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다가오는 미래차 시대, 고민 느는 부품업체
[커버스토리②] 다가오는 미래차 시대, 고민 느는 부품업체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5.04 00:20
  • 수정 2021.05.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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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업체 의존성 높은 '수직계열화'로 자구책 미흡
​​​​​​​노사정이 합심해 R&D와 인력양성에 주력해야

커버스토리 X 미래차 시대의 노동

130여 년 전 내연기관차는 이동수단의 혁명을 가져왔다.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차 시대는 아직 완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사실에 위기가 존재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과도기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긍정적인 사실도 있다. 아직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다. 미래차 시대의 노동이 어떤 모습일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커버스토리② 미래차 시대, 부품업체 위기의 출구는?

수많은 부품을 조립해야 한 대의 자동차가 만들어진다. 자동차산업은 다양한 기업의 협업이 필요하다. 이는 하나의 완성차업체가 자동차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산업은 ‘수직계열화’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완성차업체를 정점으로 수많은 부품업체들이 서열화돼 있다. 부품업체는 완성차업체에 의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그 미래도 완성차업체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미래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필요 부품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수직계열화 구조 아래 있던 하청 부품업체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자동차산업 대전환기 속 부품업체 현장의 고민을 살펴보기로 한다.

미래차 부품은 어떻게 바뀔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수소전기차로의 전환이 점차 빨라지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 전장부품화가 진전됨에 따라 배터리와 반도체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완성차 생산뿐만 아니라 부품 생산에서도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동력원이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바뀌면서 기존 엔진을 배터리와 모터가 대체하고, 내연기관차에서 필수였던 변속기가 전기차·수소전기차에 없어도 차의 성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엔진과 변속기를 만들던 부품업체의 생산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차의 진행 방향을 조절하는 조향장치나 충격을 흡수하는 현가장치, 섀시, 휠 등의 부품을 만들던 업체에서는 크게 부품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현대차·기아 1차 벤더인 ‘만도’가 있다.

김희준 만도노동조합 위원장은 “미래차 전환이 빨라지면서 생산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지만, 전통적 섀시 제품이 활용되기 때문에 기대감도 있다”며 “완성차의 미래 전략에서 현대모비스나 만도 정도 규모의 1차 벤더를 배제하고 가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전기차 부품 생산의 주역으로 떠오른 현대모비스의 경우 배터리팩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PE 모듈, 모터, 제어기 등을 생산하게 되면서 미래차 전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모습이다. 현대모비스 내 직원들은 회사가 모듈 오더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고용 유지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전속’이라 읽고 ‘종속’이라 쓴다, 위기의 부품업체

내연기관차의 종말이 거론되면서 고심이 깊어지는 곳은 엔진과 변속기 등의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융합금융처가 발간한 <KOSME 산업분석 리포트(자동차)>에 따르면 전기차 부품은 내연기관차 부품에 비해 약 37%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엔진과 변속기를 만들던 업체들은 대부분 미래차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현재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들은 A/S 납품 등을 포함해 막연히 10년 정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부품업체의 미래 전략 수립이 어려운 요인은 미래차 관련 정보가 완성차업체에 집중돼 있는 탓이 크다. 그동안 부품업체의 생산은 완성차업체가 설계한 도면에 따라 이뤄졌다. 이를 대여도 방식이라 부르는데 완성차업체 중심 수직계열화 구조가 형성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 방식에 따라 부품 생산 차질 위험을 최소화해 완성차업체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완성차업체의 위기가 부품업체 전체의 위기로 전이되는 취약점도 생겨났다.

또 부품 생산을 담당하는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몇 안 되는 국내 완성차업체에만 의존할 뿐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여력을 갖추지 못했다. 수직계열화된 구조에서 부품업체가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익을 내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보면 국내 부품업체들의 생존전략 수립이 어려운 건 당연한 결과다.

명화공업은 변속기 부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1차 벤더다. 명화공업은 그나마 수소전기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매출액의 1% 수준에 그치고 있고, 전기차 부품 수주를 위한 전략은 아직 찾지 못한 상황이다. 백선진 한국노총 금속노련 명화공업노조 안산지부 지부장은 “사업주 입장에서도 (미래차 대응방안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한다. (비슷한 사정에 처한 부품업체) 대부분이 전기차 부품을 수주한 업체와의 M&A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진 부품인 피스톤링과 실린더 라이너를 생산하는 유성기업은 어떨까. 김성민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 교육부장은 “노사협의회에 들어가 미래차 관련 질의를 했지만 (사측으로부터) ‘준비하는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전기차 부품업체들은 이미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위주로 다 선정됐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는 ‘하라는 것만 하라’던 완성차업체와의 전속거래로 부품업체가 자체 연구개발에 집중하지 못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R&D(연구개발)를 제대로 한다고 내놓을 수 있는 부품업체는 국내 부품업체 4,000여 개 중 80개가 채 안 된다”며 “완성차업체에서 (부품업체에) 새롭게 납품해보라고 제안해도 R&D역량이 부족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가오는 고용 절벽,
자동화·외주화로 불투명한 ‘10년 뒤’

부품업체의 미래 전략 부재는 생산직의 고용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유성기업의 경우 영동공장에 올해도 1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사업장 내에서는 ‘내연기관이 10년은 갈 것’이기에 설비 투자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처럼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동화로 생산량은 증가하는 반면 생산 인원은 줄어들고 있다. 부품업체뿐만 아니라 자동차업계 전반적으로 생산직의 추가 고용을 줄이는 추세다. 정년퇴직한 인력의 자리는 신규채용 대신 자동화된 기계가 대신하고, 이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변화에 더디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백선진 지부장은 “생산직 막내 조합원 연령이 40대다. 50세 이상 직원들은 정년퇴직이 가능하다고 보니까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인다. 미래차 전환이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성민 교육부장도 “(사업장 내) 평균 연령이 50대 초반이다 보니 앞으로 무엇을 하든 ‘10년은 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조합원들이) 지도부가 대응 전략으로 뭔가 하겠다고 하면 따르겠다는 수준이지, 미래차와 관련해 현장에서의 큰 고민은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수의 부품업체가 10년째 생산직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대신 관리직 및 IT연구·개발직 채용을 이어가는 추세다. 생산라인이 분주해지는 상황이 생기면 관리직을 라인에 투입하거나 비정규직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설사 신규 사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회사는 노동조합이 있는 기존 사업장의 노임단가가 맞지 않다고 판단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저렴한 외주생산 및 해외생산, 계열사 설립 등의 방안을 택하고 있어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대응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김희준 만도노동조합 위원장은 “미래차 관련 핵심 기술이 아니라면 (회사가) 외주업체를 통해 많이 생산하려는 지점에 와있다고 본다. 회사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어렵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현대모비스충주노조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2월 설명회를 개최한 이후 현대모비스 충주공장 간판이 사내하청업체(그린이노텍, 동우FC) 이름으로 교체되고 있다. ⓒ 한국노총 금속노련 현대모비스충주노조
한국노총 금속노련 현대모비스충주노조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2월 설명회를 개최한 이후 현대모비스 충주공장 간판이 사내하청업체(그린이노텍, 동우FC) 이름으로 교체되고 있다. ⓒ 한국노총 금속노련 현대모비스충주노조

일감 뺏길까 고민하는 ‘미래차 부품업체’

미래차 부품을 생산하는 부품업체에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전국 13개의 공장 중 창원과 울산, 진천 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공장을 협력업체를 통해 운영하고 있다. 협력업체 공장 10개 중 9개 공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에 있다. 이 중 충주공장은 복수노조 체제로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한국노총 금속노련이 함께 조직돼 있다. 교섭대표노조는 금속노조다.

문제는 현대모비스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불법파견’ 소지가 높은 운영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모비스 충주공장에서는 그린이노텍(1공장)과 동우FC(2공장)가 전기·수소전기차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1공장과 2공장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한국노총 금속노련 현대모비스충주노동조합(이하 충주노조)에 따르면 현장에서의 업무 지시 및 감독은 사실상 현대모비스에서 하고 있다.

이진규 충주노조 사무국장은 “공장 설비도 100% 현대모비스 소유다. 현대모비스가 개발해서 라인을 깔아주면 우리(그린이노텍·동우FC)는 관리 및 유지보수만 하면서 생산하는 사업장이라 자체적으로 부품을 개발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모비스의 이와 같은 생산방식은 충주공장 노동자들에게 완성차업체에 언제라도 일감을 뺏길 수 있다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미래차 부품 생산이 유망하게 떠오르는 가운데, 실제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울산현대모비스 모듈 라인 실사에 나서 금속노조 현대모비스울산지회가 이에 항의한 적도 있다. 완성차업체 노조로서는 아웃소싱했던 일감을 인소싱함으로써 부족한 일감을 충당하는 것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지만, 부품업체 입장에서 보면 이 방안은 일감을 빼앗기는 것일 뿐이다.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사이에 노노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진규 사무국장은 “예전엔 전부 내연기관차 작업이 주를 이루다 보니 당시 새롭게 투자가 이뤄졌던 전기·전자제어 장치 부품들은 하청을 줬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 변화로 원청에서 일감을 가져가려는 상황이라 위협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충주노조는 수집한 불법파견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고용불안 위협을 막기 위해 지난해 3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 어찌 풀어야 하나

기존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부품업체의 미래차 대응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먼저 노사가 상생을 위해 합심하고, 정부 지원을 통해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노사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소통해야 한다”며 상생을 위한 노사 소통을 자구책 마련의 최우선으로 꼽았다. 김현철 교수도 “노사가 상생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다. 정부도 (노사 상생의) 케이스를 발굴하고 연구개발 및 인력양성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용 문제와 관련해 “노동자 재교육을 통해 고용이 사라지는 쪽에서 새로 생기는 쪽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부품업체의 자가 정밀진단을 강조했다.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줄 수는 없으니, (부품업체 자가진단으로) 구체적인 사업장 특성을 고려해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대응도 필요하다. 김대근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모비스안양지회 지회장은 “현대모비스 내 10개 지회의 경우 지난해 임단협 별도합의안에 (노사 공동) 미래차위원회 운영을 포함시켰다. 전환기 극복을 위한 전문가 강연, 노사 토론 등을 통해 대응력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변화에 직면한 자동차산업에서는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한다. 여기서 생겨나는 일자리보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다는 점은 업체 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정보 교환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현대모비스 내 10개 지회가 연대해 미래차위원회를 운영하는 것과 같은 대응은 산업 전환기에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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