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자들] 모두가 ‘나답게’ 사는 사회를 향해서
[연결자들] 모두가 ‘나답게’ 사는 사회를 향해서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7.22 00:15
  • 수정 2021.07.23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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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훈련, 내 삶을 찾아가는 여정
[인터뷰]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연결자들’을 찾아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연결자들을 찾았습니다. 총 22명을 만나 15개 인터뷰를 전합니다. 인터뷰는 우리 사회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건강─연결의 마음 △교육─연결의 과정 △정치─연결의 확장 △환경─연결의 뿌리 △경제─연결의 포용 다섯 개 파트로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다섯 개 파트에 노동을 굳이 넣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만난 연결자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이 ‘연결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키워드로 꽉꽉 채운 인터뷰집을 만든 건 창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첫 시도가 더 의미 있는 다음 시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독자와의 연결을 기다리며, <참여와혁신>도 연결자로서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참여와혁신> 창간 17주년 기념호)

인터뷰_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구조에선 온전히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할 자유가 사라진다. 권리를 박탈당하는 쪽은 대체로 소수자나 약자이다. 비정상으로 여겨질 정체성을 숨기거나, 정체성을 드러내고 돌을 맞으며 살아가야 한다. 물론, 다른 길도 있다. 다양한 정체성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다양성 사회가 만들어지면 언제나 밖으로만 내몰리던 소수자가 사회와 연결될 수 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한술 더 떠 “약자, 소수자뿐 아니라 모두가 나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달성한 시대다. 법안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뚜렷하다. ‘국내 유일의 다양성 훈련 비영리단체’ 한국다양성연구소의 김지학 소장을 만나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사진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초등학생 김지학의 꿈은 화가였다. 중고등학생 때는 디자이너를 하고 싶었다. 의사가 돼라는 부모님의 반대에 꿈은 가로막혔다. 무기력한 학창 시절이었다. 결국, 의대는 떨어지고 의학전문대학원을 갈 방편으로 마음에도 없는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군대 전역 후, 그는 답답했던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상담사로 진로를 정했다.

상담대학원을 목표로 진학한 미국 대학 심리학과에서 다양성에 눈을 떴다. 당시 멕시코에서 온 여성 교수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관해 알려줬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상을 들려줬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흑인이 깡패, 마약상으로 많이 나온다. 흑인은 무섭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편견과 오해가 흑인을 억압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미국에 사는 흑인 남성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경찰 조심하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더라. 뭐든 시키는 대로 해라, 멈추라면 멈춰라, 손바닥을 보이라면 보여줘라, 신분증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 넣지 마라, 총 맞아 죽는다는 등. 20대 흑인 남성들은 피부색을 이유로 어려서부터 그런 경찰에 대처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김지학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라 느끼지 못했던 인종차별을 알게 됐다. 소수의 정체성과 약자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속에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겪었던 학력‧학벌 중심주의적 억압과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결국 같은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 끝에, 그는 다양성 교육과 훈련을 업으로 삼고 있다.

다양성 사회, 지지자들 많아져야 한다

다양성을 알리는 훈련과 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말하는 다양성은 무엇인가.

다양성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권력에 대항하는 관점이다. 또 그 권력을 허무는 실천이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파악하는 것, 그 권력에 도전하고 권력을 허무는 것이 다양성이다. ‘너도 맞고, 나도 맞고, 이 세상 모두의 얘기가 다 맞다’고 하는 건 다양성이 아니다. 누군가는 ‘여성에 관한 차별이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왜 다양성으로 인정 안 해주느냐. 다양성연구소라면서 왜 내 생각은 존중해주지 않느냐’라는 말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다양성 사회로 가려면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명확하게 다양성을 알아야 한다.

다양성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한 가지 정체성에만 집중하는 오류를 범한다. 가령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면서 남자는 무조건 강자이고, 나의 적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남성이 난민이든, 이주민이든, 성소수자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남자라는 성별만 보고 여성의 적, 무조건 욕해도 되는 존재, 함께 연대할 필요가 없는 존재, 어떠한 경우에도 소수자가 아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모든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포함하는’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 가지 정체성에 의해서 억압그룹에 속할지라도, 또 다른 사회적 정체성들에 의해서는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걸 주의해야 한다.

연구소에선 최근 ‘이대남’ 프레임에 대한 비판도 했다.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남자라서 차별받는다’고 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정치세력화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남성 차별’이란 주장에 굉장히 힘을 실어준다. 개인적으로 20대 남성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지 않는다. 20대 남성 중에도 페미니스트가 많고, 노동 이슈에 대한 고민이 깊은 분들도 많다. 전체가 그런 것도 아닌데 20대 남성 을 여성 인권과 성평등에 반대하는 세력인 것 처럼 프레임을 짜면서 권력을 가지려는 정치인이 탄생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굉장히 부적절한 시도고 나쁜 프레임이다. 취업난, 장시간 노동, 과로, 스트레스, 산재사망과 같은 차별과 억압은 남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경험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만드는 착취구조 때문이다. 군대 문제 역시 국가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문제다. 연공서열과 학력·학벌 중심적인 구조는 보지 않고, 온 세상을 남녀로만 바라보면 정말 그런 엉뚱한 생각이 나올 수 있다.

ⓒ 사진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다양성 훈련과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가.

권력 관계를 아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회적 정체성이 있다. 그 정체성마다 권력 관계가 있다. 비장애인, 이성애자, 시스젠더, 남성 등 권력을 가지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정체성에 속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낙인찍고, 그들을 ‘잘못됐다’, ‘틀렸다’고 몰아갈 수 있다. 비정상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은 일자리, 명예, 인적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차별할 근거를 마련하는 거다. 자본주의와 노동이 다양성과 연결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비정상이라고 낙인찍고 배제함으로써 자원에 다가오지 못하게 만든다.
*시스젠더: 성기 모양만으로 정해지는 ‘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자본주의와 노동이 다양성과 이어지는 지점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자본주의사회에선 유용하고 효율적인 사람을 옳다고 본다.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여기는 인식이 현대인에게 내재해있다. 모든 사람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녀야 하고, 모든 사람의 노동이 가치 있다는 게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의 방향성이지만 쉽지 않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선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데 어떻게 저 사람과 내가 같을 수 있느냐’는 인식이 팽배하다. 반대로 무시당하는 사람들도 ‘내가 잘나지 못해서 차별받는다’라는 식으로 억압을 내재화한다. 차별과 억압이 공고해지는 거다. 사회적 정체성으로 인한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적 자원에 대한 분배가 차별과 빈곤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는 다양성하고 연관될 수밖에 없다.

다양성 운동을 소수자 운동이라고 봐도 무방한가.

조금 다르다. 소수자 운동은 대부분 당사자 운동이다.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양성 운동은 그와 동시에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지지자로 만드는 운동을 전개한다. ‘지지자 가시화 운동’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차별 반대 운동에 동참하는 특권그룹 사람들을 만드는 게 다양성 훈련의 특징이다.

‘지지자 가시화 운동’을 주요 과제로 내건 이유는?

다양성 사회 만들기를 소수자에게 미뤄둬선 안 된다. 지지자의 결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물론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서 권리를 신장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소수자, 당사자의 목소리만으로는 사회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지자들이 힘을 보태야 이 세상이 바뀐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성평등 실현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남성, 장애인인권운동에 같이 목소리를 내는 비장애인, 성소수자 차별반대에 동참하는 비성소수자들이 있어야 한다.

ⓒ 사진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대학 졸업 후, 김지학은 인권을 배울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모든 수강 과목을 소수자와 관련된 과목으로 신청했다. 석사과정에서 만난 지도교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도교수는 백인 남성 게이이자 가톨릭 신자다. 신앙을 유지하면서 백인 남성 파트너와 10년 넘게 살고 있다. 프랑스에서 입양해온 아들도 있다. 둘은 다른 부모들처럼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자녀 교육을 걱정하며 살았다. 지도교수의 일상을 통해서 김지학은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의 삶이 정말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정체성을 밝히며 생활하는 그의 삶엔 ‘나다움’이 있었다.

고정관념 없는 사회 속 자유로운 삶

다양성을 전공했다. 다양성의 관점을 받아들인 이후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지고 해방된 삶을 살게 됐다. 억압과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으니 삶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정할 수 있었다. 나는 남성으로 지정 성별이 정해진 뒤 남자다워야 한다는 생각, 남자다운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남자라면 돈을 많이 벌여야 한다는 생각 속에 살았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인권활동가를 한다고 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다 걱정했다. ‘남자가 그런 걸 해도 돼?’, ‘돈도 못 버는데 처자식은 먹여 살릴 수 있겠어?’라며. 이런 남자다움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에는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기제가 담겨있다. 다양성의 관점을 받아들인 후엔 내 삶의 행복과 만족이 어디서 오는지를 살필 수 있었고, 내 삶의 목표를 내가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정말로 만족스럽고 기뻤다.

다양성 사회가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얘기인가.

성차별이 없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없는 사회에선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기제가 사라진다. 여성이 해방되는 사회는 남성에게도 해방을 준다. 마찬가지로 성소수자가 자유롭고 해방된 세상에서는 비성소수자도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남녀 구분 없이 더 나답게 살게 되는 거다. 그래서 다양성 사회는 모두에게 중요하다.

해외에선 아이에게 성별 정체성을 알리지 않은 채 육아를 하는 사람도 있는 거로 안다. 다양성 훈련이 이러한 삶과 맞닿아있지 않을까 싶다.

외부 성기 모양으로 아이가 남자나 여자라고 정해주는 걸 지정 성별이라고 한다. 지정 성별에 의해서 ‘우리 아이는 아들입니다, 딸입니다’라고 부모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면, 사회적으로 그 성별에 고정된 상호관계가 이뤄진다. 가령 남자아이라면 바지를 입히고, 파란색 물건을 주고, 로봇을 사준다. ‘농구‧축구 잘해라’, ‘씩씩해라’, ‘울면 안 돼’라고 말하고 ‘수학‧과학 전공해라’, ‘돈 많이 버는 일을 해라’라고 가르친다. 여자아이라면 빨강‧분홍치마를 입히고 ‘얌전해야 한다’, ‘애교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아이 대하는 방법이 획일화되면 아이는 나답게, 있는 모습 그대로 자라지 못한다. 그 또한 자유를 억압당하는 거다.

ⓒ 사진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 사진 남궁경상 포토그래퍼 boriwoll@hanmail.net

다양성 교육‧훈련은 어떻게 진행되나.

미국 유학 중 일했던 인권단체 ‘NCCJ’에서 다양성 훈련(diversity training)을 배웠다. 다양성 훈련에 오면 내가 언제 차별받는지, 언제 차별하는지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가령 남성 비장애인 청소년이 왔다고 해보자. 오전에는 청소년이라서 겪는 차별을 경험한다. 오후가 되면 같은 청소년이지만, 남성으로서 여성을 차별할 수 있다는 걸 학습한다. 또 저녁이 되면 성별과 상관없이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차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차별받는 정체성과 차별할 수 있는 정체성을 오가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 그 정체성에 의해서 가지게 되는 권력과 사회적 위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거다.
* NCCJ: National Conference for Community and Justice

연구소를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활동비와 인건비가 부족하다. 연구소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 교육‧훈련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게 하루하루 기쁨이다. 그런데 지금 후원비로 감당할 수 있는 인건비는 3명 중에 1.5명 정도 수준이다. 그래서 외부 사업으로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하고, 그것으로도 안 되면 내가 특강을 뛰어서 직원들 인건비를 주기도 한다.

기업 등의 지원을 받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기업의 지원금을 받는 단체에서 다양성 훈련을 한 적도 있다. 귀국 직후였는데, 기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하니 돈 걱정 없이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돈을 준다고 해서, 편하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지원하는 기업에서 연말에 자신들이 펼친 사회공헌 사업을 홍보한다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국 청소년들만 둘러앉아 있으니 소위 ‘그림’이 안 나온 거다. ‘얼굴 까만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봉고차로 이주 결혼 여성들을 실어다가 청소년들 중간에 한 명씩 앉혔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양성 훈련이 기업의 돈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뒀다. 우리의 미션을 알리고, 그 뜻에 공감해서 지지하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한국다양성연구소를 설립했다.

스스로 소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양성을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퍼지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인권의 개념이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아서다. 인권이 애초에 ‘내 것’이었던 적이 없다. 가정과 학교에서 인권과 다양성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인권을 누려야 한다는 걸, 인권이 내 것이라는 걸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남도 인권을 누려야 할 사람이란 걸 모른다. 내 인권은 알려주지 않고,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지켜주라고 말하니까 불편한 거다. 나의 인권을 알아야 차별과 억압을 겪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고, 그래야 남들이 경험하는 차별도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인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나의 인권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인권을 누리려면 사회구조가 평등해져야 하고, 그 구조가 다른 사람의 인권과 연결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과거와 비교해 변화를 체감하는가.

인식 수준의 변화는 청소년 교육을 하면서 정말 크게 느낀다. 6년 전 귀국했을 때만 해도, 페미니즘이 뭔지 LGBTQIA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평등의 중요성을 안다. 10대 청소년 대부분은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정말 5~6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인식 수준의 향상이 있었다. 문제는 법과 제도가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 LGBTQIA: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Intersex, Asexual

공통질문 ‘내가 경험한 연결의 순간’
소수자와 내가 연결돼있다는 걸 느꼈을 때다. 인권을 배우고 다양성의 관점으로 사회를 보게 되면서 나와 소수자가 경험한 억압이 같다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적 부모님으로부터 느꼈던 억압과 흑인·여성 등 소수자가 겪었던 억압은 다르지 않았다. 돈 많이 버는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 피부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원의 분배에서 배제당하는 것 모두 자본주의적 억압과 사회구조적 문제에 의한 일이다.

여담
김지학 소장도 지정 성별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를 키우려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밝혔다.
“우리 부부도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엔 주변에서 성별을 물어보면 ‘얘가 안 정해서 몰라요’라고 답했다.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녀딸을 ‘공주’로 대하면서 드레스를 사준다. 또 집에서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을 만한 미디어를 못 보게 하더라도 다른 곳에 가면 접하게 된다. 어린이집에 가면 지정 성별이 여성인 친구들은 다 분홍색, 빨간색 옷을 입고 있다. 사회화는 집 밖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에 집에서만 성역할 고정관념 없이 키운다는 건 쉽지 않았다. 가정에서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 게 있다. 결국, 사회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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