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자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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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율 기자
  • 승인 2023.11.03 17:40
  • 수정 2023.11.03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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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부모님께 허락받지 못한 외박을 벼르다 형편 좋은 친구 집에서 자게 됐을 때 자개장을 처음 봤다. 작지 않은 방의 한 벽을 그득하게 차지하고, 선 자리마다 색이 달라지는 문양에 위압감을 느꼈다. 여닫이문을 열었을 때 쿰쿰한 나프탈렌 냄새와 켜켜이 쌓인 두툼한 목화솜 이불, 양단 베개들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부러운 마음에 어른이 된다면 집 한켠에 자개장을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고 마는 다른 여러 다짐처럼 잊었다. 그러다 최근 옛것을 다시 찾는 풍조가 돌면서 자개장의 수요가 생기고 있다는 소식에 친구를 부러워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며 서울 연남동에서 자개고가구 복원 전문점을 운영하는 방영만 대표를 찾았다.

용인에서 태어난 그는 녹록지 않은 환경에 육 남매 중 장남이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됐다. 2년 정도 충남 부여의 한 매장에서 점원 생활을 하다가 집으로 되돌아왔더니, 아버지의 권유로 친척에게 배우게 된 일이 나전칠기였다. 조개껍데기를 여러 형태로 잘라 모양을 내 옻을 칠한 기물과 가구에 붙이는 칠공예 장식기법을 나전칠기라 한다. ‘나전’이라는 말은 한국·중국·일본에서 공통으로 쓰는 한자어로 우리는 예부터 ‘자개’라는 고유어를 사용해 왔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잔심부름만 하며 기술은 얼마 배우지도 못한 채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제대로 된 기술은 다른 공장으로 옮기고 나서야 익히게 됐다. 어엿한 기술자가 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다. 일을 시켜도 인건비를 주지 않아도 되고, 기술자를 공돌이라 천대하던 시절의 고생을 회상하던 그는 어렵던 형편 탓에 기술을 배울 수밖에 없던 환경을 물려주신 부모님을 한때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면 얼마든지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을 거라 말하며 그는 웃었다.

이후 선으로 만난 이와 결혼하고 서른둘에 연남동에 공장을 열었다. 일이 잘될 때는 사람 다섯을 들여 운영했으나 IMF 이후 공장의 크기도, 사람도 줄였다. 그렇게 사정 따라 4~5곳을 옮겨 다니다 지금 정착한 곳에서 25년을 일했다. 만들고 복원한 고가구가 1,800여 개는 될 거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보이던 그는 올해 10월에 공장을 그만뒀다. 2~3년 전 몸에 큰 무리가 왔는데, 최근 다시 문제가 생겨 일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많이 아쉬워했다. 전통 자개 기술을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고 했지만 배우려는 이도 없고, 불투명한 미래를 가진 기술을 배우라 권할 수 없었다.

“남들은 시대를 따라가면서 여러 가지를 하지만, 나는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만 고집하면서도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노후 준비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힘들었지만 노력한 만큼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도 몸만 허락한다면 일을 계속하고 싶네요”

그는 그렇게 늘 남의 것을 만들고 수리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한, 자신이 사용할 마지막 자개장을 만들며 자신을 품어온 기술과 공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2023.10.21
서울 마포구 서교동, 2023.10.21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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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 2023.10.25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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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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