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⑧] 미래차 시대, 큰 그림 그려서 대비하자
[커버스토리⑧] 미래차 시대, 큰 그림 그려서 대비하자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5.06 00:20
  • 수정 2021.05.06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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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차 시대의 대응 노·사·정이 함께 해야
​​​​​​​'내 일자리' 고민 넘어서 '다음 세대 일자리' 확장 필요

커버스토리 X 미래차 시대의 노동

130여 년 전 내연기관차는 이동수단의 혁명을 가져왔다.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차 시대는 아직 완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사실에 위기가 존재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과도기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긍정적인 사실도 있다. 아직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다. 미래차 시대의 노동이 어떤 모습일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커버스토리⑧ 미래차 시대, 솟아날 구멍은?

ⓒ 참여와혁신DB
ⓒ 참여와혁신DB

 

미래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깨끗함과 안락함에 호평 일색이었다. 충전소 등 관련 인프라가 빠르게 확충돼 좀 더 편하게 미래차를 이용할 수 있길 바랐다. 반면 미래차 시대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품사 및 완성차 등 자동차 생산 현장에서는 맘 놓고 미래차 전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판매 및 정비, 폐차업계도 상황은 비슷했다. 출구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자동차산업 현장의 많은 이들은 미래차 전환에 불안감을 표하고 있다.

미래차 시대, 고용은?
생산직 줄고 개발직 늘고

전문가들은 미래차 시대에도 일자리 총량은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현철 군산대 융합기술창업학과 교수는 “개별기업 단위에서 보면 어딘가는 고용이 늘어나야 하고 어딘가는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총량으로 보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2018년에 두 차례 논의한 결과, 미래차 시대에도 총고용은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그런데 정확하게 어느 정도 플러스가 되는지 추측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미래차와 관련해 ‘CASMED’라는 6가지 영역(연결화/자율주행화/제조서비스화/모빌리티화/전동화/디지털화)에 모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미래에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자동차 전장화(전자부품화) 영역이다. 코로나19 이후 미래차의 발전 방향이 전동화와 디지털화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반도체가 탑재된 자동차 부품 비율이 2010년에는 27%였다가 10년 만에 40%대로 올라갔다”고 밝혔다. 김현철 교수도 “자동차는 기계제품이었다. 이후 기계와 전기가 혼합되는 제품이었다가 전기가 주축이 되는 제품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전장부품 수요는 늘어난다”면서, “앞으로 전기차의 고전압을 견딜 수 있는 전장부품이 많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동화와 디지털화 과정에는 하드웨어적으로 자동차 부품의 전장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소프트웨어로 구동하는 자동차 부품이 2010년 5% 미만, 2017년 10% 정도였다. 2030년에는 3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또한 자동차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수요는 차후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는 시점에 맞춰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미래차 시대로 갈수록 자동차 생산직의 고용규모는 감소하는 한편 연구개발직의 규모는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에 우리 사회가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항구 연구위원은 진단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앞으로 생산직은 줄어드는데 개발 인력은 수요가 늘어난다. 소프트웨어를 만들 개발 인력이 없으면 차가 굴러가지 못한다. 그게 디지털화의 의미”라며,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산업 인력은 점점 감소하다가 현재 36만 명 정도다. 그 중에서 개발 인력은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 발표한 ‘미래형 자동차 산업기술인력 수요전망’에 따르면, 2015년 9,457명이었던 자동차 산업기술인력이 2018년에는 5.3배 증가해 5만 533명을 기록했다. 또한 연평균 증가율을 5.8%로 잡았을 때, 2028년까지 필요한 산업기술인력은 8만 9,069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7년 내 4만여 명의 기술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미래차 전환, 사회적 협의 필요

자동차산업의 생산직과 연구개발직 모두 자동차와 관련한 일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필요한 직능은 무척 다르다. 그렇기에 노동자 개인의 힘으로 직무를 전환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는 기업 단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협의를 통해 노사정이 함께 미래차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10년 동안은 내연기관차가 버텨줄 것이다. 하지만 산업적으로는 미래차 쪽으로 계속 발전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나 전기전자산업 쪽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현재 역량을 재점검해보고,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데 노사관계만으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전반적으로 사회적 협의체가 발전해야 한다. 노, 사, 정과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서 중장기적 발전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곽상욱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국장은 “산업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사회적 대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현재 부품사 및 완성차 노사, 정부기관, 연구기관 등이 참여하고 있는 자동차산업노사정포럼이 대화의 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현황을 리뷰하는 수준이다. 이 단계를 넘어 산업과 고용의 문제에 대응하는 수준까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재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은 올해 중앙 및 지부·개별 사업장 단위 교섭에서 ‘산업전환협약’을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산업전환협약의 골자는 ▲고용안정 및 양질의 일자리 확보 ▲교육훈련체계 구축 ▲노동안전 및 인권보호 ▲기후위기 대응 ▲원·하청 동반성장을 위한 공정거래 등의 내용을 노사가 함께 논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문호 소장은 “독일은 5년 전부터 산별이나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미래 협약을 맺고 있다. 투자 계획, 인력 계획, 직무변화에 대한 교육훈련 과정 등을 노사가 같이 설계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금속노조는 산업전환협약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공동결정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발의할 예정인 공동결정법은 노사정 단위에서 금속산업 전체를 포괄하는 산업전환위원회 및 산하 업종·지역 위원회를 구성하고, 단위사업장에서 공동결정제도를 시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1976년 독일에서 시행된 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와 닮아 있다.

교육훈련의 중요성

이러한 사회적 협의 과정에서 교육훈련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다. 기존 자동차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새로 생겨나거나 변화하는 자동차산업에서도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김현철 교수는 “이원화 된 접근”을 버려야 한다고 제언한다. 예를 들어 기존 생산직에서 근무하던 노동자가 연구개발 업무를 포함한 다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김현철 교수는 평균 학력이 높아진 한국사회의 현 수준을 감안할 때 재교육을 통해서 얼마든지 직무전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결국은 기계를 컨트롤 하는 게 IT거든요. 그렇다면 기계 쪽 노동자가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니에요. 재교육을 통해서 얼마든지 전환할 수 있는 거죠. 정부가 노사정 대화 같은 수단으로 그런 그림으로 끌고 가야 해요. 그 과정에서 기업 입장에서 신규채용이 편리하고 돈도 적게 든다고 하면 전환에 따른 재교육 비용을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거죠. 물론 50대 노동자는 새로운 걸 배우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젊은 노동자들을 어떻게든 바꿔야죠. 대졸자도 생산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열어두면 전환 교육하기가 훨씬 쉬워질 거예요.”

실제로 노동자들 사이에서 교육훈련에 대한 저항감이 낮아지고 있다. 현장에서 교육훈련에 저항감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백선진 한국노총 금속노련 명화공업노조 안산지부 지부장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현장에서는 노동자 개인이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스스로 지게차·굴착기·택시 증 각종 자격증을 따고 있다”면서, “당장 활용하지 못해도 자격증을 갖추고 있다. 특히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사람은 먼저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없던 현상”이라고 밝혔다.

이문호 소장은 이에 더해 사회안전망 확충도 선결과제라고 말한다. 이문호 소장은 “교육훈련이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그런데 전환의 시기에 따라가기 힘든 그룹이 있다. 그 그룹은 사회 안전망을 통해서 해결해줘야 한다”면서 “현재 한국판뉴딜의 세 가지 버전 중에서 휴먼뉴딜에 바로 그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성희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책국장도 “교육과는 별도로 새로운 산업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에서 일정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면서, “전환이 성공할 때까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 기간 동안 사회에서 소비능력을 어떻게 유지하게 해줄 건지도 관건”이라고 전했다.

다음 세대의 일자리를 위해

미래차 전환으로 인해 자동차산업 현장에서 직무의 변화가 많이 예측된다. 좁게는 나사를 조이는 업무가 전선을 꽂는 업무로 변환되거나 자동차 영업 상담이 자동차 관리 상담으로 전환될 수 있다. 넓게는 자동차부품업이나 정비·폐차업에서 예측되는 것과 같이 자동차와 아예 관련이 없는 직종으로 전직해야 하거나 자동차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현장 노동자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사정이 지혜를 모아 미래차 전환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고 해도 대다수 노동자들이 이를 정의롭고 공정한 전환이라고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특히나 사회안전망이 열악하고 사회적 합의의 경험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내 일자리’가 불안해지는 전환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말로 변화가 체감될 때는 늦다.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날아가지. 쉬엄쉬엄 쇠약해지다가 망가지지는 않아요. 훅 가요. 그냥 한 번에.” 택배업계에서 선도적으로 전기차를 사용하고 있는 김정인 우체국택배 노동자의 말이다.

다행히 현장에서는 미래차라는 새로운 기술진보가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기력하다. 여기에는 ‘10년은 괜찮겠지’, ‘당장은 변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게 사실이다. 김성민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 교육부장은 현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넘어서 다음 세대의 일자리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이 바뀌는 건 자본주의의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게 우리끼리의 얘기인 거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나요? 망하는 회사는 망하는 거지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사실은 우리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더군다나 AI가 발달하고 미래차까지 가는 마당이잖아요? 더 이상 추가로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이라든지 기계세라든지 이런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봐요. 현장에서 ‘내 일자리는 있겠지’라고 생각하는데. 내 일자리 있으면 뭐하겠어요? 자식들 일자리가 없는데요. 애들 맨날 공시 공부만 시킬 거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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