에 대한 신뢰성, 공정성에 노동계의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양대 노총은 해당 설문조사지 등에 대한 국회의 제출 요구도 거부하며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불투명한 정책 추진 과정이 지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우려하는 지점들이 국정감사장에서 지적되길 노동조합들은 바라고 있다. 정부의 포괄임금제 폐지 추진 관련해 포괄임금약정을 금지할 경우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이 정부에 있는지 등이 그 예다. 

노정관계 대립의 중심에 있는 노조회계공시 의무화 조치가 정부의 직권 남용은 아닌지, 노사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정부의 노조운영 개입은 ILO 기본협약(행정관청의 노조 자주적 운영권리 간섭 제한) 위반이 아닌지 등도 양대 노총의 국정감사 의제에 올랐다.

노동을 뺀 사회적 대화와 정부 주도 공론화에 대한 문제제기도 필요하다. 김범진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각종 정부 위원회나 정책 토론회 등에 한 번도 초대받아 본 적이 없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공론장에는 참석해 싸우기라도 했는데 현재는 그것조차 안 되고 있다”고 했다. 사회보험 관련 보건복지부 정부위원회 양대 노총 배제, 경사노위의 노사 중심성 원칙 외면과 전문가 중심의 연구회와 자문단 운영 등에 대한 책임 추궁도 이어지길 노동계는 바라고 있다.

이 외에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 폐기 △산별노조 등 초기업노조 운동 보장 △공공부문 노동조합 단체협약 시정명령 남발 △근로자 복지관 운영 지침 편파적 적용 △노동단체 지원금 지급 임의 운영 △노동·안전·보건(과로성 재해 인정 기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등) 이슈 △최저임금(위원회 공정성·독립성, 통상임금 산입범위 차이에 의한 임금체계 왜곡) 등 주요 노동 이슈들이 노동계의 국정감사 의제로 꼽혔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양대노총 공대위 ILO 추가제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양대노총 공대위 ILO 추가제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산업별 현안도 산적해

산업별 현안으로 들어가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 원칙 적용) 위반 지적을 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공공노동자들은 정부가 각종 지침·경영평가 등을 통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침해하고 노사자치주의를 훼손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공공노동자들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ILO 기본협약을 위반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지 듣고자 한다. 

금융노동자들은 홍콩 H지수 급락으로 인한 주가연계증권(ELS)발 자금난 우려 현안질의, 정부의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전면 재검토,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추진 반대, 노동인권 탄압으로 논란이 된 OK금융그룹 이슈 등을 국정감사 의제 리스트에 올렸다. 

공무원들은 △공무원·교원의 노동·정치기본권 보장 △공무원보수위원회 법제화 △공무원 임금 현실화 계획(3개년, 5개년) 공약화 추진 등이 국정감사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속노조는 특혜만 누리고 도망치는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 문제, 조선업 E-7 비자 최저임금 적용 문제, 포스코지회 조직형태 변경 부당성, 방위산업 노동쟁의행위 금지 문제점 등을 꼽았다. 

금속노련은 포스코 하청노조의 농성을 지원하던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을 과도하게 진압한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해 국회가 따져 물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 이 사태를 촉발한 포스코 하청업체 포운(옛 성암산업) 노동자들이 2020년 경사노위 중재로 사측과 맺은 사회적 합의가 단체협약이 아니라고 본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의 판단 과정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길 바라고 있다. 박옥경 금속노련 광양기계지역금속운수산업노조(옛 성암산업노조) 위원장은 “2020년 사회적 합의를 단체협약으로 봤던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이 단체협약이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이 해석 차이로 인해 노사 갈등이 깊어졌다”며 “이른바 올해 ‘포운 사태’의 시발점이 된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553억 원대에 이르는 대유위니아그룹의 체불임금 사태도 금속노련의 핵심 국정감사 의제다. 

서비스연맹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클렌징, 프레시백 수거 제도 등의 사회적 합의 및 생활물류법 위반 가능성, 코스트코 하남점 노동자 사망 관련한 노동환경 문제, 학교급식 노동자 폐암 산업재해 대책 부족 문제 등을 국정감사 우선 순위 의제로 올렸다.

식품노련은 CJ제일제당의 교섭해태 등 부당노동행위, 프랑스 다국적 주류기업 한국법인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오래된 노조탄압과 노조파괴 혐의 등을 국정감사 의제로 내놨다. 

보건의료노조는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공공의료 강화, 보건의료인력 확충 약속 등이 담긴 ‘9.2 노정합의’ 이행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 위 시계방향) 박옥경 광양기계지역금속운수산업노조 위원장,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지부 조직국장,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노조 위원장
(왼쪽 위 시계방향) 박옥경 광양기계지역금속운수산업노조 위원장, 최윤미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지부 조직국장,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노조 위원장

한순간의 질의라도, 
노동자에겐 금쪽같은 국감의 가능성

이전에 국정감사 증인·참고인으로 출석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다. 심지어 어떤 변화도 없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데도 외면받아 온 노동 이슈가 국정감사를 거친 이후 사회적 관심 속에서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풀려가고 있다는 효능감을 대부분 느끼고 있다. 2021년, 2022년 국정감사에 증인·참고인으로 출석한 노동자들과 이들이 속한 노동조합의 기억은 이렇다. 

“신의 한 수··· 웹툰작가 노동환경 사회적 의제돼”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웹툰 플랫폼이 매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웹툰작가와 공정하게 수익 배분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후로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련 논의를 하는 웹툰상생협의체를 만들었다”며 “아직도 매출 정보 공개가 불충분하게 되고 있지만, 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업계에 확산되고 정보 공개하는 업체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월 웹소설 공모전 진행 후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가져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과징금 5억 4,000만 원 처분과 불공정 계약 체결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며 “웹툰작가노조의 국정감사 출석은 신의 한 수였다. 국정감사가 비록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웹툰작가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개선 과제가 드러났다. 웹툰작가의 노동환경이 사회적인 의제가 됐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중재 역할 이끌어내”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은 “사측이 단체협약을 위반하고 회사를 청산하면서 대량해고가 발생했는데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정감사는 외투기업인 회사의 일방적인 청산 발표가 부당하다는 사회적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첫 단추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또 “이후 국회와 언론, 시민사회단체들이 우리 투쟁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자본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지방정부도 국정감사를 계기로 우리 사태를 지역의 대량실업 문제로 바라보며, 해결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했다”며 “무엇보다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의 중재 역할을 끌어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였다”고 덧붙였다.

“국회 눈치 보는 기업들 긴장”

김주환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티맵모빌리티가 로지소프트를 인수한 뒤 대리기사들에게 의무 콜, 사용료 중복 부과 등 불공정 행위를 한 점이 지적됐다. 이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당 사안을 들여다보고 개선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올해 수수료 제도를 일방적으로 바꾸려 했던 로지가 노조의 반발에 앞으로는 노조와 합의 없이 수수료 제도를 변경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이렇게 된 건 그나마 지난 국정감사의 성과라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김주환 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카카오모빌리티와 단체교섭 합의를 이뤘다. 국정감사가 열리면 기업들도 긴장하는 측면은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올해 카카오모빌리티는 임금 관련 추가 협상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업이 국정감사에서 일시적으로 국회 눈치를 보다가, 이후 변화가 없을 경우에 대한 대책이 마땅치 않은 점은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감 무용지물 외투기업, 근본적 규제 필요”

올해 두 번째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이강호 식품노련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노조 위원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회사가 평소와는 다르게 좀 움직이는 척을 했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 무용지물이 됐다”며 “페르노리카코리아 노사 갈등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는 국정감사 이후 높아졌지만 이후 문제 해결까지 관심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회사의 무자비하고 일상적인 부당노동행위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가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를 해야 한다”며 “외투기업인 회사가 국가 권력을 무시하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규제와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국감 이후 지적 사항 잘 감시돼야”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조직국장은 “지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배달노동자가 참고인으로 선 경우는 처음이라 의미가 있었다”며 “우리의 노동환경이나 플랫폼 알고리즘 문제 등이 국회 화면에 띄워지고 의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니 조합원들이 무척 좋아했다. 자기 얘기가 국회에서 오가는 것에 대해 속 시원해했다”고 전했다. 

이어 “첫 국정감사에 비해, 두 번째 국정감사에 출석했을 땐 배달노동자 의제가 별로 준비가 안 됐다. 결국 의원실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준비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해당 의제의 임팩트가 얼마나 있느냐, 일종의 이슈 파이팅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노조가 이슈만 바라는 것은 아니다. 국정감사에서 나온 지적 사항이 해당 기관의 개선으로 이어졌는지 국정감사 이후의 과정들이 잘 감시돼야 하는데, 내년 4월이 총선이라서 우려된다. 국회와 노조가 관계 부처들이 개선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목소리 내는 것이 핵심 과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력관계가 반영되는 정치의 공간에 자기 의제를 수시로 끼워 넣을 자원이 부족한 노동자들은 이러한 국정감사의 가능성에 다시 절박한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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