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전기차로 바꾼 택배노동자··· "만족도 99% 이상"
[커버스토리④] 전기차로 바꾼 택배노동자··· "만족도 99% 이상"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5.05 00:15
  • 수정 2021.05.0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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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택배·화물·건설기계 사용자 이야기
미래차 전환 정책 공감대 형성이 우선
​​​​​​​'충전인프라-가성비확보-재정지원'도 뒤따라야

커버스토리 X 미래차 시대의 노동

130여 년 전 내연기관차는 이동수단의 혁명을 가져왔다.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차 시대는 아직 완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사실에 위기가 존재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과도기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긍정적인 사실도 있다. 아직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다. 미래차 시대의 노동이 어떤 모습일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커버스토리④ 사용자가 말하는 미래차

지난해 11월 박근희 CJ대한통운 당시 대표이사가 택배기사에게 전기화물차를 인도했다. ⓒ CJ대한통운
지난해 11월 박근희 CJ대한통운 당시 대표이사가 택배기사에게 전기화물차를 인도했다. ⓒ CJ대한통운

화물용 자동차도 미래차 전환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지난해 기준 화물차(361만 대)는 국내 운행 차량(2,437만 대)의 15% 수준이다. 그런데 자동차 미세먼지 배출량의 60%를 화물차가 뿜고 있다. 화물차는 대부분이 경유차면서 10년 이상 노후화된 차량이 많고 무거운 차체, 긴 주행거리 등으로 자동차 중 미세먼지 최대 배출원이 된 것이다.

정부도 화물차를 중심으로 노후차 교체와 친환경차 전환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한국판 뉴딜 사업의 일환인 ‘전기차 113 프로젝트’를 통해 전기화물차 보급 확대에 주력하고, 2023년까지 수소화물차 1만 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경유화물차는 2023년 4월부터 신규 등록이 안 되도록 했다.

전기차 전환 속도 내는 택배사들

택배사도 정부방침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강화 전략에 발맞추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11월 직영기사를 대상으로 경기도 군포와 울산에 2대씩 전기차를 도입했다. 2030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화물차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는 내년까지 콜드체인 전기화물차(냉동탑차)를 200대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택배 관계자는 “(현재) 당사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차는 택배 40대, SCM(공급망관리차) 37대, 콜드체인 34대 정도”라고 했다. 한진택배도 올해 3분기 이후부터 전기·하이브리드 택배차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체국 위탁배달원들은 민간택배사 기사보다 더 빠르게 전기차로 바꾸고 있다. 우체국물류지원단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위탁배달원 약 3,800명 중 130여 명이 전기차를 샀다. 위탁배달원은 건당 배송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우정사업본부의 자회사인 우체국물류지원단과 위탁계약을 맺는다.

윤중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은 “전기차로 바꾸는 조합원이 계속 늘고 있다”며 “정부·지자체 지원금, 영업용 번호판 지원, 리스비 절감 등의 장점을 고려할 때 전기차 구매 이익이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사용 조합원이 꾸준히 증가하는 만큼 우체국본부는 올해 우체국물류지원단과 체결한 단체협약(제33조 제1항)에 ‘디젤차 수요억제 및 친환경 전기차량 보급을 위한 정부시책에 부응하고자 작업장 내 전기차량 충전시설 설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전기차로 바꾼 택배노동자
“만족도 높아”

실제 전기차로 바꾼 우체국 위탁배달원 김정인 씨는 “만족도가 99% 이상”이라고 평가한다. 김정인 씨는 기아의 1톤 봉고차를 올해 초 구매했다. 풀옵션으로 4,250만 원인데 환경부 지원금, 성남시 지원금을 받아 약 2,150만 원에 차를 샀다. 2019년 7월 이후 1.5톤 미만 전기화물차는 운수사업용 허가 대수 제한을 받지 않기에 영업용 번호판도 받았다. 영업용 번호판을 따로 사려면 약 2,500만 원이다. 위탁배달원들은 ‘아, 바, 사, 자’ 중 하나로 시작하는 영업용 번호판이 달린 차량으로 일해야 해서 보통 우체국물류지원단에 한 달에 43만 원씩 내며 리스차를 이용한다. 여러 지원 덕분에 평균 약 2,000만 원인 경유차 가격에 전기차를 구매한데다 2,500만 원 가치의 영업용 번호판까지 받게 된 것이다. 위탁배달원들에게 찾아오는 영업사원들은 그래서 전기차 구매를 ‘로또’라고 표현하곤 한다.

차량 유지비도 줄었다. 한 달에 20만~25만 원씩 들던 유류비가 이젠 충전비 5만~7만 원으로 해결된다. 조용한 아파트 단지, 주택가에서 시동을 켜놓으면 자주 받던 민원도 사라졌다. 김정인 씨는 “유류비 절감이 가장 크게 느끼는 장점이다. 또한 전엔 냄새나고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올까 봐 시동을 못 켜놨는데 전기차는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전했다.

운전 피로도 덜었다. 김정인 씨는 “소음과 진동이 확실히 적어 운전할 때 피로감이 덜하다”며 “시끄러운 디젤엔진을 이용하지 않으니 청각이 더는 나빠지지 않겠단 생각도 든다”고 이야기했다.

충전은 아직 어렵지 않다. 일을 마친 후 집 근처 LH공사나 경찰서에서 2시간 정도 충전해 두면 된다. 처음 1시간은 80%까지 급속 충전된 뒤, 100%까진 완속으로 충전된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번만 충전하면 배송에 지장이 없다. 김정인 씨는 “지금은 충전하러 갈 때마다 자리가 비어서 바로 하는데 전기차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앞으론 기다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빠른 속도로 충전 인프라가 구축됐으면 한다”고 했다.

민간택배사 기사들은 어떨까? 유성욱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은 “전기차로 다들 바꾸고 싶어 한다”며 “지원금을 받아 미리 바꾼 조합원이 한두 명 있는데 반응이 괜찮다. 충전만 문제가 안 되면 괜찮다는 분위기”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민간택배사 기사들은 우체국 위탁배달원보다 전기차로 바꿀 유인이 부족하다. 민간택배 기사들은 대부분 리스차가 아닌 차량을 할부로 산다. 또한 우편법의 적용을 받아 ‘아, 바, 사, 자’ 영업용 번호판이 필요한 우체국 위탁배달원과 달리 ‘배’로 시작하는 택배 전용 번호판을 다는 덴 크게 어려움이 없다. 한진택배 기사 A씨는 “충전시설도 별로 안 보이는 데다가 (우체국 위탁배달원처럼) 영업용 번호판이 따로 필요한 것도 아니라 전기차로 전환할 메리트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택배산업에서 전기차로 전환을 활발히 유도하려면 적극적인 홍보와 보조금 정책이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택배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면 유지비가 10분의 1밖에 안 든다는 정보가 많이 안 알려졌다”며 택배기사들에게 전기차의 장점이 충분히 홍보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우체국물류지원단 관계자는 “위탁배달원들은 전기차 구입을 원하지만 올해는 지자체 지원금이 다 끝났다”며 “지원금에 따라 전환 속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인 씨는 “위탁배달원들은 번호판 지원이 계속되면 보조금이 줄어도 전기차 구매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면서도 “민간택배사는 정부보조금이 어느 정도 선은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화물·건설기계 전환은? 아직

화물노동자들은 미래차 시대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화물차는 수소 동력이 적합한데 상용화 단계에 이르진 못해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친환경차 보급을 위해 여러 가지 연료로 대체할 수 있지만 수소가 가장 효과가 크다”며 “전기차는 단거리·승용차에, 수소차는 장거리·대형화물차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1.5톤 이상 전기화물차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고 수소화물차도 2023년부터 생산이 시작된다.

주로 5톤 이상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조직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종배 교육선전국장도 “아직 친환경차를 이용하는 조합원이 없다”고 했다.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기본적으로 미래차 도입을 적극 지지한다”며 “다만 전기차나 수소차 비용이 굉장히 비싼데 사회가 누리는 전환 비용을 화물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의 전환은 문제가 있단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수소차는 아직 안전 검증이 덜 된 부분이 있다. 이 점에서 중량 화물을 싣는 화물차에 수소차를 먼저 도입하는 데 우려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건설기계 분야도 아직이다. 건설기계 중 일반도로를 주행하는 덤프트럭, 콘크리트믹서·펌프트럭, 지게차 등은 수소차가 개발되고 있다. 이영철 민주노총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장은 “미래차가 얼마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며 “특히 건설기계는 오지 등 전국 곳곳을 다니기에 충전 인프라가 충분해야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전기 동력도 활용이 안 되고 있어 수소 동력까진 노동조합 차원에서 고민이 없다”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택배를 포함한 화물차와 건설기계의 미래차 전환을 위해선 ▲개인사업자 취급받는 화물·건설기계 노동자를 대상으로 미래차 전환 정책에 대한 홍보 및 공감대 형성 ▲경유차 대비 미래차의 가성비 확보 ▲전국적인 충전 인프라 설치 ▲행정적·재정적 지원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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