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미래차 시대, 완성차업계의 고용 불안
[커버스토리③] 미래차 시대, 완성차업계의 고용 불안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5.04 00:25
  • 수정 2021.05.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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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첫 변화는 '전동화와 디지털화'
​​​​​​​투자 약속 없는 외투완성차업체, "정부가 나서야"

커버스토리 X 미래차 시대의 노동

130여 년 전 내연기관차는 이동수단의 혁명을 가져왔다.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차 시대는 아직 완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사실에 위기가 존재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과도기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긍정적인 사실도 있다. 아직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다. 미래차 시대의 노동이 어떤 모습일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커버스토리③ 미래차 시대, 완성차업계의 고용은?

ⓒ 참여와혁신DB
ⓒ 참여와혁신DB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개편을 촉진하는 계기였다. 자동차업계 1위 GM의 파산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는 한국과 중국 자동차업계에 성장의 기회가 됐으며, 유럽과 북미의 자동차업계가 합종연횡 하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 세계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미래먹거리 선점을 위해 전기차, 수소전기차, 자율주행차, 공유차량 서비스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여기서 코로나19 사태는 다시 한 번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개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기차로의 가속이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부상한 전기차

금융위기 이후 주요 자동차업계들은 미래차 분야에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CAMSED’로 이를 요약한다.

C는 연결화(Connected car)의 앞글자다. 자동차에 무선랜을 장착해 차량 내 인터넷 사용 및 차량 간 소통을 돕는 기술이다. A는 자율주행화(Autonomous)의 앞글자로 흔히 생각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떠올리면 된다. M은 모빌리티화(Mobility)를 뜻하며 작게는 이륜차, 넓게는 드론, 항공형 자동차까지 포괄한다. S는 제조서비스화(Servitization)로 차량공유서비스 등 자동차를 이용한 서비스 분야를 포괄한다. E는 전동화(Electrification)로 내연기관차의 전기자동차화를 뜻한다. D는 디지털화(Digitization)를 뜻하며 좁게는 자동차의 전자부품화, 넓게는 자동화나 스마트 팩토리 등 업무 전 영역에 걸친 디지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CAMSED는 모두 연결되는 개념이나 주로 CA, MS, ED 두 글자씩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GM의 크루즈나 알파벳의 웨이모 등 자율주행 개발업체는 CA 부문에 강점을 둔 경우다. MS에 강점이 있는 기업은 자동차를 한 대도 생산하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거대 모빌리티 기업이 된 우버를 들 수 있다. ED의 경우는 대다수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일정부문 개발하는 형국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이렇듯 다양한 방면으로 발전되던 미래차 기술은 코로나19로 전동화/디지털화 쪽으로 급격하게 선회했다. 대규모 연구개발비용이 소모되는 연결화/자율주행화 분야는 경영상의 이유로 개발이 일시 중단됐고, 모빌리티화/제조서비스화 분야의 특징인 공유 서비스는 코로나19 감염의 위험 때문에 큰 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전동화/디지털화 분야의 경우 기후위기와 코로나19 등 각종 환경 이슈로 급속히 추진됐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공유차량은 감염병 위험이 있었다. 대중교통조차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의외로 자동차가 가장 안전한 이동수단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잦아든 곳은 차량 구매 수요가 늘었다. 2020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20% 줄었지만, 전기차 판매량은 오히려 150% 가량 증가했다. 코로나19가 미래차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동화로 인한 공수 축소

이러한 흐름은 국내의 대표적인 자동차업체, 현대차·기아그룹에도 해당한다. 현대차는 2020년 12월 ‘2025 전략’을 통해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 및 서비스 2대 사업구조로 재편 ▲전기차·수소전기차 생산 확대 ▲미래형 항공기(Personal Air Vehicle, PAV) 및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UAM) 등 제품군 확장을 공언했다.

현대차에 앞서 기아도 지난해 1월 ‘플랜S’를 통해 ▲선제적 전동화 ▲차량공유서비스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목적에 맞는 이동수단을 개발하는 목적 기반 모빌리티(Purpose Built Vehicle, PBV) ▲전기차 기반의 충전·정비·물류 등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전동화와 디지털화를 진행하면서 장기적으로 모빌리티와 제조서비스 분야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대차·기아의 전략에 생산 현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본격적인 전동화로 인해 엔진 및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를 기준으로 내연기관 전체가 503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180개의 기존 부품이 빠지고 대신 전기차 부품이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503개에서 360개 부품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철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고용실장은 “결국 파워트레인 계열이 어떻게 될 것이냐가 문제”라면서 “현재 기아에서는 엔진, 변속기, 소재 등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5,000명 가까이 된다. 아무리 공정한 전환 배치를 한다고 해도 다 소화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전동화로 인한 고용축소 문제는 신규채용을 두고 극대화된다. 회사는 향후 수년간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규모로 정년퇴직하면 전동화로 인한 고용축소에 대비할 수 있다고 본다. 신규채용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정년퇴직하는 인원이 1만 5,000여 명에 달한다. 기아도 2025년까지 7,200여 명이 정년퇴직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반대로 노동조합에서는 신규채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소한 정년연장이라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동화로 인한 고용축소 규모가 정년퇴직의 규모보다 작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판단에는 반도체 수급 차질로 인한 생산 차질 등으로 본격적인 전동화의 시기가 예상보다 늦춰지고 있다는 점도 깔려있다. 실제로 기아는 지난 2월 인베스터데이를 통해 전기차 11종 라인업 구축 시점을 당초 2025년에서 1년 연장한 2026년으로 수정한 바 있다.

정현철 고용실장은 “당장 내년만 하더라도 100명 단위로 정년퇴직을 한다. 정상적으로 가동한다고 하면 라인 운영을 할 수가 없다”면서 “회사는 신규채용 대신 생산 인턴, 기아의 베테랑 제도나 현대차의 시니어촉탁제도 내지는 회사가 말하는 공정합리화를 통해서 인원을 메우겠다는 입장이다. 명확하게 노동조합의 입장과 상충되는 사안”이라고 전했다.

공정 자동화로 인한 고용축소 우려

전동화로 인한 고용축소 이외에도 공정 자동화로 인한 고용축소 가능성도 노동조합의 고민을 깊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제조 공정도 봐야 한다. 컨베이어벨트가 앞으로 없어질 거로 본다”면서, “현대차그룹이 이포레스트(E-FOREST) 공장을 추진 중이다. 얼마 전 현대차 3공장에서 원키트 방식의 부품 조달 시스템 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포레스트 공장은 현대차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팩토리의 브랜드 명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위한 인공지능(AI) 및 웨어러블 로봇 기술 도입이 골자다. 원키트 시스템은 현대차·기아 해외공장에서는 일반화된 기술로 차량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컨베이어 벨트 부근 적재하여 공급받는 팰릿(Pallet) 시스템과 달리 부품 상자가 공급되는 방식이다. 원키트 시스템 도입 시 간접생산 영역에서 고용이 크게 줄어든다.

정현철 고용실장은 “사실 모든 공정을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이 다가오고 있다. 회사가 자동화에 대한 철학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정말 어려운 공정에서만 자동화를 할 것인지 모든 부분에 적용할 것인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노동조합에서는 전동화 및 공정 자동화로 인한 고용 축소에 대안으로 핵심 부품의 공장 내 유치를 주장하고 있다. 최종태 기아차지부 지부장은 지난해 4월 <참여와혁신>과 인터뷰를 통해 “회사가 밝혔듯이 2025년까지 전체 물량의 25%를 친환경차로 전환한다면 친환경차 조립공장을 국내공장에 유치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라면서 “그동안 회사에서는 친환경차 부품을 그룹사 내 계열사를 통해 들여왔지만 친환경차 부품 역시 기아자동차 내에서 양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수 현대차지부 지부장 역시 지난해 12월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회사는 스마트 모빌리티 사업을 육성하겠다며 61조 원 투자를 밝혔다. 노조에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설명했지만, 그 설비를 어디에 깔지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걸 끄집어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현철 고용실장은 “기아차 입장에서 봤을 때 많은 조합원의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핵심부품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전략적으로 부품 자회사 쪽으로 물량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 “교섭이나 고용안정위원회 등에서 지속적으로 핵심 부품 유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가 명확히 답변을 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래차 투자 확약이 필요한
외투완성차업체

명시적으로 투자계획을 밝힌 국내 완성차업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국내에서는 현대차·기아가 미래차 전환과 관련한 노사 공동선언과 미래협약을 맺었지만, 아직 추상적이다. 앞으로 더 구체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에 반해 외투기업 완성차업체는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미래차 생산을 위한 투자 확약이 필요한 실정이다. 오민규 연구위원은 “외투완성차의 경우는 한국에서 전기차를 안 하려고 한다. 본사 중심으로 전기차를 하려는 경향 때문”이라며 “현대차·기아는 한국, 지엠은 미국, 르노는 프랑스에서 전기차 투자를 하려고 한다. 전동화 경향에서 현대차·기아와 외투 완성차업체는 달리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완성차업체가 미래차 전환으로 인한 고용축소를 우려하고 있다면, 외투 완성차업체는 그에 더해 미래차 투자 불발로 인한 고용상실을 함께 우려하고 있다. GM은 지난해 3월 2023년까지 신형 전기차 10종을 포함해 총 22종을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지엠에 배정된 전기차 물량은 2027년까지 단 한 종도 없다. 더구나 GM은 2035년 내연기관차 생산을 전 세계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어 현장에서 느끼는 고용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조하수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교육선전실장은 “한국지엠 부평 2공장에 대한 전망이 부재하다. 미래차 시대가 곧 도래하는데 한국지엠에서는 아직까지 빈칸인 셈”이라며, “2022년 7월 이후 부평 2공장에 대한 생산계획이 없다. 기존 물량을 연장 생산해서 미래차 생산까지 디딤돌을 놔줘야 연착륙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계획이 없다는 식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교섭에서도 쟁점이 될 사안”이라고 전했다.

금속노조는 4월 8일 부산시청 앞에서 외투기업 제도 개선과 미래차 국내생산 위해 노사정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 금속노조

한편,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능력이나 전기차 생산 인프라 및 경험, 정부의 보조금 수준 등을 따져봤을 때 한국지엠에서 미래차를 생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민규 연구위원은 “GM이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면서, “GM의 1~2세대 전기차는 모두 한국지엠에서 개발됐다. 1세대 스파크는 한국지엠 창원 공장에서 독점 생산하기도 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제조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 한국에 있기도 하다. 또한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전기차 보조금을 후하게 주는 나라기도 하다. 한국은 매력적인 전기차 시장”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온명근 한국지엠지부 자문위원은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미국중심주의와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GM에서 2025년까지 출시예정인 30개 차종 중 20개가 미국 국내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지엠은 2018년 군산공장 폐쇄 당시 산업은행을 통해서 8,100억 원이라는 거액의 지원을 받았다. 장기적으로 한국이 생산 거점의 지위를 유지할 명분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자동차의 상황도 유사하다. 르노그룹은 2021년 1월 ‘르놀루션(Renaulution)’을 통해 2025년까지 수익성 개선과 신차 개발에 집중하고 2025년부터는 테크, 에너지, 모빌리티로 사업구조를 재편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르놀루션 발표 이후 르노삼성차에서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희망퇴직이 실시됐고, 전국 10개의 직영 정비사업소 중 인천과 창원 사업소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차 물량 배정은커녕 당장의 신차 물량 배정조차 안개 속인 상황이다.

이동헌 르노삼성자동차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향후 2~3년간 신차가 없다. 마지막으로 XM3 들어온 것과 4월 판매가 되고 있는 아르카나, 6월에 판매 예정인 하이브리드차가 마지막”이라면서 “미래 발전 방안을 지금 마련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차후에 전기차 배정이 안 된다면, 내연기관차만 잠시 만들다가 소위 ‘먹튀’를 당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더군다나 르노삼성자동차는 주력모델이었던 SM6와 QM6의 후속 모델을 더 이상 출시하지 않고 있어 아르카나와 6월 하이브리드차 판매에 “향후 르노삼성자동차의 운명이 달려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래차 시대, 노사정 함께 논의해야

이러한 상황에서 외투완성차업체 노동조합은 정부에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부품사와 마찬가지로 미래차 전환 대비를 노사정 협의체로 풀어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투완성차업체의 노사 교섭에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다른 이유는 물량 배정과 투자를 빌미로 노동조건 저하 요구가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노사는 현재 2020년 교섭을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째 진행하고 있다. 이동헌 수석부위원장은 “10개월째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회사는 제시안을 단 한 차례도 내지 않았다. 올해 2월 말 희망퇴직이 정리된 이후 회사가 제시안을 내기로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라면서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음에도) 스페인 공장과 (생산성을) 비교하거나 미래물량 확보를 위해 고정비용을 20% 낮춰야 한다는 식”이라고 답했다.

온명근 자문위원은 “(노동조합의) 투자요청과 관련해서 회사에서는 노동 유연성 증대 등으로 한국지엠의 투자 가치를 증명하라는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국내에 협상의 주체가 있는 현대차·기아와는 다르다. 일국적 협상이 어렵다보니 정부의 역할과 노사정 대화 틀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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