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염천교 수제화거리
포토에세이│염천교 수제화거리
  • 천재율 기자
  • 승인 2023.09.01 13:15
  • 수정 2023.09.21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25년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역 인근에 피혁(가죽) 창고들이 들어서면서 제화 기술자와 구두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염천교 인근에 수제화 거리가 생겨났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역을 이용하던 미군들이 맡기고 간 군화를 수리하거나, 헌 군화를 구입해 수선 후 재판매하며 서서히 지금 ‘염천교 수제화 거리’가 조성됐다.

성업을 이루던 당시에는 수제화 공방과 상점이 500여 군데 들어설 정도였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저렴한 중국산 기성화가 들어오고, 일부 수제화 공장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쇠퇴했다.

많은 이들이 떠난 뒤에도 아직 이 자리에 남아 수제화를 만드는 안효성(72) 세븐웰 대표를 만났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안효성 대표는 동네 선배의 권유로 제화를 시작했다. 친구들과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제화 일이 적성에 맞아 괜찮았다고 했다. 다만 기술을 알려주면 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시대 분위기로 인해 그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6개월 정도 일하면서 주변을 살피니 제화라는 일이 본인만 열심히 하면 같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일찍 퇴근하는 걸 보며 얼른 숙련공이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후 좋은 기술자를 만나 그에게 배우며 남들 한 번 할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며 기술을 익히려 애썼다. 12년 뒤, 그는 자신의 수제화 제작 공장을 열었다. 남대문 시장에 납품해 판매했다고 하는데, 여러 군데에서 수제화가 들어와도 자기네 신발이 가장 먼저 팔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기성화가 선호되던 시점에 그는 밀리고 밀려 혜화동에서 청계천으로, 청계천에서 염천교로 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곳이 자신의 종착역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수십 년간 수제화 제작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을 자식 결혼식에 신고 갈 손님의 구두를 만들어 준 일이라고 했다. 그 손님은 양발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서 평생을 양쪽 크기가 다른 운동화를 신고 살았다. 차마 자식 결혼식에는 운동화를 신고 갈 수가 없어서 구두 제작을 의뢰했다. 안효성 대표는 그 발을 딱 보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정성스레 만들어 맞춰서 그에게 구두를 보내줬고, 그분은 생전 처음 신어본 구두를 신고 자식의 결혼식을 잘 치렀다.

그는 자신이 아직 현장에 남아있는 이유와, 수제화의 미래도 이 거리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저가 수입품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자신의 노동으로 누군가가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면 기회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수제화를 맞추러 온 손님들의 발 본이 떠진 종이들을 봤다. 남들 한 걸음 걸을 때 반걸음 걸으며 자신을 숨겨왔을지 모를 그 손님의 발도 본이 저렇게 떠져서, 자식 결혼식에서 한 발 한 발 당당히 내걸을 수 있게 해준 그 구두로 만들어졌겠다 싶었다.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울 중구 봉래동, 2023.08.18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관련기사