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혁신이 만난 사람들
참여와혁신이 만난 사람들
  • 천재율 기자
  • 승인 2023.12.29 17:06
  • 수정 2023.12.29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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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은 사회에서 대단한 주목을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묵묵히 다하며 우리 주변을 채워온 이웃들을 만난 조명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그들이 일궈가는 삶의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자기 신체 일부 같다던 일터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일터를 지키며 살가운 미소로 반기고 있었습니다.

2022년 12월호에서 소개됐던 종로 3가 골목길 꽃집 차오성 사장님은 여전히 꽃으로 골목을 환하게 밝히고 계셨어요. 2023년 1월호 김승수 합동정밀 사장님은 찾아간 날 당장 저녁까지 마쳐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사진만 촬영했습니다. 취재할 당시에도 바쁘셨는데 여전히 일이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2월호 전농동에 계시는 김길순 할머니는 찾아뵐 때마다 일감을 인근 시장에서 받아와 작업하고 계셨는데 도라지를 쪼개고 계셨어요. 재미있었던 점은 할머니의 집이 사랑방이다 보니 잠깐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찾아온 이웃들이 하나, 둘 도라지 쪼개는 일에 손을 보태더군요. 일손을 나누는 것이 참 보기 좋다고 말씀드리니 “우리 엄마(김길순 할머니) 저녁까지 일하면 안 되니까”라고 말하며 웃으시더군요.

서울 종로구 종로 3가 7 골목길, 2023.12.27
서울 종로구 종로 3가 7 골목길, 2023.12.27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산림동 합동정밀, 2023.12.27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산림동 합동정밀, 2023.12.27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023.12.26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023.12.26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월호 마포시장에서 침구 가게를 해온 장봉순 할아버지와 이일광 할머니는 연로하신 탓에 일을 그만두실 수밖에 없어 12월 중순에 가게를 내놓으셨어요. 손때 뭍은 가게를 떠나 이제는 집에 계시는데 오래간만에 사람이 찾아오니 아주 반갑다고 하셨습니다. 장봉순 할아버지는 마침 외출을 하셔서 뵙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건강하시다더군요. 4월호 한대식 문경시보리 사장님은 하시는 일 외에도 단체나 모임에서 맡은 직책과 일들이 많은데요. 연말이라 일이 좀 줄어들어 여유가 생긴 김에 여기저기 다니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5월호에서 만난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김말자 씨는 작업장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여전히 바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함께 일하시는 분과 점심을 드시기 전이었는데 얼마 전 얻어온 김장김치가 맛이 잘 들었다면서 한 포기 가져가라는 것을 일정이 있다고 거절했는데 한 조각 먹고 난 뒤 맛이 기억에 남아 후회가 되더군요. 7월호 임남천 진성주물 사장님은 저녁에 막걸리 한 잔을 하고 계셨는데 작업장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강요(?)를 해서 기어이 작업장으로 모셔왔어요. 앞서 취재할 때는 과정을 좀 쑥스러워하셨는데 막걸리 몇 잔에 불콰해진 얼굴로 사진을 촬영했는데 편안해 보이시더군요. 전에는 몇 번을 물어야 답을 해주셨는데 묻지 않아도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새해에는 ‘술터뷰(술 마시며 하는 인터뷰)’를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2023.12.26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마포구 공덕동, 2023.12.26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산림동, 2023.12.26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산림동, 2023.12.26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종로구 창신동, 2023.12.23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종로구 창신동, 2023.12.23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산림동, 2023.12.27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산림동, 2023.12.27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8월호 고덕근 호남이발소 사장님은 10월호에서 만난 양성섭 백영세탁 사장님을 소개해주신 분인데요. 두 분이 운영하는 이발소와 세탁소는 열 걸음걸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릉이를 타고 지나다 본 노랗게 칠해진 이발소 벽이 예뻐서 ‘왜 노란색으로 칠하셨습니까?’라고 묻고 싶어 고덕근 사장님에게 인터뷰를 처음 요청했을 땐 거절하셨습니다. “아이고 인터뷰는 무슨···.”이라면서요. 그럼 이발이라도 하면서 얼굴을 익혀보자 해서 다시 찾아가니 보자마자 “인터뷰 안 해요”라고 하시더군요. 이발하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씀드리고 이발하는 동안 한두 마디 나누다가 결국 마감 시간에 허락을 받고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납니다. 대화하는 동안 조금 이따가 온다며 쫓기듯 말하고 나가는 손님, 기다리는 손님, 머리 감는 손님···. 이발소는 찾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0월호 양성섭 사장님은 여전히 바쁘셨습니다. 저 멀리 가게가 보일 즈음부터 수증기가 만두가게처럼 푹푹 올라오고 있더군요. 다섯 개가 넘던 인근 세탁소들이 다 떠나고 동네의 마지막 남은 세탁소가 되니 일거리가 끊이질 않는데 거기에 오고 가는 이웃들 하나하나 다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니 언제나 이 골목을 찾을 때마다 백영세탁소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2023.11.03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종로구 창신동, 2023.11.03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종로구 창신동, 2023.11.03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종로구 창신동, 2023.11.03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9월호 안효성 세븐웰 대표님은 수제화 장인이지만 발바닥 모양에 맞는 특수 깔창 제작을 겸하고 계셨는데요. 수북하게 쌓여있는 작업 중인 깔창들을 보니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평생 일궈온 기술만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해 발전하는 그의 유연한 태도는 어쩌면 제가 앞으로 만날 이들과 함께 고민해봐야 할 주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월호 방영만 연남자개고가구전문점 대표님은 11월을 끝으로 공장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일을 그만둔 가장 큰 원인인 어깨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쳤고 최근 재활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이 여유가 달갑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재활만 마치면 뭐든 새로 시작해볼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야 한다”면서요. 마지막으로 12월의 윤만걸 석공예 명장님은 당장 맡은 일을 위해 현장으로 가야 하는데 서울에서 온다는 기자를 맞이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 도착 시각에 맞춰 역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내년에도 전국에 문화재 복원 작업들이 잡혀있어 연말이 연말인 것 같지 않다며 웃으셨습니다.

갑작스런 취재 요청에도 곁을 내어준 모든 취재원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참여와혁신은 새해에도 우리 주변을 밝히는 이웃들의 삶을 묵묵하게 담아가겠습니다.

서울 중구 봉래동, 2023.12.22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12.22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마포구 서교동, 2023.12.21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마포구 서교동, 2023.12.21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2023.12.29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2023.12.29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