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⑤] 자동차 판매노동자의 커지는 고용불안
[커버스토리⑤] 자동차 판매노동자의 커지는 고용불안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5.05 00:25
  • 수정 2021.05.05 0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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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채용 중단·비대면 영업 강화
​​​​​​​고용안정 전제 직무다각화 준비해야

커버스토리 X 미래차 시대의 노동

130여 년 전 내연기관차는 이동수단의 혁명을 가져왔다.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차 시대는 아직 완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사실에 위기가 존재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과도기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긍정적인 사실도 있다. 아직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다. 미래차 시대의 노동이 어떤 모습일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커버스토리⑤ 미래차 시대, 판매노동자는 어디로

‘EV6 인터넷 사전예약 철회하라!’ 지난 3월, 기아가 첫 전용 전기차 ‘EV6’의 온라인 사전예약을 예고하자 판매노동자들이 반발했다. 온라인 예약이 온라인 판매로 이어지면서 판매·영업직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아는 온라인 판매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노동자들은 한 번 뚫린 둑의 구멍이 계속 커질 거란 불안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판매지회 소식지 (21.3.26.)

점점 커지는 고용불안

자동차 판매노동자들은 미래차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정규직 판매노동자들이 조직된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판매지회 김진성 지회장은 “회사에서 신규채용을 안 하고 있다. 마지막 채용이 2016년 35명이었다”며 “지금 정규직 판매노동자가 약 2,900명인데 2030년이면 1,200명 대로 축소된다”고 말했다. 채용중단은 곧 온라인판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단 인식을 공유하고 있던 판매노동자들에게 EV6 온라인 사전예약은 고객 확보 차원의 단순 이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판매지회의 설명이다.

이러한 판매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현대차·기아의 판매 분리 정책이 시작된 IMF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차·기아는 대리점 제도를 만들고 판매를 지점(직영)과 대리점으로 이원화했다. 그렇게 생겨난 대리점 소속 판매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가 됐다.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취급돼 기본급은 물론 퇴직금, 4대 보험을 받지 못하고 대리점의 갑질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원화된 유통구조는 대리점 실적을 더 압박했다. 이는 다시 자기 판매수당의 대부분을 고객에게 각종 옵션으로 제공하는 판매노동자들의 출혈경쟁을 가져왔다. 대리점은 본사가 매월 부여하는 판매목표를 달성해야 건물 임차료 지원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은 임금 저하를 겪게 되는 한편, 마찬가지로 판매목표가 있는 직영점 판매노동자들은 정가 판매 기준이 흔들려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구조 아래 영업 환경은 점점 어려워졌다.

최근엔 비대면 영업이 강조되면서 판매노동자들의 미래는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 현대차 대리점 소속 3년차 카마스터 정호영 씨는 “비대면 영업을 점점 강조하는 분위기”라며 “지금도 대리점 소장이 마음만 먹으면 해고도 쉽게 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미래에 자동차 영업사원이란 직업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지점과 대리점도 줄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인원이 줄어든 지점끼리 합치거나 2년마다 자동 갱신해온 대리점 계약을 중단하는 식이다. 김진성 지회장은 “기아 317개 거점(지점) 중에 한 지점에 인원 4명이 안 되는 곳이 20개 정도 된다”며 지점이 계속 축소되는 데 우려를 표했다. 현대차·기아 비정규직 판매노동자들이 조직된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김선영 서울지회장은 “지금까지 대리점들이 원청과 2년마다 자동 계약 갱신을 해왔지만 요즘엔 그렇게 안 한다”며 “1년 또는 6개월짜리 계약도 있다. 그래서 최근엔 한 대리점 소장이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선영 지회장은 회사가 직접 렌트카 업체 등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특판 비율이 높아지는 점도 판매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심화한다고 설명했다.

판매·영업직 당장 사라지긴 어려워

한편 고용불안 뒤엔 자동차 판매노동자가 한 번에 사라지기 어려울 거란 예상도 있다. 판매노동자들은 정보 제공, 자동차 등록, 정비, 보험 가입 업무 등의 업무를 소화한다. 고객이란 우월적 입장에서 보험회사와 자동차 정비소 대신 판매노동자를 먼저 찾는 이들의 민원도 처리하고 있다. 미래차가 생산된 이후론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 지원 업무도 고객 대신 수행한다.

김진성 지회장은 “국내 자동차 판매구조에서 영업노동자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라며 “커피자판기처럼 단순히 차량가격을 확인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차량 구매 관련 세밀한 부분까지 점검해주는 영업노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EV6 온라인 사전예약 결과 초반 하루 이틀은 오프라인 대 온라인 비중이 7:3이었다면 일주일로 따졌을 때 6:4였다”며 “이는 아직 현장 거점이 필요하단 사실을 회사에 한 번 더 상기시켜준 계기였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노사는 EV6 온라인 사전예약 이후 인터넷 및 온라인 판매 형태 변경은 노사가 협의해야 하고 단체협약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회의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비대면 판매가 고객의 편의를 크게 높이진 못할 거란 우려도 있다. 정호영 씨는 “제조사가 과연 영업사원 수당만큼 비대면 판매 시 가격을 내려줄지 의문”이라며 “비대면 판매를 하려면 차량 계약, 인도 등을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새로운 인력이 필요해 실질적 가격 인하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사실 고객들이 영업사원의 수당 절반 정도를 서비스로 가져가고, 귀찮은 일처리도 영업사원이 다 해주는데 고객 입장에서 편익은 지금 시스템이 더 낫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고용안정 전제한
직무다각화 준비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차판매연대지회는 지난해부터 대리점과 교섭에 들어갔다. 약 770개의 대리점 중 130개 대리점에서 교섭이 이뤄졌지만 결렬됐다. 2019년 대법원이 비정규직 판매노동자들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라고 판단했지만 사측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판매노동자들은 미래를 조직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하긴 어려운 현실이다.

판매지회는 완전월급제를 전제로 한 직무다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규직 판매노동자들은 기본급에 판매수당을 받고 있다. 1년차 기본급은 135만 원 수준이다. 김진성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완전월급제를 원하고 있다”며 “물품은 물론 고객의 현금요구까지 많아져서 수당을 거의 뿌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너무 지친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노조가 변화를 피하려는 게 아니”라며 “완전월급제 전환 이후 시승센터 근무, 렌터카업체·관공서 전담 관리, 상담 전문 업무 등 직무다각화를 추진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지회는 판매노동자가 1,000명 대로 떨어지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전월급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판매지회는 회사와 장기발전위원회를 공동 구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시작한 장기발전위원회에선 ▲판매 ▲인원 ▲거점 ▲직무다각화 등을 의제로 삼아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다만 김진성 지회장은 “사측도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너무 이르지 않냐며 소극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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