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자들] 스스로 고립하는 인간과 섬에 갇힌 동물들
[연결자들] 스스로 고립하는 인간과 섬에 갇힌 동물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7.22 00:05
  • 수정 2021.07.27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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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생태사진가의 ‘소박한’ 환경운동기
[인터뷰] 생태사진가 김연수, 김용재 부자

‘연결자들’을 찾아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연결자들을 찾았습니다. 총 22명을 만나 15개 인터뷰를 전합니다. 인터뷰는 우리 사회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건강─연결의 마음 △교육─연결의 과정 △정치─연결의 확장 △환경─연결의 뿌리 △경제─연결의 포용 다섯 개 파트로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다섯 개 파트에 노동을 굳이 넣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만난 연결자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이 ‘연결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로 꽉꽉 채운 인터뷰집을 만든 건 창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첫 시도가 더 의미 있는 다음 시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독자와의 연결을 기다리며, <참여와혁신>도 연결자로서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참여와혁신> 창간 17주년 기념호)

인터뷰_생태사진가 김연수, 김용재 부자

인간을 찍지 않는 사진이 있다. 야생동물을 중심에 두는 생태사진은 인간중심의 사고를 거부하는 듯하다. 야생과 인간의 경계선에 있는 생태사진가는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40년 동안 야생동물을 기록해온 김연수 생태사진가는 환경파괴와 기후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체감해왔다. 새벽과 저녁에 활동하는 야생동물을 촬영하기 위해 김연수는 40년 가까이 새벽길을 나서고 있다.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김용재 생태사진가도 함께 새벽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야생동물을 기록하고 있다.

(좌)김연수, (우)김용재 생태사진가 부자 ⓒ 황윤선 포토그래퍼 myeyesbaby@hanmail.net
(좌)김연수, (우)김용재 생태사진가 부자 ⓒ 황윤선 포토그래퍼 myeyesbaby@hanmail.net

“덕수궁에서 하는 게 어때요?” 인터뷰 하루 전인 6월 23일 걸려온 전화. 김연수 생태사진가가 인터뷰 장소를 야외로 바꾸자고 했다. 기존에 만나기로 한 장소가 이용하기 어려워졌을 거로 생각했다. 다음 날, 대한문 앞에서 만난 김연수 사진가와 김용재 사진가는 입장권을 끊고선 우리를 맞이했다. 입구를 지나 덕수궁 초입에 있는 커피숍 야외테라스에 자리하며 김연수 사진가가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얘기했다. “아무래도 야외에서 찍는 게 좋잖아요.” 햇볕이 좋은 맑은 날이라 고궁의 초록은 유난히 짙었다. 이틀 동안 연이어 내리던 비가 오지 않은 날이었다. 아마도 습관처럼 날씨를 확인하던 생태사진가는 일기예보를 보며 야외인터뷰를 생각했으리라. 40여 년간 자연을 누비며 살아온 저널리스트의 습성은 숨길 수 없었다.

생태에 미친 사진기자

생태사진가 김연수는 36년을 언론사 사진기자로 일했다. 그가 신문사에 입사한 80년대는 밀렵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천연기념물이 죽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한국조류보호협회와 동행 취재를 나선 어느 겨울. 그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를 보았다. 밀렵꾼의 총탄으로 죽어가던 죄 없는 생명체의 몸부림. 발버둥을 치던 큰고니는 치료 도중 쇼크로 죽어버렸다. 김연수는 생명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진 한 장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에 감흥을 주고 점진적으로 진정한 자연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면, 이 또한 소박한 환경운동이고 병들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오지를 찾아 생태를 기록하는 삶엔 위험이 뒤따랐다. 생태사진가가 거의 없던 초기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위장한 그를 주민들이 간첩으로 오인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폭격의 죽음을 가까스로 모면한 일도 있다. 슴새의 번식지인 전북 군산 옥도면 피음도(島)를 찾았던 1997년이다. 당시 피음도는 미군 전투기의 폭격연습장이었다. 폭격 일정을 잘못 전달받은 탓에 김연수와 일행은 F-16 전투기의 표적이 됐다. 간발의 차로 미사일을 피한 어선 위. 화염에 휩싸인 피음도를 바라보며 김연수는 죄의식을 느꼈다. “슴새들은 저 불덩이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잿더미로 변하면서 우리 인간들을 또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는 생태사진을 찍으며 인간 위주의 사고를 버리고 동식물과 더불어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기도 파주 공릉천에서 작업 중인 김연수 생태사진가 ⓒ 김연수
경기도 파주 공릉천에서 작업 중인 김연수 생태사진가 ⓒ 김연수

광주 민주화 항쟁, 88서울올림픽, 문익환 목사 방북,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만남,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김연수는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고, 받은 상장과 상패는 70개에 달했다. 특종을 쏟아내면서도 그의 마음 한편은 늘 야생동물을 향해있었다. 마감을 끝낸 금요일 저녁이면 멸종위기종을 담기 위해 생태 현장을 찾았다. 주말마다 전국의 면(面) 단위 이상 지역을 4번 이상은 다녔던 탓에 전국 지도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다.

그는 미친 듯이 생태를 기록했다. 수달을 찾아 강원도로 향하던 1994년 어느 밤, 도로 한복판에서 제동장치 고장으로 전복된 차에서 살아 나온 김연수는 아침 해가 뜨자마자 지프차를 빌려 수달을 향해 다시 내달렸다. 2007년 출간한 책에 쓴 가상의 사망 기사에선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그렸다.

“자신의 생일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 참수리(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둥지를 함경남도 신포시 바닷가 절벽에서 발견 후, 이 현장을 카메라에 담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89년간 이어온 호흡을 멈췄다.”

생태사진가를 보며 자란 아들

평일에는 사진기자로, 주말에는 생태사진가로. 금요일 아침에 집을 나가 일요일 밤이 돼서야 옷에 흙먼지를 묻히고 돌아오는 아버지. 가족보다 야생동물과 보낸 시간이 많았던 김연수를 어린 아들 김용재는 원망했다. 스무 살을 넘기기 전까지는 함께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의 관심과 시간을 독차지한 새도 싫었다.

그러나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탓이었을까. 어른이 된 김용재는 아버지 김연수와 함께 생태사진을 찍고 있다. 야생동물 기록에 전념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자연을 쫓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아버지를 보면서 다짐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같이 카메라를 들고 주말이면 습지로, 갯벌로, 들녘으로 나가게 됐다. 아버지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내가 하고 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각자의 컴퓨터에 앉아 사진을 옮기고 자료를 정리한다. 매번 길을 나설 때마다 언제 또 아버지랑 같이 길을 나설 수 있을지 생각한다.”

제주도에서 작업 중인 김용재 사진가 ⓒ 김연수
제주도에서 작업 중인 김용재 생태사진가 ⓒ 김연수

처음 생태감수성을 느낀 것도 그토록 싫어하던 새들의 비행 연습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중국 동북임업대학 유학 시절, 내몽골 습지에서 본 시베리아흰두루미와 황새 떼의 움직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 김용재는 졸업할 때까지 두루미에 빠져 살았다.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의 이동 경로를 쫓기 위해 중국의 동북3성과 내몽골의 습지, 양쯔강 중하류를 넘나들곤 했다. 그는 두루미를 통해 생태 보존에는 국경이 없다는 걸 실감했다.

“두루미는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인 멸종위기종 중 하나이지만 번식지와 일부 월동지가 중국, 러시아, 일본에 분산되어 있다. 두루미의 서식지 보전은 어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동북아시아 각국의 협력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김용재는 중국 정부의 토목사업으로 사라지는 야생동물 서식지를 보며 생태기록에 발을 디뎠다. 한국에 돌아온 뒤부터 본격적으로 생태사진가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첫 생태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현재는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의 간사도 맡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카메라를 쥐게 된 그는 환경파수꾼으로서 자신만의 길을 점차 개척하고 있다.

야생동물의 삶, 기후위기의 현주소

야생동물을 지켜보는 게 생태사진가의 일이다. 인간 중 기후 위기에 따른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기후가 변하면 프레임 속 야생동물과 그들의 삶도 달라진다. 김연수와 김용재 부자는 현장에서 목격한 변화를 이야기했다.

김연수 “진작부터 한반도는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는 중이다. 여러 징후가 있다. 내가 쫓아다니는 조류의 경우, 아열대 지방에 살던 종들이 최근 이 땅으로 오고 있다.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안 보이던 새들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던 새들이 더 북쪽으로 옮겨가는 걸 보기도 한다. 사과 재배단지가 북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용재 “검은이마직박구리처럼 원래 대만이나 홍콩 등의 남쪽에 서식하던 종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번식한 게 확인됐다.”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서식지 파괴다. 녹아버린 빙하로 살 곳을 잃어가는 북극곰을 떠올리면 쉽게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한반도와 친근한 동물을 찾는다면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331호, 멸종위기야생동물2급)이 있다. 백령도의 물범바위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관찰되는 점박이물범은 서해를 상징하는 깃대종이다.

백령도의 물범바위 위 점박이물범들 ⓒ K-Wild
백령도의 물범바위 위 점박이물범들 ⓒ K-Wild

최근에는 온난화로 인해 점박이물범이 번식하는 바다가 얼어붙지 못하고 있다. 새끼를 낳아 기를 유빙 서식지가 사라져 감에 따라, 점박이물범의 멸종은 가속화될 우려가 크다. 백령도 주민이 2020년에 실시한 모니터링에 의하면, 백령도에 서식하는 점박이물범 수는 약 180마리다. 서해 전체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는 1,500마리에 불과하다. 현재 백령도에는 점박이물범을 지키는 황해물범시민사업단과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모임이 활동 중이다. 두 생태사진가는 백령도를 찾아가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 K-Wild)
*깃대종: 생태계의 여러 종 가운데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종으로, 한 지역의 생태계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동식물

저어새 둥지에 나타난 낯선 것들

저어새는 두 사진가에게 각별한 피사체다. 주걱 모양의 독특한 부리를 지닌 저어새는 논에서 고개를 저어가면서 먹이를 찾는다.

김연수는 절멸 위기에 있던 저어새 번식지를 찾아낸 때를 잊지 못한다. 1996년, 김연수는 고 김수일 교원대 교수와 함께 NLL에 인접한 서해 무인도에서 저어새가 번식 중인 현장을 기록했다. 덕분에 지구상에 669마리에 불과했던 저어새의 복원 활동이 활발해졌다.

김용재도 저어새를 기다렸던 영종도 습지를 가장 인상적인 촬영지로 꼽았다. 군대를 갓 제대한 여름, 1년간 영종도에 머무르며 아버지 김연수와 함께 틈만 나면 송산유수지와 홍대염전에서 모기떼에 잔뜩 물려가며 저어새를 기다렸다.

저어새의 개체 수는 90년대 중반보다 늘어난 4,000마리에 달하지만, 여전히 긴박한 멸종위기종이다. 김용재는 저어새가 처해있는 상황이 위태롭다며 우려를 표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생각만큼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 마음이 무너져 내린 건 몇 달 전이었다. 작년 생의 명아주 줄기만 있어야 할 저어새 둥지에 낯선 것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가 확인한 저어새 둥지에는 자연처리가 불가능한 과자봉지, 라면봉지, 종이컵 등이 명아주 줄기와 뒤엉켜있었다. 둥지 재료가 오죽 없었으면 그것들로 집을 지었겠는가만, 얼마나 쓰레기가 많았기에 둥지 재료로 썼을까 싶었다.”

김용재는 “다리 건설, 댐 건설, 농수로 개설, 갯벌 매립, 쓰레기 대량 발생 등으로 인간 이외의 생물이 발을 딛고 살아갈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미국의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이 찍은 죽은 알바트로스 뱃속에는 온갖 플라스틱 덩어리가 섞여 있었다. 먼 바다 너머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용재 생태사진가 ⓒ 황윤선 포토그래퍼 myeyesbaby@hanmail.net
김용재 생태사진가 ⓒ 황윤선 포토그래퍼 myeyesbaby@hanmail.net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부자의 작업은 침묵 속에서 이어진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소리를 내면 사진을 찍을만한 거리를 주지 않는다. 촬영의 성공 여부를 사진가가 아닌 야생동물이 결정한다. 동물이 거리를 줄 때까지 생태사진가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야만 한다. 문화일보의 2003년 기사는 김연수의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적 드물고 접근하기 힘든 곳에 살고 있는 희귀동물들은 대부분 야행성이고 숫자가 아주 적어 촬영과정은 조심스러운 긴장의 연속이다. 민통선 이북 철원평야에서 겨울을 나는 천연기념물 202호인 두루미를 사진에 담기 위해 그는 지난 5년간 겨울철이면 토요일 밤마다 철원을 찾았다. 먼동이 트기 전 현장에 들어가 한나절 내내 위장 텐트 안에서 식사와 배설을 해결하며 망원렌즈로 두루미를 관찰하고 촬영했다.”

- 문화일보, 2003년 1월 7일, <희귀동물 추적 ‘집념의 여로’ 18년> 中

작업 방식은 종에 따라서 다르다. 사람과의 거리를 안 주는 종들이 있고, 비교적 사람을 덜 경계하는 동물이 있다. “가까이 가려고 하지 말고 쫓아가지 말고 잘 나타나는 곳에서 기다려야만 한다”는 게 김연수의 생태사진 지론이다. 김연수는 “동식물을 찍는 분들이 많이 늘고 있지만 사진에 욕심만 채우다 보면 자연과 환경을 아끼는 생태사진가가 아니라, 자연과 환경을 훼손하는 파괴사진가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며 “생태사진은 결국 자연을 사랑하는 과정이 되어야지,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태사진 입문자들에게 제언했다.

김용재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때로는 사진으로 촬영되는 결과물보다 그냥 그 순간에 집중하는 때가 있다”며 “사진을 찍는 ‘결과’에 집중하기보다 바라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에 그렇다”고 했다.

두 사진가는 현장에서 가장 거리를 안 주는 동물로 네 발 달린 동물을 꼽았다. 후각이 발달한 탓에 이미 냄새로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오늘 가자마자 건지는 사진은 없다. 생태사진은 절대로 그렇게 찍을 수 없다. 오랜 세월 교감이 더해져야 한다. ‘아, 저 사람이 나에게 해롭지 않아, 아 저 사람은 그냥 여기서 만나는 사람이야’라는 걸 인식을 시켜야 한다. 수달을 찍기 위해서 거의 1년을 주말마다 내려갔다. 10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한 번을 못 보는 날도 있었다.”

생태사진가는 한낮에는 사진을 찍을 일이 거의 없다. 야생동물이 주로 새벽과 저녁에 활동하기 때문이다. 김연수는 한평생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다. 40년 가까이 달렸던 새벽길엔 아들 김용재가 함께 한다. 요즘처럼 일찍 동이 트는 시기면, 해가 뜨기 전부터 길목에서 야생동물을 기다린다.

스스로 고립하는 인간과 섬에 갇힌 동물

생태사진가 김연수와 김용재는 인류의 개발과 도심 속 생태를 어떻게 바라고 있을까. 두 사람은 개발로 인해서 인간과 자연이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용재 ‘고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인류는 기후나 자연환경에 맞는 재료와 방식으로 집을 짓고 살아왔다. 지금은 자연에서 벗어난 도심에 모여서 살고 있고, 살아가는 터전인 집이 부동산 가치로만 여겨지는 것 같다. 내가 사는 곳 주변만 봐도 자연과 어우러져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심 속 생태는 우후죽순 솟아나는 아파트만 그려진다. 지구라는 대자연에서 우리는 도시로, 인간 밀집 거주 지역으로 고립되어가는 느낌이다.

김연수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파괴되었던 녹지공간이 지금은 많이 복원되고 공원도 많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도시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서울은 차치하고, 경기도 전체가 도시화되고 있다. 산과 강이 이어져야 동물들이 이동하고 생활하는데, 지금은 모두 섬에 갇혀 있는 국면이다. 새나 동물들은 먹이를 따라, 짝을 찾아 계절별로 이동을 많이 한다. 곳곳을 차지한 빌딩과 도로는 이러한 이동을 원천봉쇄한다. 날개 달린 새들은 대체 서식지를 찾아 날아갈 수 있지만, 포유류와 양서류들은 그나마 남은 작은 폐쇄공간에서 근친교배를 하다가 결국은 모두 사라질 거다.

김연수 생태사진가 ⓒ 황윤선 포토그래퍼 myeyesbaby@hanmail.net
김연수 생태사진가 ⓒ 황윤선 포토그래퍼 myeyesbaby@hanmail.net

40년간 자연 현장을 찾아 생태사진을 찍어온 김연수는 그가 사랑하던 지역이 개발로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태사진을 찍기 위해 찾았던 곳에는 건물이 서고, 도로가 통과하고, 댐이 생겼다. 하천은 시멘트로 덮여 버렸다. 지금도 남아있는 추억의 장소가 거의 없다. 겉은 깨끗하게 단장됐을지 모르나, 그 속의 생태계는 이미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음을 느낀다.

생태사진을 찍을수록, 두 사진가는 인간중심사고가 모든 생명체의 삶을 망치고 있음을 체감한다. 현장에서 너무나 많은 쓰레기를 본 김용재는 가급적 일회용품 사용을 피하고 있다. “먼 바다에 나가도 온갖 쓰레기가 서로 엉켜서 띠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대부분이다. 쓰레기를 섭취한 해양생물은 다시 우리 식탁에 오르니,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독을 주사하고 있는 셈이다.”

너무나 많은 자연훼손을 보아온 김연수는 인간이 그칠 줄 모르는 개발과 소비 욕구를 늦추길 바란다고 했다. 특히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생태사진을 통해서 대중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물었다.

김용재 우리가 멸종위기종이나 야생동물을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야생동물의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그들이 설 자리가 남아있을까 싶다. 사실 이미 불타는 도서관에 뛰어 들어가 다시는 펼쳐보지 못할 책들의 제목을 적는 행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글자라도 더 남기려는 노력은 아마 지구상에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 하나만 남게 되었을 때의 적막감 때문에, 혹은 우리가 더 암울해지지 않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김연수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모두 깨닫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 그칠 줄 모르는 인간 위주의 욕심에서 한발 물러나, 우리 후손들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자연환경을 사랑하고 아끼는 지혜를 생태사진을 통해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더는 바람이 없다.

공통질문 ‘내가 경험한 연결의 순간’
김연수 자연 현장을 휴일마다 누비고 다니다 보니 가정생활은 빵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들도 이러한 현장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공통 관심사를 얘기하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올해 5월부터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송출하는 유튜브 채널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부자 관계가 더 돈독해질 것 같다.

김용재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아버지랑 같이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서는 나를 보며 내가 이미 어른들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을 느낀다. 해 뜨기 전에 갯벌이든 바다든 어딘가에 앉아서 해가 저물 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누는 대화는 사실 많지 않다. 서로 할 말을 만조로 차오르는 물 위에 묻어둔 채 아버지와 같이 세월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여담
김연수, 김용재 생태사진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유튜브 채널 ‘K-Wild’를 방문해보자. 두 사람이 힘을 합해 만든 영상물은 지상파 방송사의 자연 다큐멘터리 못지않다. 짧은 시간 안에 야생동물들의 생활과 그들의 현재 상황 등을 담백하고 잔잔하게 담아냈다.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을 기교나 유머, 자극적 멘트는 없다. 야생동물의 위기를 전하고 있지만, 자연을 담고 있기에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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